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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Dec 14. 2024

<2년차 귀농인의 하루>비즈니스관계와 인간관계

- 귀농 2년차에 경험한 열여덟번째 이야기

  “어제 갑자기 펜션사업에서 손을 떼라는 통보를 받았어요.”

  술 한잔 사달라는 신반장의 요청으로 마주한 자리였다. 별다른 이야기없이 소주잔을 연신 들이켜던 신반장이 말문을 열었다. 

  “지난 1년반동안 펜션의 리모델링 작업부터 시작해서 에어비앤비, 인스타그램 등에 홍보도 하면서, 매출을 몇배나 늘려 놓았죠. 덕분에 저도 횡성에서 soft-landing 할 수 있었고요.”

  2022년 ‘농촌에서 살아보기’ 교육과정이 끝난 뒤, 신반장은 산채마을에서 운영하던 펜션 중 2채를 위탁 받기로 했다. 기존에는 사무장이 운영했었는데, 카페와 함께 병행하기가 버거웠던 상황이었다. 마침 펜션 운영에 관심이 많던 신반장이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세웠고, 사무장과 김대표님을 상대로 presentation을 진행하였다. 발표자료에는 온라인 마케팅계획을 포함해서 관리운영방안, 리모델링 계획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서로에게 만족스러운 과정이었다. 

  펜션 위탁사업을 하기로 결정되면서, 신반장 부부는 김대표님으로부터 필요한 것들을 추가로 지원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들 부부가 살 주택을 얻기까지 수개월동안, 산채마을의 펜션 중 하나를 값싸게 임대받았다. 그리고 신반장이 청년 귀농정착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농업경영체 등록을 포함해서 필요한 조건들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횡성에서 생활하는 데 가장 중요한 수입기반이 갖춰졌다. 펜션 사업에서 매달 수백만원의 수입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반장 부부가 귀농 자금이 충분치 않다는 것을 안 김대표님의 배려였다.


  신반장이 제시한 리모델링 방향성에 따라, 2022년 겨울 펜션의 변화 작업이 진행되었다. 농촌 휴양시설 사업의 일환으로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사업비로 비용을 충당하였다. 산채마을은 삽교1리 마을 주민들이 투자해서 만든 기업이어서, 정부의 지원을 받기 쉬웠다. 농촌마을의 소득 증대를 위해서, 마을의 자연자원을 활용한 숙박이나 체험프로그램에 대한 정부 지원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리모델링 작업이 진행된 후, 신반장이 위탁운영을 하기 시작했다. 리모델링 비용이 투자된 만큼 주변의 펜션보다는 고가화 전략을 택했다. 더불어서 그동안의 전화 예약 방식에서 에어 비앤비를 통한 인터넷 예약 방식으로 전환하였다. 주 이용자들인 20, 30대 소비자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sns 홍보를 적극적으로 진행하였다. 펜션을 둘러싼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비롯해서, 다양한 시설들을 소개하는 웹사이트도 개설하였다. sns에는 사진뿐 아니라, 신반장 부부의 귀농과정을 녹여 내었다. 펜션사업을 하는 젊은 부부의 스토리를 만들어갔다. 

  신반장 부부의 노력으로 인해 점차 매출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맡기 전보다 두배 이상 매출이 커졌다. 산채마을과 신반장 모두 수입이 늘어나면서, 모두 win-win하는 구조를 형성할 수 있었다. 

  신반장이 맡은 후 약 2년 동안, 펜션 운영 사업은 순조로웠다. 그런데 갑자기 산채마을 사무장이 청천벽력같은 통보를 해왔다. 12월말까지만 운영하고, 그 뒤부터는 마을에서 직접 맡겠다는 내용이었다. 사무장이 통보한 시점은 2024년 9월초였다. 신반장 입장에서는 왜 그런 이야기가 갑자기 튀어나왔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위탁 계약을 끝내겠다는 어떤 징조도 사전에 발견하지 못하였기에, 더욱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신반장 부부는 통보받은 그날부터 펜션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과정이었기에, 차라리 빨리 떠나고 싶어했다. 며칠 후 사무장에게 위탁사업을 즉시 중지하겠다는 통보를 했다. 그렇게 신반장과 산채마을간에 진행되었던 비즈니스 관계는 끝이 나고 말았다. 서로가 상처를 적게 받을 수 있는 헤어짐의 과정이 아쉬운 대목이었다. 

  위탁운영계약이 구두로만 진행되었고, 끝나는 시점에 대해서 사전에 논의된 바 없었단다. 농어촌에서 맺어지는 많은 계약들이 정식 문서없이 구두 계약의 형태로만 형성되는 것이 일반적이기도 하다. 구두 계약으로 맺어진 탓에, 어느 일방의 통보만으로도 헤어짐을 막을 수 없었다. 

   

  “비즈니스 관계는 끝났지만, 그동안 맺어왔던 인간적인 관계는 유지되었으면 좋을 것 같네.”

  신반장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해준 조언이었다. 30대 후반의 신반장은 아직 젊은 탓인지, 경황이 없어 보였다. 내 경험으로는 이런 때에 자칫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상황까지 벌어지기 쉬웠다. 

  둔내면은 인구 6천명의 작은 곳이다. 더군다나 신반장은 김대표님 가족들이 사는 삽교 1리에 인접한 자포곡리에서 주택을 구입해서 살고 있다. 우연이라도 마주칠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그리고 농촌에서는 소문이 금방 퍼지곤 한다. 신반장네와 김대표님 가족이 서로 원만한 관계를 만들지 못한다면, 토박이인 김대표님보다는 신반장에게 좋지 않은 이야기들이 퍼질 가능성이 높았다. 특히 앞으로도 신반장이 지역 기반이 튼튼한 김대표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일들이 많을 것이다. 

  나는 이와 같이 여러가지 이유를 들면서, 신반장이 김대표님 가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를 권했다. 그러나 내 뜻대로 진행되지는 못했다.  

  “얼마전 김대표님이 전화로 화를 내셨어요. 산채마을과 헤어지는 과정에서 오해가 생긴 것 같아요.”

  신반장으로부터 위탁사업을 끝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 1주일이 지난 후였다. 펜션 예약을 위해 운영하였던 에어 비앤비와 각종 sns를 신반장이 끊으면서 사건이 벌어졌다. 신반장 입장에서는 펜션 운영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각종 인터넷 사이트들을 더 이상 지속하기 어려웠다. 그의 개인정보를 이용해서 만들고 운영했던 사이트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산채마을의 온라인 예약이 막혀버린 결과를 초래하였다. 

  더 나아가 신반장은 그동안 sns에 올렸던 사업과 관련된 사진과 게재물들을 모두 내렸다. 그와 동시에 위탁사업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게 되었다는 내용의 간단한 글을 올렸다. sns 팔로워들은 위로의 글을 올리면서, 산채마을에 대한 비방 댓글도 같이 올린 모양이었다. 이 댓글들을 본 사무장이 신반장에게 화를 내면서, 서로간의 인간관계까지도 갉아먹게 되는 과정이 시작되었다.  

  “왜 이런 글을 올려서 산채마을이 욕을 먹게 만드는 거니?”

  “제 sns 사이트에서 펜션사업과 관련된 내용을 더 이상 올리면 안되잖아요. 기존에 있던 내용도 다 없애는 것이 맞고요.”

  사무장과 신반장간에 설전이 오갔다. 예약 사이트를 끊으면서 손님이 뚝 끊겨버린 상황에서 sns에 비방 댓글까지 올라오자, 사무장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펜션 운영주체가 바뀌는 과정에서, 부드러운 인수 인계 과정이 아쉬운 대목이었다. 이것은 비단 두 사람간의 관계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김대표님까지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신반장부부의 농촌 정착을 위해 많은 도움을 줬던 김대표님이기에, 신반장은 오해를 풀고 싶었다. 

  “산채마을에 피해를 주려고 한 것이 아니예요. 더 이상 펜션 예약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공고를 해야만 했어요.”

    하지만 산채마을 가족들과 신반장간의 오해는 풀리지 않았다. 3년여동안 쌓아왔던 양쪽간의 인간관계도 허물어지고 말았다.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내가 중재에 나서려 했지만, 그것 마저도 여의치 않는 수준까지 악화되고 말았다.  


  어쩌면 귀농 귀촌과정에서 많이 겪게 되는 상황일 것이다. 수십년동안 도시에서 살아왔던 귀농 귀촌인들에게는, 농촌에서 살아온 사람들과의 관계 맺음이 쉽지 않다. 서로 다른 문화와 환경에서 수십년을 살아왔기에, 관점의 차이가 큰 탓이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귀농 귀촌과정의 soft-landing은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서로 악감정만 만들어지는 결과로 끝나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귀농 귀촌을 포기하고 되돌아가는 사람들이 생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비즈니스관계와 인간관계는 동시에 형성될 수밖에 없지만, 공동체적인 성향이 강한 농촌에서는 인간관계를 해칠 가능성이 있는 비즈니스 관계는 지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경제 공동체를 만들어갈 때는, 서로간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힐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도시와 다르게 농촌에서는 정이나 인간관계에 의해 움직이는 비즈니스 관계가 많기 때문에, 인간관계에 중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적어도 귀농 귀촌의 초기 단계에서는 이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문서화된 계약서를 만드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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