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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 May 29. 2023

의무와 권리

먼저 난 정치라고는 쥐뿔도 모른다라는 말로 시작을 해야겠다.

관심도 없을뿐더러 특히 한국 정치는 이쪽도 저쪽도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으므로 나는 아무 상관하지 않는다. 내가 오늘 쓰고자 하는 것은 정치가 아닌 오롯이 사회적 현상에 관한 것이다.


권리만을 추구하는 세상

과연 옳은 것인가?


미국이 돌아가는 현실을 보고 있자 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개인으로서 사회에 이바지해야 하는 의무감이란 휴지통에 버린 지 오래된 채, 나의 인권, 나의 안락함과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미국의 현실이 나는 아주 불안하기만 하다.


사회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은 그 나라의 정부와, 정부를 넘어 그 나라의 시민으로서 다 같이 고민하고 지고 가야 할 풀어내야 하는 숙제가 맞다. 아무리 애를 써도 풀리지 않는 상황이라는 게 있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로부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거나,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 소외된 약자들을 최대치로 다른 이들과 대등한 선에서 출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은 단연코 정부의 중요 임무일 것이다.


그렇게 정부와 사회의 의무가 있듯이,

개개인의 의무도 주어져야 한다.


모든 것은 "인생은 공평하지 않다"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에서부터 시작한다.

남들 못하는 유학 가서 편하게만 산 네까짓게 뭘 알겠냐라고 보인다면 이 창을 꺼도 좋다.

하지만 내가 브런치에 하나하나 나열하지 않는다 해서, 나의 삶이 어려움과 고난 없이 햇빛만 찰나 한 나날들은 아니었다는 것을 믿어주길 바란다. 

내가 손쓸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해 보았다. 눈물로 밤을 지새워 보았고, 나아지지 않을 거 같은 내일이 두려워도 보았다. 나에게 주어진 불공평함을 원망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 원망은 한때의 phase어야 한다. 원망이 우리를 집어삼키게 해서는 안된다.


내가 지금 나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현실은 쓸지라도 받아들여야 한다. 나의 판단으로 비판하되, 비난으로 내 삶을 채워 넣어서는 안 된다. 불공평한 이 세상에 넘어질 수 있다. 아플 수 있고 좌절될 수 있지만, 어느 순간 내가 나의 힘으로 일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 일어설 용기가 없는 나를 억지로 일어서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갓난아기를 보자. 그 작고 vurnerable 한 아기조차 스스로 머리 돌리는 방법, 먹고 자고, 때가 되면 일어서고, 걷고 달리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아이는 평생 살아도 살지 않은 인생이 되어버릴 것이다.


아무리 불공평한 세상이나 사회일지라도

그것들과 무관하게 이 세상에 태어났다면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긍정적인, 미래지향적인 사고로 건강한 시민의로서의 맡은 바 임무를 다해야 한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조심하자.

세상이 날 이렇게 대했고 사회가 날 이런 상황으로 몰았다고 생각하면 출구 없는 블랙홀인 것이다.

과거는 과거대로 받아 들 일 수 있는 배포가 필요하다.

생각해 보라.

네가 예전에 이랬기 때문에 내가 지금 너한테 이런다.

네가 나와 비슷한 쟤한테 이렇게 했기 때문에 지금 내가 너와 비슷한 너 친구한테 이런다.

모든 사회가 이러한 방향으로 흐른다면 인류가 과연 지속될 수 있을까?


과거 나치정권이 유대인을 핍박했다 해서 지금 유대인이 지나가는 독일인을 학대한다면 정당화되는 것일까?

더 과거로 올라가 보자, 그러면 나폴레옹이 유럽을 정복했을 때는? 그때 정복당한 수많은 나라들이 지금 프랑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맞는일일까?

역사를 통틀어 보면 억울하고 분통 터지는 일들의 나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인간의 역사는 안타깝게도 계속 그렇게 흘러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공평함"이라는 유토피아적 사상을 쫒는다고 공산화한 러시아의 스탈린, 중국의 마오쩌둥이나 캄보디아의 폴 포트 밑에서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과거의 억울함은 잊고 현재의 inequalities 속에서 나라는 개인이, 나아가 우리의 공동체가 어떠한 방법으로 positive한 outcome을 창출해내 우리 후세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해보자. 무턱 된 감정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realistic하게 우리 눈앞의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아갈 때 우리는 조금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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