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마"와 "해"
잘 들으면 알 수 있다. 숨 한번 쉬고
"여기서 하지 마"와 "다른 곳에서 해"
같은 말일까? 결론은 같을 것 같지만 두 말은 다른 말이다.
"해"와 "하지 마" 우린 어떻게 듣고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기 시작하는가?
말에는 마음이 담긴다. 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든다.
마음은 생각과 감정 두 가지의 산물이다. 그것을 모르는 난 내 마음과 생각 감정의 덩어리 안에서 수 없이 헤매기를 반복한다.
그 사람의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으리라 생각하지만 듣는 순간 내 미운 감정이 내 마음을 먼저 낚아챘고 그가 나에게 미운 감정(싫은 소리)을 주는 군이라 느끼고 그 사람을 똑같이 미워하기 시작한다. 내 안에 일어난 미움이 그를 미워하게 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최근에 처와 이야기하다 그냥 중요하지 않은 내용이라 흘려서 들었던 적이 있다.
책을 보고 있었는데 나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내용으로 생각되어 건성으로 듣고 있었다.
처가 이야기 했다. “자기야 문맥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떻게 작가를 한다고...”
“난 요새 슬럼프라 그래”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처가 대답했다.
“그럼 글 쓰지 마”
순간.. 마음에 무엇인가가 훅 올라왔다.
난 글 쓰는 것이 두려워져 나 스스로 도망갈까 봐 내 고향 친한 친구들과 교회 형제들한테 벌써 다 이야기를 해놓은 상태이다 블로그 작가 됐다고. 그리고 그것을 처에게도 이야기했었다. 그런 와중에 “글 쓰지 마”라고 들었을 때.... 마음이 갑자기 안 좋아졌다.
“일없어 집으로 들어오면 글만 쓰는 것 같아 자기 기분이 안 좋았나?”
아니면
“지금 자기 말이 무시당했다고 느껴서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나?”
"둘 다인가?"
얼굴색이 변한 것을 본 처가 다시 이야기했다.
“슬럼프면 글을 좀 멀리 해보는 것이 좋지 않아?”
난 그때 쓰지 마에 관한 농담이 생각났다.
“자기야 쓰지 마하니까 생각 나는 사람이 있는데...
일본에서 가장 자린고비인 사람 이름이 누구인지 알아?"
“물 아까와 쓰지 마”
아내 말을 잘 듣지 못한 나 자신을 반성해 본다.
일본에서 잔인한 사람 이름은?
“도끼로 이마까”
그럼 일본에서 가장 잔인한 사람이름은?
“깐대 또까”
먼저 마음의 전부라고 생각되는 감정으로부터 나를 다시금 보아야겠다.
그리고 마음은 감정과 생각이 함께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난 국민학교(초등학교) 때 들은 이 이야기가 아직도 머리에 남아 있다.
신기하다. 아마 40년 전 농담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