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장편소설
카밀라 포트만이자 정희재인 주인공은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입양된 여성이다. 서양인 부모 사이에서 동양인 자녀로 살아가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 자세히 나오지는 않았지만 카밀라는 양모 앤의 사랑을 듬뿍받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체성의 혼란과 자신의 출생과 존재에 대한 의문은 항상 품고 있었던 것 같다. 결국 양부가 재혼을 하면서 보내온 짐에 있던 사진 한장을 가지고 엄마를 찾아 한국으로 온다. 이 내용은 흔히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한국에 들어와서 카밀라이자 희재인 주인공이 진실을 찾아가면서 만난 사람들은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다. 엄마가 진남여고에 재학 중이던 정지은이라는 것, 어린 지은이 겪었던 불행한 가족사, 지은의 선생님과 친구들, 지은이 남긴 시와 수필, 그리고 그녀의 죽음에 대하여.
이제는 희재가 된 카밀라는 엄마는 찾았지만 만날 수 없고, 자기 존재의 나머지 반인 아빠를 찾는다.
이 소설에서는 진실에 대해 여러 가지 얘기가 나온다.
"진실은 매력적인 추녀의 얼굴 같은 것이라 끔찍한 게 분명한데도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욕망이 든다면, 그건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증거다(91쪽)."
"물론 네가 강력하게 원하긴 했지만, 그 점들은 일방적으로 너의 정체성을 뒤바꿔놓았다. 너는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일에 조금씩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너라는 존재를 바꿔버려도 좋을 만큼 그 점들은 중요한가? 필연적인가? 진실은 과연 그토록 중요한가?(179쪽)"
"사실은 불편하다는 편견 때문에 진실을 외면함으로써 우리 모두가 지은이를 죽인 거지요. 하지만 진실은 불편하지 않아요. 진실은 아름다워요(245쪽)."
한편, 유이치를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 나눈 안개, 해무가 달려오는 진남의 도로와 양관, '안개를 닮은 사람들'과 같이 안개 얘기가 계속 되더니, 지은이 사랑한 사람이자 카밀라의 아빠가 보일듯 보이지 않게 암시되고 소설이 끝난다.
"저는 소문 같은 건 하나도 안 무서워요. 사람들은 자기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 들여다본다고 생각하지만, 그럴 때조차도 자기 마음 하나 제대로 모르는 바보들이니까요. 저는 자기 마음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들은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그 무지한 마음이 무서울 뿐이죠(168쪽)."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건 나의 일이었다. 너와 헤어진 뒤로 나는 단 하루도 너를 잊은 적이 없었다.(201쪽)."
"고독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리로서 행동했지만, 그 우리 안에서 각자는 저마다 고독했다. 고독한 인간은 반드시 다른 인간을 향해 손을 내밀게 돼 있다.(218쪽)"
"너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사람과 사람 사이를 건너갈 수 있니? 너한테는 날개가 있니? (중략) 그런 제게 지은이가 나한테는 날개가 있어, 바로 이 아이야, 라고 말하며 자기 배를 만졌어요.(244쪽)"
"그런데 왜 인생은 이다지도 짧게 느껴지는 것일까? 그건 모두에게 인생은 한 번뿐이기 때문이겠지. 처음부터 제대로 산다면 인생은 한 번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단번에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단 한 번뿐인 인생에서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는, 그게 제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는 모두 결정적이다. 한 번뿐인 인생에서 우리는 그런 결정적인 실수를 수없이 저지른다는 걸 이제는 잘 알겠다. 그러니 한 번의 삶은 너무나 부족하다. 세 번쯤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번의 삶은 살아보지 않은 삶이나 마찬가지다.(251쪽)"
"거기 고통과 슬픔이 있었다면, 그것은 그 아이의 고통과 슬픔이었다. 우리의 것이 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은 고통스럽지 않고, 슬프지도 않다. 우리와 그 아이의 사이에는 심연이 있고, 고통과 슬픔은 온전하게 심연을 건너오지 못했다. 심연을 건너와 우리에게 닿은 건 불편함뿐이었다. 우리는 그런 불편한 감정이 없어지기를 바랐다. 그럴 수밖에. 그때 우리는 고작 열여덟 살, 혹은 열아홉 살이었으니까. 우리는 저마다 최고의 인생을 꿈꾸고 있었으니까.(252쪽)"
내가 생각하는 이 소설 속의 진실은 아름다웠고, 정희재는 정지은의 날개이자 희망으로 결코 버림받은 것이 아니며,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서로에게 가 닿지 못한 마음과 그리움, 상대에 대한 무지와 그로 인한 판단 착오 등 실수 때문이 아닌가 싶다.
뭔가 슬프면서도 아련하고, 마지막엔 화해와 용서 같이 희망적인 느낌이 드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