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잘 마무리 하기 위해서

by 지세훈 변호사

소송에 들어가면 모두들 흔히 “끝까지 가 보겠다”는 말을 합니다. 이미 감정이 상해 있고, 여기서 물러서면 모든 것을 잃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소송 과정은 거칠고, 표현 그대로 피 터지게 싸우는 장면의 연속입니다. 서면 한 줄에 신경이 곤두서고, 상대방의 태도 하나에 하루 감정이 좌우됩니다. 이 국면만 놓고 보면 소송은 철저한 대립이고, 완전한 적대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소송을 끝까지 겪어본 사람이라면 결국 한 가지 사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아무리 치열하게 싸웠더라도, 사건을 마무리하려면 결국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입니다. 발과 발이 따로 움직일 수 없고, 손과 손이 따로 일을 할 수 없듯이, 소송도 마지막 단계에서는 상대방의 행동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합의서에 도장을 찍는 일, 조정안을 수용하는 일, 판결 내용을 이행하는 일 모두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윗니와 아랫니가 맞물려야 씹을 수 있듯, 결국 사건의 끝은 ‘맞물림’을 전제로 합니다.


문제는 그 시점에 당사자들의 감정 상태입니다. 소송이 길어질수록 감정은 이미 바닥을 지나 있습니다. 상대방의 말은 무엇이든 공격처럼 들리고, 양보라는 단어는 곧 패배로 해석됩니다. 머리로는 “이제 정리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감정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건은 여기서 자주 멈춥니다. 더 싸울 힘은 없는데, 끝낼 힘도 없는 상태. 이게 소송 후반부에서 가장 많이 무너지는 지점입니다.


이때 당사자끼리 직접 협력하라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미 신뢰는 깨졌고, 말 한마디도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원만한 정리를 기대하는 건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단계에서 변호사의 존재가 결정적으로 중요해집니다. 변호사는 누가 더 억울한지가 아니라, 무엇을 하면 사건이 의뢰인에게 유리하게 끝나는지를 기준으로 움직입니다.


소송 초반에는 ‘싸워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필요한 역할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 단계에서 변호사는 싸움을 키우는 사람이 아니라, 싸움을 끝낼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감정이 직접 맞부딪히지 않도록 사이에 서서 말을 걸러내고, 양보처럼 보이는 선택이 실제로는 손해가 아니라는 점을 설명하며, 끝낼 수 있는 최소한의 합의선을 현실적으로 제시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 시점에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와서 협력하라니 말이 되느냐”고요. 하지만 소송은 애초에 끝을 전제로 설계된 절차입니다. 끝나지 않는 소송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누가, 어떤 방식으로 끝내느냐의 문제만 남습니다. 변호사가 없는 상태에서는 감정이 결론을 가로막고, 그 사이 시간과 비용, 정신력만 계속 빠져나갑니다.


결국 소송은 반드시 마무리되어야 합니다. 싸움은 선택일 수 있지만, 마무리는 선택이 아닙니다. 끝내지 않으면 삶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이 마지막 구간에서 혼자 판단하고 혼자 결단하기에는, 이미 감정의 대가가 너무 큽니다. 그래서 오히려 소송의 끝자락으로 갈수록 변호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까워집니다.


어떻게든 마무리해야 하기에, 감정의 당사자 대신 끝을 설계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변호사는 감정을 없애주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 감정 때문에 사건이 멈춰 서지 않도록 길을 만듭니다. 소송의 마지막은 승패의 문제가 아니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정리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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