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바보 아빠 이야기

by 류하해

이 이야기는

"아빠는 가족을 책임 질 의무가 있다"로 시작된다


십몇 년 다니던 회사를 박차고 나와

더 늦기 전에 관련 기술과 영업을 배워 더 큰 자리

돈되는 사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신재생에너지 회사로 이직을 한다


일주일간 일본 바이어를 데리고 지방 관련 업체에 동행했지만 바이어가 돌아가고 첫 월요일 사장이 그를 불러 한 말은


"그만두었으면 좋겠는데"

"바이어가 너 있으면 같이 비즈니스를 할 수 없단다. 왜 너는 그런 회사를 다녀서........"


그런 회사?

일본계 기업조사 회사, 일본에서는 100년이 넘은 회사, 기업 뒷조사 회사. 극혐이 존재한다.

처절히 그리고 철저히 알게 된다.


실업자가 되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자신감도 없어지고 무얼 할지도 몰랐다.또다시 살기를 포기해야겠다는 생각도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뮈든게 막혔다"


어느 날 그는 우연히 법륜스님의 강연에서

머리를 심하게 맞았다

"다 연 따라 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연.. 윤회에서 만들어진 보이지 않는 끈.. 어쩌면 축복이지만 어쩌면 영원한 저주.


인생이란 커다란 시험 안에서 올바른 정답을 찾아내는 것 찾아내지 못한다면 찾을 때까지..

동물이 되던 식물 이되던 사람이 되던 다시 태어나 그 시험을 받아야 한다.. 알 때까지


이것을 기독교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주여 뜻대로 하소서"


충격이었다.


그는 공사장에 가서 막노동을 시작했다. 막노동을 하려면 자격증이 있어야 했다. 기초안전보건교육이수증을 이수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구인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다.


화훼 관리 회사 (이천)

지방 국수 공장 생산원(남해 쪽)

농업 서비스(농업정책자금 컨설팅) 회사(익산)

일본 관련 무역회사와 제조회사(전국)

육류가공(발골회사) 발골원(경기도)

조선소(울산)

.......


모두 초보 가능 나이 학력 불문이었는데... 나이에 걸렸는지 아님 그가 치러야 할 시험이 아니었는지...


막노동을 시작한 지 2주도 안 있어 울산에서 신체검사를 해서 보내라는 연락이 왔다.

신체검사를 하고 보냈더니 갈 회사는 티오가 차서 안된다는 연락이 왔다.

가지 말까 생각했는데... 다른 회사를 알아봐 준다길래 알았다 했고 마지막으로 작은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를 불러준 곳이 있었다.


하청의 하청회사

인력장사 시스템이란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같이 온 몇몇은 막노동 뛰는 게 더 낫다고 올라가고

그는 무슨 뜻이 있을까 해서 남았다.


월급이 2개월 밀리면서 조선소를 나올 때까지...

그는 조선소에 있었다.

그 1년간... 그 조선소에서는 역대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나왔고.(사고로 임금 문제(자살)로) 그 조선소는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군산 도크 폐쇄, 해양조선 도크 폐쇄)


그 1년간

그는 먹고 산다는 이유로 반쪽짜리 책임과 의무를 위해. 딸에게 아빠의 빈자리를.. 아픔을 선택하라고 강요했다.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면 그때 그가 가장 있어야 할 곳은 조선소였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죽기 위해서 매일 긴장했으니....

살아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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