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우스키펄 Jul 10. 2024

남편의 시간

아들만 키우다 무심코 바라본 아저씨

전업주부가 되어 가끔 집에서 가만히 있다 보면, 단절된 시간을 사는 느낌이 들어서 인지 회사처럼 지내는

집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보고 싶다.

유명한 작가 그림을 사서 걸어두고 싶지만 그럴 돈은 없으니

처음에는 꼬맹이 아들에게 그림을 부탁했다.

아이에 손을 어떤 그림을 그리든 자유로움과 신선함이 묻어 있어 어디에나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아들이 그려준 웃는사람

느 순간부터 조금 더 내가 원하는 그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의 반려자 신랑에게 그림을 좀 그려줄 수 있는지 물어봤다. 사실 처음 부탁했을 때는 아들만큼이나 자유분방한 스타일의 그림이 나올 줄 알았는데, 웬걸

누구보다 섬세하고 티끌 한 개 까지도 완벽하게 따라 그려주기 시작했다. 어디든 척하고 올려놓으니

내 마음엔 딱이다.

알록달록한 색감을 원했던 나의 니즈를 담은 그림

신랑과 함께한 시간이 13년이 되어가는데 이토록 섬세한 사람인지 몰랐다. 그저 생활비 척척 가져다주는 일 잘하는 남자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긴 손가락에 얇실한 손끝이 야무져 보인다. 생각해 보니 신랑도 여태껏 뭘 하면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자신에 대해 모르게 많아 보인다.

그림을 그릴 때 나오는 신랑의 순수한 모습에서 나도 모르는 찡함을 느꼈다. 다 그려선 쑥스럽다는 듯 쓱 내밀며

"이상하다"라고 얘기하는 신랑.

거기에 내가 척하고 그림을 전시하며 너무 이쁘다 내 맘에 쏙 든다 하면  실룩거리는 입꼬리.


처음에는 그림욕심에 부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림 보다 신랑의 순수한 모습이 더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신랑의 그림을 볼 때면 신랑의 입꼬리가 같이

떠올라 눈과 마음까지 풍요롭다.

일요일저녁 주방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려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