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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Braun May 01. 2022

등가교환의 법칙

36번째 생일의 등가

 사람은 그 무언가의 희생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그와 동등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것이 연금술에서 말하는 등가교환의 법칙이다.


  몇 해 전 아주 재밌게 읽었던 '강철의 연금술사'라는 일본 만화에서 작품 전체에 흐르는 중요한 법칙이다. 등가교환의 법칙. 즉, 연금술이라는 배경 하에 어떤 가치 있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 가치에 필적할 만한 것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수학처럼 1:1은 아니다. 누군가가 남들이 원하는 가치를 먼저 가지고 태어날 수도 있으며 반대로 매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기회비용이라는 측면에서는 경제법칙과도 같다. 주어진 자산으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만화 속 주인공 에드워드는 이미 돌아가고 세상에 없는 어머니의 시간을 돌리기 위해 연금술을 자행하지만, 그에 합당한 가치는 동생의 신체 전부와 본인의 다리 한 짝이다. 본인은 몰라도 꼭 동생의 신체는 돌려주겠다는 마음으로 진행되는 모험과 그 모험에서 밝혀지는 작품 속 음모를 현실을 빚대어 보게 해 준다.  



 갑자기 아침부터 등가교환을 외치는 이유는 어제의 경험 탓이다.

절대 걸리지 않을 것 같던 코로나가 우리 집을 정복한 날로부터 둘째 주가 되니 몸은 어찌어찌 회복이 되는 것 같은데 생각지도 못한 고통이 찾아왔다. 오른쪽 뒤통수가 찌릿찌릿한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통증이었다. 두통이라고 말하기엔 뭔가 물리적인 타격감도 꽤 무겁게 느껴지는 세상 처음 겪어보는 통증이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름조차 낯선 '신경외과'에 진료를 갔다.

 내가 예상했던 시나리오는 이랬다. '코로나 때문에 염증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약 드시고 푹 쉬시면 좋아질 겁니다.' 어쩌면 나이가 하나하나 차오르면서 이상해진 성향은 위와 같이 있지도 않은 상황을 허구로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즉, 늘어난 경험을 바탕으로 내 미래를 유리하게 점쳐보는 능력 같은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예상에서 크게 빗나갔다.

 알 수 없는 승리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의사는 '무슨 운이 있으셨나 봐요? 어떻게 절 찾아오시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큰일 날 뻔하셨어요.' 일반적으로 이런 식의 멘트를 들으면 나는 십중팔구 의사를 의심하게 된다. 특히나 뼈, 신경 관련된 의료 분야에 대해서는 실비보험을 담보로 한 바가지의 이미지가 뇌리에 크게 남아있다. 그러나 이 의사의 묘한 승리감은 돈에 대한 승리감보다는 본인의 전문 분야에 대한 자신감으로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었고 무엇보다 X-ray와 중력 법칙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척추 4번 5번 사이의 디스크부터 시작해서 기초가 무너져있습니다. 그러니까 목도 무너져 내립니다. 지금 통증은 묻혀있다가 지면으로 올라온 작은 예시입니다. 지금부터 관리를 안 하면 큰일 나요.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약 10년 정도 빠른 것 같은데요? 어떤 일 하세요?' 의사가 이야기하는 동안 멍하게 X-ray를 지켜보니 정말 등이 꽤 많이 휘어있다. 거기다가 디스크라고 추정되는 것들이 불균형한 것이 눈으로 보인다. 목뼈도 비슷하게 휘어있다.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가지만 요즘 유행하는 '오히려 좋아'라는 마인드로 의사의 이야기에 경청한다. 이후 '아 내일이 생일이어서 선물 받은 느낌이네요. 이제라도 알았으니 도움 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치료를 예약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특별히 뼈가 약하거나 자세가 안 좋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몸의 어느 한구석이 뻐근하다면 딱 남들만큼 이라고 생각했다. 현재 직업은 IT 계열이 맞지만 사실 하루 종일 앉아있는 개발자는 아니다. 그리고 순수 IT업력은 높지도 않다. 어떤 이유로 중요한 척추가 이토록 망가졌는지 이유를 찾아 과거를 곱씹어 본다.

 몇 가지 과거의 상황이 포착된다. 최근 가장 성과가 높았던 이전 직장에서 나는 스마트폰과 한 몸처럼 살았다. 이유는 일을 즐기다 보니 어떤 요청에도 2분 안에 대답하고 싶었고 그것이 습관이 되었다. 9to6는 노트북과 보내고 그 이후 자기 전까지의 시간은 핸드폰을 손에 놓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무너진 자세로 일의 희열을 느끼고 있었던 나 자신이 그림처럼 그려진다.

 하나의 이미지가 떠오르고 나니 따라오는 것들은 매우 빠르게 복기된다. 일을 열심히 했다고 보상의 심리로 나에게 주어지는 야밤의 한잔. 그리고 그 한잔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유튜브 영상들. 몸이 지뿌둥한 것은 운동으로 풀어야 한다며 허리를 혹사시키는 테니스까지. 이렇게 복기하고 보니 그러려니 싶다.

 이 시점쯤 '등가교환'의 법칙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목을 최대한 굽히지 않아야 하는 자세 교정을 생각하다 보니 실생활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보다 많은 활동을 목을 굽힌 채 시행한다. 이러다 보니 목을 굽혀야 하는 상황에 대해서 조금은 치사해진다. 결국은 등가교환의 법칙에 이르게 된다.

 '내가 가진 디스크가 이미 10년 당겨 쓴 것이라면, 앞으로 많이 아껴 써야 하는데 지금 이 행위로 목을 굽혀야 하는 게 맞아?' 아무 의미 없이 핸드폰을 보기 위해 굽히는 목과 내 아이의 책을 읽어주기 위해 굽히는 목은 모두 같은 내 목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내 건강을 소중한 곳에 아껴 쓰고 싶은 생각이 크게 든다. 물론 아주 작은 행동이 바로바로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지만 결과적으로 잃고 얻는 것의 시작점이라고 하면 내가 가진 아주 소중한 자원을 소중하게 쓰고 싶은 마음이 든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몇 해 전 IT 업계로의 이직의 순간이 떠오른다. 그 이전 회사는 꽤나 전통적인 방식의 영업을 추구했던 회사였고 사무실에 앉아있는 시간은 매우 드물었다. 그 대신 1주일에 4일은 만취하는 삶을 살았었다. 그때 이직하지 않았으면 다른 장기가 손상을 입었을까? 물론 소득도 달라져 있겠지.

 이쯤 되니까 어떤 식의 등가교환을 인생에 있어서 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다시 만화로 돌아가 보면 주인공 에드워드는 잃어버린 어머니의 '시간'을 두고 등가교환을 시도한다. 그러다가 어머니는 돌려받지 못한 채로 동생을 신체를 비롯하여 많은 것을 잃어버린다. 가만히 보니 인생의 등가교환의 핵심을 작품 최초에 이미 이야기하고 시작한다는 느낌이 든다. 바로 누구에게나 평등한 '시간'이다.

 미래라는 시간이 불분명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우리는 축적을 한다. 그 축적의 최종 단계가 우리가 좋아하는 돈이다. 노력을 돈이라는 대가로 교환하고 가능하다면 쌓아둔다. 그리고 그것을 많이 쌓아 둘수록 미래의 아득한 시간으로부터 보호받는다는 생각이 든다. 맞는 말이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 자체가 시간의 가치를 갖기 때문에 돈이 많을수록 더 많은 돈이 모인다.

 돈에 대한 중요도는 너무 소중한 내 아이가 태어나면 더 크게 느껴진다. 새롭게 시간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에게 모두가 가지고 태어나는 '시간'말고도 부모가 가진 '돈'이라는 잉여 가치로 도움을 줄 수 있다. 역시나 맞는 말이다. 이 간단한 사실에 우리는 모든 것을 걸기도 한다.

 돈은 시간을 보완하기 위한 개념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개개인의 시간보다 돈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을 담보로 돈을 벌고 그것이 인생 전체를 아우른다. 이렇게 쓰고 보니 돈이 시간의 가치를 넘어서는 것이 불편한 의견처럼 보일 수 있는데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오히려 돈은 시간만큼 소중한 가치이다. 다만 잘 알지 못하는 이라는 것에 허상에 휘둘리며 시간을 소중하게 쓰지 못하는 것에 대해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보고 싶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라는 말이 있다. 일이 힘들 때 약간의 쉼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문장이다. 이 평범한 문장이 깊게 들린다. 다만 이 문장을 쓰는 시점이 중요하다.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몸에 무리를 느끼고 푸념처럼 뱉으면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저 문장을 사용하는 것은 다르다. 다 먹고살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을 소중히 분배해서 써야 하며 그 밀도가 높아야 한다. 먹고사는 것은 잉여가치인 돈만 가지고 할 수없다. 돈+시간이 있어야 먹고살고 즐기는 것이다. 그러려면 일반적인 등가교환의 법칙을 적용해서는 안된다. 내 1시간이 남들의 2시간, 아니 오히려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내가 설정해 놓은 어느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 그래야 내가 만족할만한 시간이 확보가 되는 것이고 여유 시간은 인생을 선순환시킨다.

 의미 없이 스마트폰을 바라보기 위해 쓰는 나의 목과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기 위해 쓰는 나의 목의 가치는 다르다. 이 글 역시 약 2시간 정도의 글쓰기 시간을 지탱해주는 내 허리를 담보로 한다. 모든 활동에서 이렇게 계산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내 가치를 가늠하고 사용할 시간을 설정하는 습관은 매우 중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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