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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Braun Jul 05. 2022

기꺼이 친절할 수 있는 조건

충분히 친절한 것으로 충분한 걸까?

 친절하다는 말은 음식점의 배려 깊은 서비스부터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진 회사 자료까지 이르는 사용성이 높은 단어이다. '오, 자료가 꽤 친절하네'라는 말은 어려운 내용을 읽는 사람이 하여금 상당히 쉽게 그러면서도 내용의 빠뜨림 없는 자료를 보면서 나오게 되는 감탄사이며, '이 집은 주인이 친절하네'라는 말 역시 평소에는 받지 못했던 배려를 겸한 서비스를 받았을 때 나오는 감탄사이다. 가만히 보면 친절이라는 단어는 긍정의 가치 그 자체이지만, 친절의 대상이 되는 행위는 상당히 수준 높은 노력을 요구한다. 자료가 꽤 친절해지기 위해 전체를 이해하고 모두가 이해할 수 있게 풀어내는 노력, 급이 다른 배려에는 타인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을 갖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우연히 제주도에서 생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제주도는 많은 예술가 그리고 브랜딩을 전문으로 하는 사업가들의 제2의 요람 같은 느낌이다. 그만큼 많은 사업가들이 각각의 특색과 취향을 무기로 작고 큰 가게들을 운영한다. 아마도 요즘 제주의 핫함의 절반은 이들에게서 나온다고 생각된다. (물론 나머지 절반은 특유의 자연환경이다.) 갑자기 무슨 제주이야기냐고? 제주에서 경험한 작고 큰 특색 있는 가게에서 느낀 경험을 통해 친절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2개의 각기 다른 상점에 대한 이야기이다.



  첫 번째 상점은 브런치/파인 다이닝을 주 무기로 하는 카페였다. 제주의 민가를 리모델링하여 만든 공간으로 전체 부지가 넓고 넉넉했다. 소품 하나하나 허투루 한 것이 없었고 제주의 느낌을 잘 담았다. 여백의 미까지 느껴진다. 전반적으로 카페의 느낌에 대해 표현하자면 '내공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섬세하게 브랜딩 된 공간'이었다. 문득 질문이 생긴다. '어떤 사람들이 만들었을까?'

 요즘은 사실 확인이 쉽다. 상점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고 관계되어 있는 사람들의 계정을 몇 개만 확인하면 대충은 어떻게 만들어진 공간인지 알 수 있다. 이미 서울에서 카페와 음식점 브랜딩에 능숙한 사람을 필두로 피아니스트, 셰프, 브랜드 담당, 제주 지역 젊은 농부 등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상당히 두터운 공동 운영층이 있는 집단이었다. 그러니 그 콜라보를 통해 만들어진 공간이 내공이 없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네이버 평점도 좋다. 전반적으로 친절하다는 평가다. 여기까지가 이 카페에 대한 이미지이다. 친절에 대해 고민은 메뉴에서 '아포가토'를 시켰을 때 시작되었다.

  아포가토. 커피에 아이스크림을 한 스쿱 넣은 이탈리아식 메뉴이다. 한국에서 아포가토를 시키면서 원하는 경험은 달콤함과 씁쓸함의 조화이다. 근데 이 집의 아포가토는 짠맛의 향연이었다. 기대하지 않은 상황이 발생하면 보통 2가지 반응으로 나뉜다. (1) 분위기에 압도되어 이 메뉴는 원래 이런 맛을 가진 거구나 지레짐작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거나 (2) 기대하지 않은 음식에 대해 불평하거나. 전자는 창피함을 당하고 싶지 않아 손해를 보고 후자는 자칫 무례해 보일 수 있다. 내 손이 빨라진다. 검색을 해 본다. 키워드는 '아포가토' + '소금'이다.

 검색 결과에 소금에 절인 카라멜 아포가토가 잡힌다. '아, 뭔가 전통적인 방식이 있는 거구나'라고 생각하지만 그러기에도 이 녀석은 너무 짜다. 손해도 보고 싶지 않고 무례하고 싶지도 않은 제3의 선택지, 맛에 대한 질문을 선택한다. 셰프라고 하는 사람은 원래 그렇게 짜다는 짧은 말과 함께 꽤 당당한 표정을 짓는다.

 '우리 가게의 아포가토는 전통 방식을 따라서 짠맛이 느껴지는 메뉴입니다.'라는 친절함은 사치였을까? 혹은 아포가토의 역사에 대해 일목 요연한 설명을 듣는 경험은 너무 기대가 큰 걸까? 실제로 가게의 모든 직원은 친절한 편이었다. 공간도 좋다. 그런데 한 가지 메뉴에 대한 불친절함으로 그 가게는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가게가 되었다. 오히려 그것을 불편함이 아니라 나의 내공 부족으로 생각해야 되는 걸까? 혹시 가게의 손님을 취향의 수준으로 걸러내는 필터의 기능을 하는 숨김 메뉴였을까?



 두 번째 상점은 내추럴 와인을 다루는 가게였다. 예쁜 공간과 다양한 셀렉션으로 이미 블로그에도 유명한 가게지만 친절에 대한 평이 상당히 나뉜다. '여주인이 히스테릭하다.'가 기본적으로 메인 악평이다. 약 70%의 리뷰어가 여주인의 히스테릭함을 이야기하니 조금은 두려워졌다. 다행히도 나머지 30%는 아주 특별한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공간은 잘 꾸며져 있었다. 치밀한 계산에 따라 의도적으로 배치된 느낌보다는 오랜 시간 한 사람의 취향을 통해 수정하고 추가된 공간이었다. 중간중간 '와인 구매 후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는 어쩌면 상당히 불친절한 문구들이 붙어있었지만 그 가게의 핵심 주제인 와인에 대해서는 부족함이 없다. 셀렉션 하나하나 병목에 달린 라벨을 통해 맛과 향 그리고 그에 맞는 마리아주에 대해 적혀있다. 이 집에서의 친절에 대한 경험은 '와인은 좋아하지만 내추럴 와인은 처음인데요, '라는 말과 함께 시작되었다.

 여주인의 눈동자가 강렬해지는 것이 물리적으로 전달된다. 그리고 마치 순서가 있는 것처럼 설명을 시작한다. 그리고 묻고 답하기 시작하다 보면 어느새 나의 선택지는 2개 내외로 줄어든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구매할 와인에 대해 어떻게 경험 하는 것이 좋은지, 마치 본인이 그 와인을 즐길 때의 경험을 떠올리듯 과하지 않게 스토리를 풀어놓는다. 기꺼이 친절하다는 말이 어울릴까? 본인이 사랑하는 주제를 설명하는 그 눈이 아직도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반대로 와인을 경험하려는 준비가 되지 않은 예쁜 공간에서 사진을 남기기 위해 방문한 사람들에게는 불친절한 장소가 될 것 같았다. 아마도 이 공간의 주인은 이 공간이 온전히 와인에 대한 경험으로 가득 차기를 바라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방향성대로 되지 않아 불친절함을 필터로 사용하는 느낌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친절함은 탁월함의 경험과 연관이 깊다. 공산품, IT Product, 서비스 등 모든 분야의 소비재 경험에서 탁월하다고 상품은 결국 사용하는 User을 긴밀히 관찰하고 그 Needs를 다른 어떤 제품보다 더 친절하게 채워준다. 다만 그 친절의 종류가 '충분한가'와 '탁월한가'는 조금 다른 문제이다.

 충분한 친절은 보통 다수를 타겟팅한다. 많은 사람들이 배려를 느끼는 충분한 친절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라는 느낌을 전달한다. 무인양품과 관련된 책을 읽었을 때 비슷한 문장을 본 것 같다. 일상생활에서 이걸로 충분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 무인양품의 철학이라는 문장이다. 그래서인지 무인양품의 디자인을 처음 접했을 때는 특정한 이미지가 주를 이뤘지만 지금은 정말 생활에 가까운 그러나 상당한 퀄리티와 디자인을 지닌 브랜드로 평가된다.

 탁월한 친절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내추럴 와인가게의 여주인의 눈과 닮은 것 같다. 취향을 같이하는 사람에 대한 기꺼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친절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종류의 친절은 고객의 페르소나를 한정시키고 그 배려의 깊이를 몇 개 층을 더 파고든다. 따라서 소수를 타겟팅하지만 특정 소수에게는 치명적인 서비스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나를 정의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는다.



 약 8년의 직장경험을 통해서 충분히 친절한 사람이 일잘러로 인정받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려운 문제를 이해하고 정리하고 쉽게 풀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그 친절을 일에 대한 능력으로 평가하고 그 평가에 즐거워지는 경험이 나의 직장생활의 축약형이다. 다만 요즘 들어 그 충분한 친절에 대한 권태감이 든다. 충분한 친절은 탁월함과는 항상 어느 정도 거리감이 있기 때문에 탁월함에 대한 목마름이 느껴지는 요즘이다.

 대기업에서 혁신적인 제품이 쉽게 나오지 않는 이유도 어쩌면 충분한 친절에 기인하는 것 같다. (아니면 통계의 오류에 기반한 가짜 사실 일수도 있다.) 기업에서 일잘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다수가 좋아하는 충분한 친절을 몸에 익혀야 하고 충분한 친절의 집단에서 내놓을 수 있는 제품은 충분한 제품에 제한될 수 있기 때문에 탁월함에 기반한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 내기 어렵다는 논리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유명 기업들은 다양성을 존중하며 기업 문화로써 탁월함을 추구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 같다.



 충분히 친절한 사람이 될 것이냐 혹은 기꺼이 친절한 사람이 될 것이냐의 문제는 당장 선택할 수 있는 내용의 성질이 아니다. 현재 기반이 되는 삶이 있고 그 삶의 환경을 완전히 리폼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장기적으로 친절함을 유지하는 에너지의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나는 기꺼이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다. 기꺼이 친절하기 위해서는 그 분야 혹은 제품을 충분히 즐기고 사랑해야 하고 그것에 기반한 열정은 눈치 보는 것보다 오래갈 것임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물론 충분한 친절이 내가 사랑하는 분야라고 생각되면 타고난 직장인이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아니다. (가장 친한 친구가 이 부류이다. 부럽다)

 충분히 친절한 것으로 충분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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