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바꾸기 위해서

by 지세훈 변호사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 변호사를 만나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다소 과장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운명이라니, 너무 거창한 표현 아닙니까. 그러나 오랜 기간동안 셀 수 없을만큼 많은 소송을 하다 보면 이 말을 완전히 부정하기도 어렵습니다. 소송 하나로 삶의 방향이 달라지는 장면을 반복해서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형사 처벌 한 번으로 직업이 끊기고, 이혼 소송 한 번으로 아이를 만나는 방식이 바뀌며, 민사 판결 하나로 수년간 쌓아온 사업의 기반이 흔들립니다. 그래서 저는 감히 말합니다.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 변호사를 만나야 한다고. 적어도 그 갈림길에서 혼자 서 있지는 말아야 한다고.


비슷해 보이는 사건이라도 결과는 결코 같지 않습니다. 법은 같고 절차도 같지만, 그 사건을 어떻게 구성했는지는 전혀 다릅니다. 무엇을 중심에 두었는지, 어떤 사실을 전략적으로 배치했는지, 어떤 표현을 쓰지 않았는지에 따라 사건의 뼈대가 달라집니다. 특히 초기 대응은 생각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형사 사건에서는 첫 조사에서의 진술 태도와 방향 설정이 이후의 흐름을 거의 결정해 버립니다. 가사 사건에서는 처음 제출한 서면의 구조에 따라 양육권이나 재산분할의 균형이 기울기 시작합니다. 민사 사건에서도 입증 계획을 어떻게 세웠는지에 따라 시작도 전부터 패소가 예정된 사건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어이없을만큼 금방 끝나는 소송이 되기도 합니다. 변호사를 만나는 이유는 단순히 서면 작성을 맡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설계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입니다.


의뢰인들은 종종 이렇게 묻습니다. “어차피 무슨 얘기를 할지 뭘 낼지는 정해져 있는 것 같은데, 제가 셀프로 그냥 하면 안되려나요?” 안되죠 당연히. 특히나 큰 금액이 걸려있는 사건의 경우에는 더더욱. 실제 사건에서는 한 문장의 표현, 한 장의 증거 제출 시점, 쟁점의 배열 방식이 판단의 초점을 바꿉니다. 사건의 사실관계는 같더라도, 그것을 보여주는 구조는 누가 어떻게 서술하는지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변호사가 의뢰인의 운명을 바꾼다는 말은 사실을 왜곡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같은 사실을 어떤 틀 안에 담아 보여줄 것인지가 달라진다는 의미입니다.


변호사가 기적을 만드는 존재는 아닙니다. 불리한 사실이 사라지지도 않고, 없는 증거가 생기지도 않습니다. 다만 불리함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한정할 것인지, 지킬 수 있는 선을 어디까지 확보할 것인지는 전략의 문제입니다. 저는 늘 말씀드립니다. 변호사는 큰 경제적 이익을 보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불가피한 소송 절차를 대신 감당해 주는 사람이라고. 소송을 혼자 끌고 가는 동안 소모되는 시간과 감정, 일상의 균열을 생각하면, 전문가의 개입은 비용이 아니라 방어 장치에 가깝습니다.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 변호사를 만난다는 말은, 최소한 무너질 범위를 줄이기 위한 선택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안타까운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주변 조언과 인터넷 정보로 대응하다가, 상황이 복잡해진 뒤에야 찾아오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미 상대방은 정리된 주장과 자료를 갖추었고, 수사기관이나 재판부의 인식도 어느 정도 형성된 뒤입니다. 그때는 되돌리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듭니다. “처음부터 맡겼으면 달라졌을까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저는 쉽게 대답하지 못합니다. 모든 사건이 극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불필요한 실수와 감정적 대응은 줄일 수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건은 한 번 방향이 잡히면 관성처럼 흘러갑니다.


운명이 이미 정해져 있었다고 말하면 편합니다. 결과를 받아들이는 데에도 그 말은 위안이 됩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느끼는 현실은 조금 다릅니다. 충분히 달라질 수 있었던 지점, 조금 더 일찍 설계했더라면 완충할 수 있었던 충격을 너무 자주 봅니다. 누구를 만났는지, 언제 움직였는지, 어떤 전략을 세웠는지. 그 선택들이 이후 몇 년의 시간을 바꿉니다. 그래서 저는 변호사를 만나는 일을 단순한 상담 예약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시간을 지키기 위한 결정입니다.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 변호사를 만나야 한다는 말은 과장이 아닙니다. 소송은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어떤 시기에는 인생의 방향을 크게 흔듭니다. 그 순간에 혼자 판단하고 혼자 책임지겠다고 버티는 것은 용기처럼 보일 수 있으나, 때로는 무모함에 가깝습니다. 제대로 싸울 생각이라면 사람을 신중하게 골라야 합니다. 소송은 판결으로 끝나지만, 그 이후의 삶은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변호사를 만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지금의 선택으로, 앞으로의 시간을 바꾸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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