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2년차에 경험한 열일곱번째 이야기
“옛날에 장가계는 찢어지게 가난한 지역인 데다가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는 곳이죠. 그래서 중죄인들의 귀양지로 이용되기도 했어요.”
과거에는 중국에서 가장 살기 어려운 곳 중의 하나가 장가계였단다. 논밭이 거의 없고 산으로 둘러 쌓여 있으니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남자들은 주로 사냥을 했지만 수입이 일정치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여자들이 뽕나무로 천을 짜서 팔고, 약초를 캐서 버는 돈으로 연명하였단다. 모계사회를 이루고 살았던 이유였다.
모계사회였던 만큼 시집온 며느리는 귀한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정이 많은 여자를 좋아했던 것 같다. 이 지역에서는 많이 울면서 시집오는 여자가 정이 많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여자가 시집을 갈 때면, 많이 울었단다. 물론 산이 높고 험해서 여자들이 한번 시집가면, 친정을 다시 방문하기 어려웠던 것도 영향이 있으리라.
또 하나의 모계사회 풍습인 것 같은데,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산약초를 이용해서 남편의 에너지를 조절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단다. 남편이 쓸데없는 곳에 에너지를 쓰지 못하도록 정력을 억제하는 약초와 함께, 반대로 에너지를 충만하게 만드는 약초를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아침에 관광지로 이동하는 버스안에서 가이드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재미있었다. 장가계에는 예로부터 토가족이나 묘족 등 중국내 소수민족들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가이드는 장가계에 얽힌 역사를 들려주면서, 이들 소수민족의 풍습에 대해서도 설명해주곤 했다.
과거에는 귀양지이면서도 살기 힘든 장가계가, 지금은 중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 있다. 절경중의 절경으로 알려지면서, 일년에 삼천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단다. 특히 중국인들이 죽기전에 꼭 가봐야 할 관광지로 손꼽히는 곳이었다. 관광객이 크게 늘어난 덕분에 관련 산업이 크게 발달하게 되었고, 장가계의 도시 규모도 커지고 있었다. 최근에 인구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면서, 주민 숫자가 165만명을 훨씬 넘어섰다고 한다. 내가 갔을 때에도 도시 여기 저기에 아파트가 올라서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내 관광팀의 가이드도 다른 곳에서 일을 하다가, 10여년전 일자리가 많은 장가계로 이주하였다고 한다.
3박 5일동안 나와 같은 관광버스에서 같은 팀으로 여행을 즐긴 사람들은, 나를 포함해서 12명으로 모두 6쌍의 부부들이었다. 그중 4쌍의 부부는 대전의 수자원공사에서 같이 근무했던 사람들로 이루어진 모임에서 왔다. 남편들이 모두 같은 시기에 근무하면서 임원까지 지내고 은퇴했거나, 곧 은퇴를 앞두고 있었다. 대덕의 비슷한 지역에서 살면서, 아내들도 친하게 지내게 되었단다. 규칙적으로 모임을 가지면서 해외여행도 많이 다닌다고 한다. 나머지 1쌍의 부부는 천안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남편이 관세청에 다녔고, 이제는 은퇴해서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결혼을 앞둔 아들이 부모님을 위해서 계획한 여행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모두들 나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이어서, 처음 만났지만 여행하는 내내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장가계는 한국사람들이 주로 효도관광 프로그램으로 오는 곳이죠. 그래서 나이든 분들이 많아요. 제대로 걷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휠체어를 타고 오는 분들까지 있어요.”
가이드가 버스안에서 한 이야기였다. 잘 걷지 못하거나 휠체어를 탄 사람이 같은 팀에 끼어 있으면, 가이드뿐 아니라 다른 관광객들도 굉장히 힘들다고 한다. 모든 일정을 몸이 불편한 사람 중심으로 꾸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일년에 삼천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오는 곳이다 보니까, 빨리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사람들의 물결에 밀려 다녀야만 한단다. 우리도 아침 일찍 출발해서 매표소를 빨리 통과하는 방식으로, 기다리는 시간을 최소화했다. 조금만 늦어도 입구에서 몇 시간씩 기다리는 것은 예사였다. 하루에 두 곳 이상을 관광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빨리 이동해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몸이 불편한 사람이 있으면, 이러한 스케줄을 가져가기 힘들게 된다.
우리 팀의 관광객들은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으로, 모두 건강하게 잘 걷는 사람들이어서 다행이었다. 사실 장가계는 효도관광 코스라고 하기에는 걷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 특히 주로 산길이어서 걸어야 하는 길도 평탄하지 않았다. 최소한 걷는데 불편함이 없는 사람이어야, 즐길 수 있는 관광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첫째날 우리는 케이블 카를 타고 천문산에 올랐다. 이곳은 해발 1,600미터에 달하는 산인데다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까 케이블 카가 거의 수직에 가까운 방향으로 올라가는 구간이 많았다. 올라가는 도중에 밑을 내려다보니, 까마득한 절벽이 수없이 펼쳐져 있었다. 고소 공포증이 있는 나는, 케이블 카가 덜컹거릴 때마다 마치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 나서 겁이 나곤 했다.
케이블 카에서 바라본 바위산의 옆면에는 가로로 수많은 선들이 그어져 있었다. 바위에 새겨진 선들은 산위의 정상에 있는 바위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바다에 가라앉아 있었데요. 그런데 점차 융기가 되면서 산으로 만들어졌죠. 그 증거가 바닷물에 의해 만들어진 가로 형태의 선들이라고 해요.”
우리가 그 선들이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궁궁해하는 것을 보고, 가이드가 설명해준 말이다. 수억년의 역사가 만들어낸 신비로운 모습이었다. 천문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준 역사이기도 했다.
장가계는 오랜 세월동안 바다가 융기되어서 무릉도원이라는 아름다운 곳으로 변신하였다. 한편 옛날에 관광산업이 전무하다시피 했을 때는 매우 가난한 지역이었지만, 지금은 중국인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죽기전에 꼭 가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로 꼽는 지역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자연과 사회의 변화가 만들어낸 천지 개벽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