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은 오락가락, 꿈자리는 뒤숭숭

또한 즐거움

by 낮별


무료하고 고요했던 나의 일상이 대학원 입학과 동시에 정신없이 흘러가고 있다. 이번 주에만 해도 월화수목 네 번이나 학교에 다녀왔다. 기껏해야 일주일에 한두 번 한나절 외출만 하고 살던 사람인지라 이 정도 외출이면 거의 가정을 내팽개친 거나 다름없다. 학교에 다녀오면 과제와 읽을거리가 쏟아진다. 시일에 맞춰 뭔가 해야 하는 일이 많아진다. 캘린더에 저장을 해놓고도 정신이 오락가락이라 이번 주에 몇 번이나 착오와 실수를 반복했다. 게다가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듯 입력되어 안면인식에 있어서도 역시나 착오와 실수를 반복했다.


몇 번의 착오와 실수, 과제와 발표의 중압감이 문제였던 것 같다. 나는 요즘 평소에 꾸지 않던 꿈을 매일 꾼다. 하나같이 어처구니없는 실수, 어벙벙한 나,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나, 그래서 나와 같은 조가 된 사람들이 기피하는 나, 대체로 이런 꿈이다. 매일 밤 이런 꿈이 계속되니 수면의 질이 좋을 리가 없다. 잠 하나 잘 자는 게 내 특기이고 유일한 자랑이었는데... 이런 얘기를 좀 친해진 동기 선생님에게 말하니 박장대소하며 웃었다. 정말이지 심리치료가 필요한 사람이 돼 버렸다. 그저 말하고, 웃기만 해도 조금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어젯밤 야간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동기선생님에게 웃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정말 좋은 상담자가 될 거예요." 불안한 우리는 서로를 격려했다.

어수선하고 정신없는 가운데 즐거움도 있다. 지난 금요일에는 학생회에서 주최한 신입생 환영행사가 있었다. 함께 점심 도시락을 먹으며 선후배 간 대화와 학교 투어를 했다. 학생회 선배님들의 세심한 배려로 '나의 학교, 나의 동기'를 갖게 되었다. 화요일에는 신입생 집단상담이 있었다. 내 인생 최초의 상담인 셈이다. 익숙해진 얼굴도 있고, 처음 보는 얼굴도 있었다. 노련한 상담자 선생님들의 리드하에 우리는 서로를 알아갔다. 두 시간 동안 마음을 내놓고 첫인사를 정갈히 나눴다. 그 시간이 끝났을 때 그곳에 모인 분들이 한결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수요일에는 총장님이 진행하시는 인문상담 특강을 들었다. 앞으로 8주간 수요일마다 진행될 특강이다. 얄롬의 책과 총장님의 책을 읽으며 인문상담에 대해 깊이 있는 시간을 함께 나누게 될 것이다. 특히 인문상담에 관심 있는 선생님들의 참여이다 보니 함께 나누는 대화도 글도 깊었다. 동류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이 시간이 기대된다.


성격심리학은 처음 가졌던 기대보다 어려워 보인다. 수업 중에 교수님이 빠른 속도로 진행하는 강의가 외국어처럼 들리는 현상을 겪었다. 집에 돌아와 강의 부분 교재를 읽고 또 읽었지만 여전히 내 것으로 만들지는 못했다. 성격심리학의 개괄적 설명이라 그렇게 느껴질 거라는 동기 선생님의 말에 조금 위로가 된다. 시네마테라피 수업에서는 '모던 타임즈'를 보고 토론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여기에서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돼버렸다. '모던 타임즈'를 미처 못 보고 참여한 까닭이다. 깊이 반성했다. 심도 있는 철학적 토론을 이어가는 분들 사이에서 '다음부터는 꼭 영화를 보고 참석하리라' 다짐했다. 그래서 다음 주 영화인 '시네마천국'을 수십 년 만에 다시 봤다. 이 오래된 영화를 과제 때문에 봐야 하는구나, 보나 마나 명작이겠지... 하고 무덤덤하게 보다가 나는 토토처럼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고 말았다. 상담심리학에서는 사례개념화라는 것을 배웠다. 배워도 여전히 모호하지만 상담의 구조를 정립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과정임을 이해했다. 교수님이 제시해 주신 상담사례에서 사례개념화를 해 보면서 상담과정도 문제이거니와 이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겠구나 예감했다. 내담자의 호소문제를 알고, 문제 원인을 파악하고, 상담 목표를 설정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해보려고 애쓰면서 '이게 가능한 일인가? 내가 뭐라고 타인의 문제를 파악하고 그를 돕는다고?' 갑자기 이런 궁극적인 질문에 다시금 봉착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총장님 특강에서 받은 숙제를 하면서 내가 왜 상담을 공부하기로 했는지, 어떤 상담자가 되고 싶은지를 생각하면서 어제 가졌던 물음과 자기 비하를 옆으로 슬쩍 밀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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