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eskin - 정규3집 <RUSH!>
2021유로비전에서 우승했을 당시 모네스킨은 일종의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한동안 보기 힘들던 록 폭풍이 각종 해외 음원 차트를 휩쓸었다. 인지도가 쌓이면서 이전에 냈던 곡들까지 발굴되었다. 2017년에 냈던 EP <Chosen>의 수록곡 'Beggin'이 틱톡에서 인기를 끌며 그들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유로비전 우승 이후 처음으로 내는 정규 앨범 <RUSH!>는 그들의 3번째 정규 앨범으로, 유명 프로듀서 맥스 마틴, 라미 야쿠프를 비롯해 톰 모렐로와 협업한 곡이 있는 등 올라간 체급을 체감하게 해준다.
선굵던 이전 앨범들과 달리 이번 앨범은 팝적 요소의 비중이 늘었다. 그러나 모네스킨에 빠지게 된 계기였던 폭발력이 전작에 비해 감소해 아쉬움이 남는 앨범이었다. 톰 모렐로가 함께한 'Gossip'은 그의 기타 소리가 여전히 기분 좋다는 걸 느끼게 해준다. 짧은 구간이지만 확실한 임팩트를 남겼다. 'If Not For You'는 이번 앨범에서 두드러지게도 기존 스타일과 다른 방향이지만 상당히 좋다. 나른한 기타 선율을 타고 노래하는 다미아노 다비드의 목소리는 서정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앨범에서 내 플레이리스트에 넣을 만한 곡은 이 두 곡이 끝이었다.
타이틀곡 중 하나로 나온 'Gasoline'은 취향이 조금 갈릴 곡이다. 페스티벌에서 떼창하기에 좋아 보이지만 내 취향은 아니다. 분위기를 고조하고 코러스로 진입하는 부분이 EDM을 떠올리게 했다. 'Kool Kids'는 악플러들을 향한 가사 같은데 곡이 너무 유치했다. 'Bla Bla Bla' 역시 말장난을 난사하며 조금 유치한 감이 들었지만, 그래도 이 곡은 조금 재밌었다. 'Time Zone'과 'The Loneliest'는 흔히 들어본 밴드 사운드의 팝송이 연상됐다. 듣기에야 편하지만 재작년 모네스킨을 처음 알게 됐을 때 느꼈던 감정, 그것에서 차오른 기대감에는 못미쳤다. 그나마 이전 앨범들과 비슷한 느낌이 났던 'Don't Wanna Sleep'과 'Mammamia'는 유순해진 이번 앨범을 듣던 중 긴장감을 불어넣어주긴 했다.
모네스킨이 특이했던 것 중 하나는 이탈리아 밴드로서 팝송을 듣는 이에게도 익숙치 않은 이탈리아어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2집까지 앨범에서 이탈리아어 노래 비중은 다수를 차지했다. <RUSH!>는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것인지 영어 비중을 확 늘렸는데, 총 17곡 중 14곡이 영어이고 단 3곡만이 이탈리아어로 가사가 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탈리아어로 쓰인 12~14번 트랙 'Mark Champion'-'La Fine'-'Il Dono Della Vita' 구간이 앨범 내 다른 어지간한 영어곡들보다 좋았다. 보컬 다미아노 다비드는 랩처럼 속사포로 노래부르는 걸 즐기는 듯 한데, 이게 모국어인 이탈리아어로 할 때 템포가 훨씬 안정적으로 들린다.
모네스킨의 유로비전 무대를 찾아보고 기대치가 높아졌던 차다. 우승으로부터 18개월 뒤 이들이 낸 정규 앨범은 솔직히 기대치에 못미쳤다. 내가 생각했던 이들의 모습이라기엔 조금 연약해졌다. 앨범에 대한 밴드 인터뷰를 찾아보니 이전 앨범들과는 다르게 하나의 중심축에서 시작하는게 아니라, 멤버 각자가 스타일을 제시하고 모두 수용해보는 도전적인 방식으로 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앨범을 통으로 들어보면 곡의 스타일이 여러가지다. 그 중에선 분명 이전 앨범 느낌이 나는 곡이 몇 있는 걸 보아 분명 이전에 중심으로 삼았던 스타일을 유지한 멤버는 있단 뜻일텐데....1,2집의 폭발력이 좋기에 다시 그 힘을 되찾았음 좋겠다. <RUSH!>는 이지 리스닝하기에 괜찮을 것 같지만, 그것이 다인 평범한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