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학교로, 사회로, 서울로 돌아감
집에 틀어박혀 최소한의 인간관계만 유지한 채 거의 은둔자로서 살다가 사회(?)로 돌아간 소회가 복잡하다.
출퇴근 시간 지하철을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첫 수업날 아침, 지하철을 타고 놀랐다. 앉을자리는커녕 기대어 서 있어야 할 자리도 없었다. 사람들 틈에 끼어 가면서 가슴이 답답해졌다. 오래전 출퇴근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때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해방감을 맛보았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스스로 불구덩이로 다시 걸어 들어간 셈이다. 세 시간짜리 강의 두 개를 연속으로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을 탔을 때도 그랬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지하철을 환승하고, 10분쯤 걸어야 하는 통학을 이틀 해보고 앞으로 통학 자체가 내겐 하나의 힘겨운 과업이 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한편으로는 다시 이런 삶으로 돌아간 것에 묘한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몸은 힘들긴 한데, 마음은 조금 들뜨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간 너무나 고요하게, 평화롭게 살았다.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부대껴 본 기억이 아득하다.
수업도 비슷했다. 첫 주여서 OT로 수업시간도 비교적 짧았고 별 달리 진도가 나가지는 않았다. 교재와 수업 방식, 평가방식에 대한 소개가 주였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복병이 있었다. 적게는 15명, 많게는 25명 안팎의 수강생들이 있었다. 나처럼 신입생도 있지만 심지어 박사과정에 있는 분들까지 다양한 학차의 학우님들도 함께 하는 수업인데 첫 수업에서 각자 소개를 하는 것이었다. 즉, 이런 자기소개는 매 학기 첫 강의마다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는 얘기다. 게다가 모든 수업에 발표나 토론이 포함되어 있다. 대강의실에서 다수의 학생들 틈에 짱 박혀 존재감 없이 강의만 듣고 나오면 그만이었던 학부 수업과는 완전히 달랐다. 나를 드러낸다는 것, 이게 은근 스트레스였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향해 자기소개를 하고 있자니 마이크를 든 손도 달달, 목소리도 달달 떨렸다. 발표 공포증, 내가 넘어야 하는 큰 산이다. 내가 나서서 말하는 것은 엄청난 긴장감으로 스트레스이긴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새롭게 알아가는 것은 무척 흥미롭다. 이게 흥미롭다는 걸 느끼고 나는 역시 E였다는 걸 새삼 자각했다. 젊어서는 새로운 장소에 가는 것,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정말 좋아했었는데 나이가 들며 자꾸 움츠러들고 있다 생각했었다. 나이 탓도 있겠지만 점점 그럴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던 것이다. 강의 세 개를 듣고 나니 겹친 수강으로 낯익은 얼굴들도 하나둘씩 생겼다.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날 것이다.
첫 학기, 신중하게 골라 1순위로 원했고 수강신청에 성공한 과목은 상담심리학, 성격심리학, 그리고 시네마테라피 수업이다. 시네마테라피 수업은 매주 영화도 한 편씩 보며 힐링하려고 가볍게 교양수업 듣는 기분으로 껴 넣었는데 첫 수업을 들어보니 주 교재가 세 권이나 되고 과제도 많고 발표도 많고 만만치가 않아 보인다. 어떤 수업도 만만하지 않을 것 같다. 방송대에서 매 학기 6과목이나 7과목을 수강했었다. 대학원 수업에서 겨우 3과목을 수강했는데 더 긴장이 되고 걱정스러운 건 뭔가 챙겨야 할 것이 훨씬 많아진 탓이다. 방송대 온라인 수업은 내가 편한 시간에 아무 때나 들으면 되고, 모르면 반복 재생하면 되고, 집안일하면서도 편하게 듣고, 중간 기말 과제인지 시험인지만 파악하여 챙기고, 출석수업 딱 한 번만 가면 그만이었다. 그야말로 은둔자의 삶을 이어나가기에 최적인 시스템이었다. 대학원에서는 매주 과제가 있고, 발표가 있고, 토론이 있고, 게다가 혼자 하는 것도 많지만 조별 과제도 많다. 더 이상 은둔자로 살아갈 수 없다. 세상 속으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수많은 학사 일정을 휴대폰 캘린더에 기록해 놓으면서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 많은 걸 다 챙길 수 있을까?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다.
주에 이틀만 학교에 가려고 수업을 시간표를 짰는데 생각보다 학교에 갈 일이 더 많을 것 같다. 수업 외에 특강도 자주 있다. 특강 목록을 보며 이것도 듣고 싶고, 저것도 듣고 싶고 큰일이군 싶었다. 학교에 가는 날엔 아이의 저녁 식사는 미리 준비해 놓거나 시켜줘야 한다. 아이는 내가 미리 해둔 음식보다 다양하게 시켜 주는 것을 선호하므로 학원 가기 전에 시간 맞춰 배달만 제대로 되게끔 주문하면 되므로 곤란할 일은 없다. 배달 음식을 자주 먹여야 하니 엄마 마음이 조금 불편할 뿐이다. 학교 다녀왔는데 엄마가 없는 집, 나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아이는 무척 설레한다. 엄마가 없는 집이라니! 오늘도 신입생 환영 행사 때문에 학교에 가야 해서 너 집에 오면 엄마 없을 거라고 말했더니 아이는 상기된 표정으로 외쳤다.
"엄마, 내 걱정 말고 학교 열심히 다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