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나왔습니다
넋두리(p와 함께,버거운 버거)
사회에 페러사이트들이 많아서 인가
많은 패러다임들이 패러독스가 된다
하지만 그들을 동경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구린 삶을 패러디해서라도
영원한 피스를 얻기를 꿈꾼다
우린 논 위 뽑혀 있는 피인데
언젠가 없어질 삶을 살고 있으면서
한오백년을 살려고 한다
아리랑 아리랑 아리리오
아리랑 고개에 날
남겨주소
살아간다는 것은 뫼비우스 띠에 점을 찍는 것. 앞과 뒤를 구분할 수 없는 상태에 나를 세운다.
그 점을 정확히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업을 끊을 수 있는 자는
나일까? 아님 너? 아님 창조주?
나는 한 때 내가 모든 졸업의 주인공인 줄 알았다. 하지만 모든 졸업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었다.
졸업이 축복인지 저주인지 난 아직 알지 못한다.
단 알게 된 것은 졸업이란 상황이 바뀜과 동시에 내가 겪어야 할 일들과 마음에 날 생채기의 양, 그 내용들이 이 전과 달라진다는 것뿐이다.
이러한 생채기들을 이렇게 글로 쏟아 내어야 하고 또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지.
이태원 사상자들을 비난하는 블로그 이웃이 있었다.
나는 “이런 편협적인 사람의 글은 읽을 가치가 없다” 그리고 " 더 이상 이웃은 안 된다"라고 느끼고 이웃을 끊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이런 일로 이웃을 끊은 나 자신이 더욱 편협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많은 것들이 아직 혼란스럽다 하지만 생채기들을 글로 쏟아 내기 전까지 내가 편협한 사람이었다고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런 나를 본다.
나는 글쓰기로 나의 쓸데없는 넋두리를 계속하고 싶은데 내가 쓴 글이란 필시 언젠가 지워야 할 넋두리도 되기에 글을 계속 써야 하나 더욱 고민이 쌓이다가도 언제 그랬었나 하고 사라진다.
하지만 또 다시 새로운 고민이 생기고 새로운 욕심인지 새로운 마음인지 모를 그것이 다시 나를 흔들어버리고 나를 짓눌러버린다.
뫼비우스의 띠에 찍은 점
진정한 졸업을 꿈꾸는 한 인간의 넋두리
졸업
이 업을 언제쯤 마칠 수 있을까?
빨리 먹기 위해
버거를 주문한다
또 욕심이 생겨
입은 작은데
패티를
치즈를
추가한다
지금도 패티가 쌓여
빨리 먹기도 그렇다
먹고
살기란
참
난 무엇을 주문했나?
그렇다
내가 주문한 건
버거운 버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