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전체주의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집단을 중시하면서 개인의 삶에 자주 간섭을 하고,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보면서 유행한다는 것은 꼭 해봐야 하는 사회이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유행하는 브랜드나 스타일이 있으면 모두 다 같은 브랜드나 스타일의 옷을 입고 가방을 들었으며, 머리를 했었다. 거리에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넘쳐났다. 요즘은 시대가 변해서 젊은 친구들은 자신의 개성이나 고유성을 중시한다는데, 여전히 SNS를 통해 수시로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자기와 비교하는 것을 보면 그 정도가 줄어들기는 했어도 크게 변하지는 않은 것 같다.
이런 사회에서 자기의 고유성을 지켜내고 자기만의 방식을 고수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 희소성으로 그런 사람은 여러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독서 모임에서 요즘 핫하다는 런던 베이글 뮤지엄의 창업자인 료님의 '료의 생각 없는 생각'을 읽었다. 솔직히 나는 트렌드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료님이 창업했다는 런던 베이글 뮤지엄, 아티스트 베이커리, 카페 하이웨스트, 카페 레이어드가 엄청 인기가 많다는데, 나는 이들을 전혀 모르고 가본 적도 없다. 심지어 작년인가 인사동에 갔다가 잘 모르는 빵집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아예 안 들어간 적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아티스트 베이커리였다. 내가 런던 베이글 뮤지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최근 회사가 사모펀드에 2,000억 원에 매각되었다는 소식뿐이다. 식음료 회사를 2,000억 원 이상의 가치로 일궈낸 창업자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이 책은 료님이 기록한 글, 메모, 그림, 사진 등 그녀를 나타내는 것들을 묶은 책이다. 애초 다른 사람들을 향한 것이 아닌 스스로에게 하는 말을 수시로 기록한 것으로, 성공한 사업가가 사업을 일구는 과정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성공 과정이나 비결을 기록한 책이 아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료님이 자기 자신에게 한 이야기가 여러 사람들에게 울림을 준다. 내 생각에 그녀는 사업가이기 전에 자신을 표현하는 아티스트이자, 젊은 세대에게 가르침을 주는 구루 같다.
그녀는 원래 20년 넘게 패션 사업을 잘해왔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런던 여행에서 우연히 들른 '몬머스 커피'에서 그곳의 분위기에 매료되어, 서울로 돌아와 5년 뒤에 런던 베이글 뮤지엄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 책의 '그저 시작할 수 있는 용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누군가 성장했다는 것은 꼭 성공했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두려움을 추구했음을 의미한다.
작든 크든 성장했다는 것은 어둡고 보이지 않음을 알고도 발을 내딛은 용기에서 출발했다는 것이, 누군가들이 말하던 어떤 성공보다 훨씬 큰 의미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50쪽)>
<혹여 신중하다는 미명 아래 게으르거나 미루는 건 아닌지, 어설프게 약아서 생기는 우유부단함일 수도 있으니, 가끔은 찬찬히 스스로를 관찰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생각의 무게를 실어줄 수 있는 일과 몸부터 움직여야 하는 일을 좀 더 구별할 수 있지 않을까. 대충 사는 것도 싫지만, 고민으로 진짜의 시간을 낭비하지는 말아야 하니까, 뭐든 생각할 시간에 일단은 하자. (54쪽)>
<무엇인가 알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시작해야만 알 수 있는 것임을, 살면서 반복적으로 느끼고 있다. 자신에게 무엇도 시작해주지 않음으로써 자기가 무엇을 원하고 또 해낼 수 있는지 경험조차 시켜주지 않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62쪽)>
<우당탕 가내수공업 같은 매일이지만, 진심을 다해 보낸 하루가 모이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무엇이든 되어 있을 거라고 믿어요. 뚜렷하지 않은 매일이라 해도 실망하지 말고, 그래도 무엇이든 성실히 해내, 차분히 선명해지게 될 나를 믿는 시간, 짧게라도 매일 꼭 가져요. (225쪽)>
지금은 엄청나게 성공한 사업가이지만, 그녀도 직업을 바꾸면서 처음 런던 베이글 뮤지엄을 시작할 때는 두려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했고, 계속했다. 스스로를 쫄보라고 하면서도 매일매일을 충실하게 보내는 성실함으로.
그리고 끊임없이 나다움, 나다운 방식, 나만의 속도를 고민했다. 그래서 결국 그녀는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이끌었다.
아래는 그녀가 나다움을 지켜내기 위해 스스로에게 계속 되뇐 말들이다.
<모든 기준과 선택의 주체가 내가 되는 일이 너무나 당연한 것임을 매 순간 다짐하지 않으면, 집단 무의식에 아무 저항 없이 편승하게 되는 것이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매번 '이것이 온전한 나의 계획이며, 스스로 선택과 실행의 주체가 되었는가?'라고 물리적으로 묻고, 대답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그저 나인데, 자꾸만 자꾸만 이름도 알 수 없던 산으로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주 번거롭게도 쉼 없이 자신에게 묻고, 대답하고, 약속하고, 지켜내지 않으면 말이다. 물리적으로 끊임없이 누군가를 의식하지 않는 '온전한 나'인지를 재차 치밀하게 확인하는 일. (275쪽)>
<무엇인가 자연스럽다는 것은 이미 나의 습관이었으며, 습관이 되는 것은 내가 진짜 원하던 것에서 출발했을 가능성이 크다. 결심 같은 것 없어도 자주 하다 보면, 어느새 몸에 사이좋게 익어 제법 능숙하게 되고, 무언가 어렵지 않게 하던 '나'라는 존재를 스스로 알게 되었을 때, 자신과 조금 더 가까워진다고 느끼는 순간순간들이 매번 작게 소중했다. 내가 나로 살았을 뿐인데, 자신이 조금씩 더 좋아지는, 아무도 모르던 진짜 자존감이 생겼다는 것. 누군가와 경쟁할 마음 없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삶의 유니크함이라는 진짜의 무언가를 찾는 사람들이 원하던 그 누군가가, 결국 내가 되는 선순환들이 이미 세상의 원리였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 (299쪽)>
한편 최근에 나는 자기 마음을 알아채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 전에 친구의 집에 놀러 갔다가 친구의 아이 둘, 우리 아이 한 명이 함께 인형 뽑기 방에 갔다. 집에 돌아오려는데 친구의 6살 둘째가 울면서 떼를 쓴다. 언니들은 자기보다 인형을 더 많이 뽑았으니 자기는 뽑기를 더 해야겠다고 하면서 기계에 돈을 더 넣어달라고 한다. 친구는 이미 첫째보다 둘째에게 뽑기를 더 할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에 그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고 하면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집으로 오는 길에서도, 집에 와서도 둘째의 울음과 떼는 그치지 않았다. 결국 친구가 둘째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 1:1 면담을 했다.
둘째는 계속해서 언니들이 자기보다 인형을 더 많이 뽑았으니 자기는 뽑기를 더 해야 한다고 하면서 울었다. 친구는 문득 첫째가 우리 아이에게 뽑아 준 라부부 인형을 둘째가 갖고 싶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라부부 인형 갖고 싶었어?'라고 물었단다. 결국 둘째가 원한 것은 그 라부부 인형이었다. 하지만 6살 아이는 자기가 왜 기분이 나쁜지 알지 못하고 엉뚱한 이야기를 하면서 고집을 부린 것이다. 엄마가 둘째의 진짜 욕구를 알아차리고 이를 알려주자, 둘째는 기분이 한결 나아지고 차분해지더니, 이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신나게 놀았다.
며칠 전 아침에 우리 아이 등교 준비를 하는데, 꾸물거리는 아이에게 깊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정말 분노 같은 화가 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방학인데 오케스트라 연습을 한다고 매일 아침에 등교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부터, 매일 같이 지각을 하면서 조금도 서두르는 기색이 없는 아이까지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잠시 생각을 했다. 왜 이렇게까지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일까. 꾸물거리는 아이는 전부터 원래 그랬다. 새삼스레 이렇게 화가 날 이유는 아니다. 잠시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할 때였다.
아이가 방학을 하고 내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해왔던 러닝도 더위와 헬스장 공사로 못하는 날이 많았다. 아이가 도서관에 가는 것을 좋아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도서관에 가면, 나는 책에 집중할 수가 없다. 아이가 수시로 자기가 보는 책의 재미있는 부분을 보여주고 이야기해 줘서. 그 눈과 표정이 맑고 예뻐서, 이런 날이 또 올까 싶어 아쉬워서, 아이가 보여주는 책을 열심히 보고 이야기를 듣다 보면 집에 갈 시간이다. 집에 오면 해야 할 일이 있고, 그걸 하다 보면 학원에 갔던 아이가 돌아온다. 독서건 글쓰기건 뭔가를 1시간 이상 집중해서 할 수가 없었다. 이런 생활이 몇 주 동안 지속되니 나도 모르게 불만이 쌓였나 보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쌓인 불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처럼 6살 아이도, 45살 아줌마도 자기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자기 마음을 알 수 없다. 자기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 진정한 관심, 훈련이 필요하다
료님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을 꺼내놓지 않으면 스스로를 알아갈 수 없(273쪽)"고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더 알고 싶다면, 사소한 것이라도 표현하는 시간을 늘려보"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의 말이 아닌, 내가 제일 잘 아는 진짜 나의 언어"로 "글이든, 그림이든, 말이든, 요리든, 스타일링이든 뭐든 다" 좋다고 한다.
료님은 자신을 알기 위해 치열하게 질문하고 답하면서, 성실하게 자기가 원하고 좋아하는 것을 추구했다. 나는 그런 것이 자신의 삶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식이라고 느낀다.
자기의 삶을 매일매일 충실히 살아낸 료님은 본인이 얘기한 것처럼 "인생의 끝이 오는 날 그 모습이 제일 진짜 나와 가까운 완성된 '나'(271쪽)"로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내 생각에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은 세속적인 성공은 물론이고 우리가 꿈꾸는 자아실현까지 이룰 수 있는 것 같다. 그런 료님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나 자신을 알기 위해 나의 마음을 살피고, 질문하고 답하면서 성실하게 매일매일을 채워나가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채워간 하루하루를 통해 진짜 나와 가까워지면, 세속적인 성공이나 자아실현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들이니까. 료님이 그랬던 것처럼.
내가 나에게 어떤 말을 해 줄지, 어떤 경험을 하게 해 줄지 주의 깊게 살피고 실행해서, 나도 내 삶의 마지막 날에 ‘진짜 나’에게 가장 가까운 모습으로 떠나고 싶다.
짧은 글에 긴 여운이 남는 책이었다. 다양한 그림과 사진은 덤.
이제 료님의 런던 베이글 뮤지엄부터 차례로 방문해봐야겠다. 여전히 사람들이 많아서 쉽진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