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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Jun 30. 2024

<농촌에서 살아보기 퇴고글>공생 혹은 포식자?

- '농촌에서 살아보기'과정에 대한 스물 다섯번째 글

  뭔가 일이 벌어진 모양이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동료들의 카톡방이 불이 날 정도로 울려댔다. 카톡방을 열어보니까, 대표님과 교장선생님이 뱀을 잡고 있는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독뱀이었다. 6월초여서 뱀이 많이 나오는 시기였다.

  사실 그 전 주에도 나와 전장군님이 지나가는 뱀을 잡으려다 실패했었다. 대추방울토마토 밭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단풍나무 가지를 전동 톱으로 잘라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잘라낸 가지들을 밭 근처의 집 뒤편에 쌓아 놓고 있었다. 그런데 뱀이 우리 앞을 지나서 집 밑으로 들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독뱀이었다.

  전장군님이 괭이로 뱀을 꼭 붙잡고, 나는 와이자(Y) 형태의 나무 가지로 뱀을 다시 눌렀다. 그런데 뱀의 힘이 대단했다. 두 사람이 잡고 있었지만, 한참을 몸부림 치더니 빠져나가고 말았다. 그 집 아래에 쥐가 많이 살고 있어서, 뱀들이 쥐를 잡아먹으려고 많이 나타난단다. 얼마 전에도 뱀이 그곳에 나타나서, 동료인 최선생님이 한 마리 잡았었다. 

  “고양이들이 쥐를 잡아먹으면, 뱀이 줄어들겠죠. 그런데 우리 집 고양이는 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하하하”

  뱀을 잡으려다 놓친 이야기를 들은 김대표님의 대답이었다. 나타난 뱀을 잡기 보다는, 뱀을 끌어들이는 먹이 사슬을 끊어 주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전원생활을 하게 되면, 흔하게 보는 장면이다. 집 근처에 밭이나 산이 있기 때문에, 뱀이나 고라니, 노루, 멧돼지 등이 수시로 나타난다. 대부분의 동물들이 사람을 보면 도망가지만, 때로는 해를 끼치기도 한다. 특히 뱀이 집안에서 왔다 갔다 하면, 무릎까지 올라온 장화를 신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이 생긴다. 

  지금은 뱀을 식용으로 생포하는 것을 법으로 금하고 있고, 뱀을 식용으로 먹는 사람조차도 훨씬 줄어들었다. 이제 개체수가 늘어난 뱀을 시골의 민가 주위에서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뱀이 좋아하는 쥐나 설치류들이 민가 주위에 많기 때문에, 뱀도 자연스럽게 먹이를 잡아먹으려고 온다. 

  한국에는 11종류의 뱀이 살고 있는데, 그중 살모사, 까치살모사, 쇠살모사, 유혈목 4종류가 독을 가지고 있다. 뱀의 독은 자기 방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냥을 하기에 적합한 형태로 발전되어 왔다고 한다. 독이 강해야 사냥감을 빨리 죽일 수 있기 때문에, 사람까지도 죽일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독을 가지고 있다. 시골에서 사람들이 뱀을 발견하면 죽이려고 하는 이유이다. 누군가가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022년 9월 감자 수확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한참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바로 근처에서 개 짖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나는 감자 밭의 이웃집에 사는 개가 짖는 줄 알았다. 그런데 몇몇 동료가 산채마을에 사는 ‘초코’라고 알려주었다. 감자 밭 주위에 쳐놓았던 노루망에 걸려 있는 노루를 발견한 초코가 짖고 있었다. 

  나는 얼른 초코 근처로 달려가 보았다. 과연 수컷 노루의 뿔이 노루망에 걸려 있었다.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었지만, 뿔이 단단하게 걸려있었다. 이 노루가 우리 밭에 감자 잎을 뜯어먹으러 들어왔다가 걸린 것이다. 몇 시간동안 발버둥을 치던 노루는 결국 제풀에 지쳐 버렸다. 

  겨울이면 산 근처의 노루망에 죽어 있는 고라니나 노루를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산에서 먹이를 찾기 어려워진 고라니나 노루가 민가로 내려오다가, 노루망에 걸려 굶어 죽는 것이다. 이렇게 노루망에 걸린 노루나 고라니를 풀어 주기가 쉽지 않다. 사람이 다가가면 발버둥을 쳐서,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생의 어려움이다.

  

  고라니나 노루는 사람을 피해 다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다만 농작물에 주는 피해가 크다. 농작물을 뜯어먹기도 하지만, 밭을 밟고 다니면서 농작물들을 꺾어 놓는 것이 다반사이다. 그래서 산과 인접한 밭에 가보면, 예외없이 노루망을 쳐놓는다. 

  고라니는 전세계적으로 멸종위기동물이지만, 우리나라에서만 유해동물로 지정되어 있다. (노루는 포획이 금지되어 있다. 멸종 위기 동물이기 때문이다.) 전세계 개체수의 90%가 한국에 있다고 한다. 고라니가 중국 일부지역과 한국에만 서식하는 탓이다. 고라니는 한번에 3~4마리 새끼를 낳으면서 번식력도 좋아서, 노루나 사슴 등에 비해 개체수가 빠르게 늘어난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고라니를 잡아먹을 대형 포식 동물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고라니에게 좋은 서식환경을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수렵허가를 받은 사람에 한해서 수렵기간에 사냥이 허용된다. 

  개체수가 늘어난 고라니는 점차 사람이 사는 영역으로 내려와서, 피해를 많이 입히곤 한다. 유일하게 우리나라가 고라니를 유해동물로 지정하고 있는 이유이다. 생태계가 무너져 버린 탓에, 대형 포식 동물 대신 사람이 직접 고라니를 잡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심지어 멧돼지는 심심치 않게 대도시 중심가에 나타나서 언론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소방관이나 경찰이 출동해서 마취제를 이용해서 생포하기는 하지만, 사람들에게 상해를 입히기도 한다. 겨울철이면 정해진 구역과 기간내에 멧돼지의 사냥을 허용한다. 때로는 전문 사냥꾼을 고용해서 사냥을 한다. 이제 인간이 직접 개체 수를 조절해야 하는 실정이다. 


  인간이 자연환경을 파괴하면서, 산속에서 지내야 할 동물들이 사람이 사는 민가에 내려오는 일이 흔해졌다. 먹이사슬이 끊어지면서 먹이를 찾아서 마을로 내려오는 것이다. 더군다나 강원도에는 귀촌 인구가 늘어나면서, 경치가 좋은 산속에 집을 짓는 경우가 많다. 자연히 가까운 곳에 동물들의 서식지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들 동물들 중에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들도 많다. 자연 생태계에 의해서 개체수가 유지되어야 할 동물들인데, 사람이 개입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생태계를 무너뜨린 사람이 결국 책임을 지게 된 셈이다. 

  자연과 함께 살기 위해서 전원생활을 택했기에, 자연의 한 부분인 동물들을 배척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상위 포식자로서 행동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공생할 수 있는 법이 있는 것인지 고민을 해야할 부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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