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 아름다운 마무리
어느 날, 평소처럼 모임이 끝난 후 귀갓길을 함께하게 되었다.
여러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결혼에 대한 주제가 나왔고, 현재 나이를 고려했을 때 단순히 ‘좋아한다’는 감정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결혼 후 아이가 생겨도 버틸 수 있으려면, 비록 부유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의 자산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많은 이 나이대 남녀가 흔히 하는 생각일 수 있지만, 내게는 그것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한국에서 생활하며 한국인과 결혼하려면 최소한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작 한국인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조차 없었던 내게는 그저 “역시 한국에서는 결혼이 쉽지 않겠구나” 하고 흘려보낸 현실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녀를 좋아한다는 확신이 생기면서 내 마음은 크게 흔들렸다. 정말 오랜 시간 동안 한국 사람을 만나며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낀 적이 없었기에 더욱 당황스러웠다. 어차피 마음을 전하지 않으려 했지만, 결혼 이야기를 나눈 후에는 그 결정이 옳았다고 스스로 위안했다.
그날 밤부터 다음 날까지는 마치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멍해졌다. 이전에는 가볍게 흘려보냈던 ‘한국에서의 현실’이 이제는 내게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늘 상황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려는 습관이 있다. 만약 내가 여성이었는데,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남성이 다가온다면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이어지다 보니,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다는 자책이 밀려왔다.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좋아하는 마음을 고백한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다음 날이 되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니, 지금의 내 상황에서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 자체가 상대방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나이라는 숫자는 그저 형식일 뿐이라 믿었지만, 실제로는 나 자신에게도 압박으로 다가왔다. 그렇다면 상대방은 얼마나 더 큰 부담을 느꼈을까.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답답하다거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이 경험이 감사한 일이었다. 이미 메말라버린 줄 알았던 연애 감정이 아직도 살아있음을 깨닫게 해 주었고,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한국인과의 만남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서른 후반의 짝사랑은 짧고 조용히 끝났지만, 내게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다. 무엇보다도 그녀 덕분에 이런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맙다.
이 글을 끝으로, 서른 후반에 찾아온 연애 감정은 내 삶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