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 하는데 왜 힘들까?

사회공헌 실무자의 '마음'을 지키는 번아웃 관리법

by 밀도

"봉사는 참 좋은 일인데, 월급 받으며 봉사할 수 있다니 정말 축복받은 업무네요."


회사 동료에게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입가에 미소를 띠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묘한 위화감이 스쳤다. 사실 나는 내 일을 봉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사회복지를 전공하던 대학 시절에도 봉사 활동 자체를 그리 즐기지 않아 경영학을 복수 전공했을 정도였다. 나에게 사회공헌은 누군가를 돕는 시혜적인 활동이 아니라, 자원을 배분하고 임팩트를 설계하며 가치를 증명해 내는 엄연한 비즈니스이자 전문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부의 따뜻한 시선과 달리 실무자의 일상은 치열하다. 중간지원조직의 촘촘한 행정, NGO 현장의 예측 불가능한 변수, 그리고 기업 재단의 냉철한 KPI 사이를 오가다 보면 보람보다는 피로가, 열정보다는 자괴감이 먼저 찾아올 때가 많다. 선한 영향력을 설계하는 사람이 정작 자신의 마음은 돌보지 못해 무너지는 역설. 사회공헌 실무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 보람의 함정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나는 봉사자가 아니라 전문가다

사회공헌 실무자가 번아웃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는 일과 자아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일이 가치 있는 일이다 보니, 사업이 난관에 부딪히면 마치 나의 선의나 인격이 거부당한 것 같은 깊은 상처를 입는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직업적 거리두기다. 내가 돕는 대상자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변하지 않았다고 해서 내 역량이 부족한 것이 아니며, 기업의 전략과 맞지 않아 사업이 무산되었다고 해서 나의 진심이 틀린 것도 아니다.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사회공헌가 이전에 한 명의 냉철한 직업인으로서 일과 적당한 거리를 두는 연습이 필요하다.


찰나의 진심을 기록하는 오답 노트

번아웃은 내가 무엇을 위해 이토록 치열하게 전략을 짜고 숫자를 맞추는지 잊었을 때 찾아온다. 특히 기업 재단에서 KPI를 쫓다 보면 현장의 온기를 잊기 쉽다. 나는 이럴 때일수록 나만의 작은 승리들을 기록한다. 거창한 사회적 수치가 아니다. 현장에서 만난 어르신이 건네준 따뜻한 캔커피 하나, 내 기획서 한 줄 덕분에 지원을 받게 된 아이의 짧은 인사 같은 것들이다.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내가 단지 부품처럼 느껴질 때, 기록해 둔 이 찰나의 진심들은 번아웃의 파도를 막아주는 든든한 방파제가 되어주었다.


느슨한 연대와 트렌드를 향한 환기

사회공헌 업무는 조직 내에서 소수인 경우가 많아 매몰되기 쉽다. 이때 가장 큰 힘이 된 것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동료들과의 느슨한 연대였다. 이전 직장 동료, 파트너들과 "우리가 하는 일이 왜 이렇게 힘들까요?"라며 털어놓는 대화는 그 어떤 상담보다 효과적이었다. 이런 교류는 단순한 위로를 넘어 새로운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사회공헌은 그 어떤 분야보다 트렌드에 민감한 업무다. 현재의 업무에만 갇혀 있지 않고 포럼이나 외부 행사에 참여해 다양한 담당자들과 사업을 공유하다 보면 낡은 아이디어가 환기되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굴하는 기쁨을 얻는다. 고립되지 않고 외부의 신선한 자극을 계속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번아웃을 예방하고 실무자로서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타인을 돕는 일에 전문성을 쏟는 사람에게도 마음이 있다. 너무 많은 이들의 손을 잡아주다 보면 정작 나만의 고유한 무늬가 흐릿해지기도 한다.


나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남의 마음을 살피느라 네 마음은 놓치고 있지 않니?"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도 결국 내가 단단하게 서 있을 때 비로소 나온다. 나의 오답 노트가 번아웃의 터널을 지나는 동료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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