일단 가보겠습니다

오래된 마음에 응답하기 위해

by 낮별


지난주에 대학원 입학식을 했다. 국기에 대한 경례로 시작하여 애국가 1절을 함께 제창하고 총장님의 말씀과 교직원 소개와 학생회 임원 소개가 이어졌다.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이벤트를 싫어하는 편이지만 작은 학교라 행사도 대단히 거창하지 않아서 마음이 편안했다. 29명의 대학원 동기가 생겼다. 새로운 출발, 새로운 인연의 시작이다. 입학 전에는 설레는 마음이 컸는데, 입학식 이후 긴장되고 부담되는 마음이 훨씬 커져 있는 상태이다. 아마도 OT에서 홍수처럼 쏟아진 정보들에 내가 이걸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잔뜩 생겨났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방송대에 편입하여 졸업했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수강신청을 하고, 입학식을 하고, OT를 하는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다만 방송대의 등록금의 열 배가 넘는 등록금만큼, 주문해서 받아 본 전공 서적의 무게만큼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져서 마음이 좀 버겁긴 하다.


50이 넘어 대학원에 진학하겠다는 결정부터 쉽지 않았다. 여기까지 오는데 엄청난 고민과 갈등의 연속이었다. 요즘 "마흔이 넘었는데 대학원 진학 괜찮을까요?" 하는 질문을 보면 나도 10년 전 일을 그만두고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 떠올라 웃음 짓는다. 10년 전에 그런 생각을 할 때, 그러니까 마흔이 넘었는데 대학원에 진학해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을 했을 때, 공부를 하기에 이미 몹시 늦었다는 생각을 스스로 하고 있었다. 그때 공부하고 싶었던 분야는 역사였다. 지역 문화강좌에서 한국사와 세계사 수업을 들으며 본격적으로 역사에 빠져보고 싶었다. 한때는 문예창작에도 관심이 갔다. 좋은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어릴 때부터 간직하고 있었는데 그 길을 도무지 못 찾겠어서 대학원이라도 가면 뭐라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없는 재능이 대학원에 간들 얻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현실과 타협했다. 대학원에 가고 싶어서 기웃대다 이제 와서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욕심을 내려놓았었다. 그냥 읽고 싶은 책이나 읽으며 살면 되지 싶었다.

그렇게 10년의 시간을 훌쩍 보내고, 나는 상담대학원에 입학했다. 10년 전만 해도 선택지에 전혀 없었던 분야이다. 심리학 자체에 대한 매력도 느끼지 못했던 내가, 그래서 심리 분야 책에도 흥미를 전혀 느끼지 못했던 내가 상담대학원에 진학한다고 하자 책 모임 동생들이 그랬다. "언니, 심리학 책 읽자고 할 때마다 그렇게 읽기 싫어하더니, 왜?" 그러게 왜일까? 내게도 니체가 말한 '가치전환'이란 게 일어난 듯하다. 니체는 기존에 가졌던 가치들, 특히 업신여기거나 인정하지 않았던 가치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는 것을 '가치전환'이라고 불렀다. 그렇다고 내가 심리 분야의 책을 업신여긴 것은 아니다. 그 시절엔 다만 그런 책들의 효용성을 느낄 수 없었을 뿐이다. 세상을 알아가고 사람을 알아가고 싶었던 나는 심리 책을 읽는 것보다는 역사책이나 소설책을 읽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심리 분야 책에는 불편한 마음이 들었었다. 지나치게 내밀해 보였기에 차라리 허구를 이야기하는 소설이, 큰 틀에서의 인간 이야기를 하는 역사가 편했다. 긴 에두름 끝에 드디어 내밀한 이야기를 향할 마음의 준비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단순히 취향의 변화일 수도 있다. 젊어서 싫어했던 여름이 나이 들며 좋아지기 시작했다. 시끄럽기만 했던 매미소리가 싱그러운 여름날의 BGM으로 느껴져 매미소리가 뚝 그치면 서운해서 어쩌나 벌써부터 걱정이다. 사람의 취향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러니 혹시 아는가? 남편이 미쳐 있어서 나는 극혐 하는 골프를 언젠가 내가 즐기고 있을 날이 올 지도 모른다. 비싸고 독하기만 해서 싫어하는 위스키에 빠질 날이 올 지도 모른다. 큰 아이 제대하고 나서 동반입대했던 친구를 초대해 아껴뒀던 글렌피딕을 오픈해 한 잔 맛보고 그런 날이 곧 올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다. 10년쯤 아이들을 가르치고 나니 이제 더 이상 남의 집 아이들로 골머리 아프기 싫다며 사교육업계에서 멀어졌지만 남의 집 아이들이 몹시 사랑스럽고 아이들과 함께 했던 시간을 그리워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사실, 고백하자면 요즘 좀 그렇게 되어 가고 있다. 하굣길에 우르르 몰려나오는 땀범벅인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저절로 미소가 나온다. 커피를 끊었다고 했지만 요즘 다시 간간히 한 잔씩 마시는 아아는 길티플레져이다. 어쨌거나 대학원까지 진학하며 심리를 공부하자고 결정하고 나니 내 마음이 이렇게 바뀔 줄 알았다면 심리 분야 책 별로라고 절대 단정 짓지 않았을 텐데. 그때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맞는 것. 지금은 아니어도 나중에는 맞는 것.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

살아가고 있어서, 마음도 함께 움직인다. 변하지 않는 신념이란 없다. 단정 짓기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이제야 알아가고 있다. 너와는 끝이라고 해도 어느 모퉁이에서 다시 만나 우리는 서로 웃으며 대화를 이어나갈지 모르는 것이다. "심리 분야 책 별로야"라고 철 없이 외쳤던 나를 반성하며, 나는 상담심리라는 학문분야에 한 발을 들여놓았다. 내 나이 마흔만 돼도 좋았겠다 싶으면서도 지금에 와서야 이렇게 된 것에도 뭔가 이유가 있겠지 하는 생각도 든다. 지난 10년간 쉬면서 읽은 책들, 방송대에서의 공부, 아이들을 키우며 느꼈던 것들, 기웃거렸던 글쓰기와 책 모임들, 그 모든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소속감 없는 사람으로 살면서 느꼈던 좌절, 무력감, 열등감과 같은 결핍의 감정들도 동인이 되었다.

그러니까 왜 하필 쉰이 넘은 나이에 상담대학원이냐고 묻는다면, 이제야 때가 된 것뿐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나이가 들면서 내 마음이 경직되거나 옹졸해지는 것을 느꼈다. 예전에 가졌던 유연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품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나는 자꾸만 벽을 세우고 있었다. 그것을 느낀 순간이었던 것 같다. 심리학에 마음이 기울기 시작한 것이. 마음을 공부해보고 싶었다. 상담자의 언어를 배우고 싶었다. 내가 세우는 벽을 허물고 사람들에게 다가가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 시작이 직업으로 이어질는지 모를 일이지만 우선은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라도 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물론 그 이전에 나 자신을 긍정하고 나 자신을 품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일단 가보려고 한다. 쉬운 길은 아닐 것이다. 나의 틀을 바꿔야 하니, 쉬울 리가 없다. 쉬우면 안 될 일이기도 하다.


비록 10년 전 꿈꿨던 분야와는 전혀 다른 분야로 향하고 있지만, 스스로 응답하지 않은 마음은 눌러놔도 언젠가는 다시 꿈틀댄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내 나이 마흔인데, 쉰인데 시작해도 되겠어요?라는 질문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싶다. 앞으로 또 무엇이 하고 싶을지 모를 일이다.


일주일에 한 번쯤, 앞으로 부딪힐 대학원 라이프에 대한 기록을 남겨보고 싶다.

얼마나 헤맬지, 얼마나 좌절할지, 혹은 얼마나 신날지 나조차 모르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