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2년차에 경험한 스무번째 이야기
“하우스가 폭삭 주저 앉았어요. 빨리 와 봐야할 것 같아요.”
내 농장의 이웃집에 사는 함선생님이 전화를 했다. 그는 겨울동안 주로 춘천에서 지내지만, 가끔 농장이 있는 횡성으로 오곤 했다. 11월말에 연 이틀동안 내린 폭설로 인해서 하우스 피해가 없는 지 살펴보러 왔던 참이었다. 그때 마침 내 하우스 한 동이 무너진 것을 발견하고, 전화를 해준 것이다. 나도 폭설 피해가 걱정되어 하우스를 살펴보러 가는 길이었다. 부리나케 농장으로 가보니까, 비닐하우스 2채중에서 산 쪽에 있는 하우스가 주저앉아 있었다.
지은 지 일년도 안된 하우스였기에, 내심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내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 무너진 하우스는 산 바로 옆의 음지에 위치해 있어서, 눈이 녹는 속도가 느렸다. 더군다나 습설(濕雪)이었기 때문에, 눈 무게가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다.
지난 여름 폭우로 피해를 크게 입은 나는 또다시 낙심할 수밖에 없었다. 물 피해에 이어 눈 피해까지 자연재해를 연이어 당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거기에다가 토마토는 곰팡이 병으로 일찍 수확을 접어야 했다. 노지에 심었던 고추도 밭이 습한 탓에, 수확량이 변변치 않았다.
‘귀농 첫 해에 왜 이렇게 어려운 일들이 생기지? 농사를 짓지 말라는 하늘의 뜻인가?’
무너진 하우스를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올랐다. 힘들어 하는 나를 보고 이웃집 함선생님 부부를 비롯해서 김대표님과 마을 사람들이 위로를 해주었다.
“나도 농사를 처음 지을 때 실패를 많이 하면서 수년동안 힘들었어요. 처음 농사짓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겪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세요.”
“인근 마을에서 하우스 수만채가 무너졌다고 하네요. 그래서 정부에서도 보상을 충분히 해준다고 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폭설로 인해서 비닐하우스가 무너져 내리고 며칠이 지난 후였다. 서울의 한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함께한 자리여서, 밤 10시가 넘어서까지 술자리가 이어졌다. 그때 호프집에 켜져 있던 TV에서 대통령의 계엄 선포 장면이 나왔다.
“갑자기 웬 계엄이야? 가짜 방송 아니야?”
여기 저기 앉아있던 호프집의 손님들이 술렁거렸다. 나와 같이 있던 친구들도 믿기지 않는 얼굴이었다. 이것이 우리나라 역사에 중요한 한 페이지가 될 줄은 그땐 몰랐다. 이른 바 탄핵정국이 이어졌다. 전국적으로 매일 수만명의 국민들이 대통령 탄핵이나 하야를 외치면서,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조차 대통령이 더 이상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음을 인정했다. 뜻밖의 계엄 선포 소식은 해외에서도 큰 관심을 받았다.
‘한국의 대통령이 오판을 한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에 큰 시험대가 될 것이다.’
비록 6시간만에 계엄이 해제되기는 했지만, 전 세계에서 한국의 계엄선포 소식이 머리기사로 장식되었다. 계엄 선포는 경제에도 악영향을 준 것은 당연하다. 한국 주식은 폭락했고 환율은 폭등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내년 경제 전망이 암울한 상황이었고, 미국 트럼프대통령 당선자는 관세율 인상과 함께 각종 통상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의 정재계가 힘을 합쳐도, 경기 침체 국면을 헤쳐나가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계엄 발표는 어려운 상황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고 말았다.
국회에서 대통령의 탄핵이 결정되었다. 헌법 재판소의 최종 결정이 남아 있는 상황이지만, 앞으로도 상당기간 정치 혼란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인재(人災)였다.
하우스를 무너뜨린 습설이 내린 것은 지구 온난화가 원인이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서 북극의 기온이 상승하면서, 북극 한기가 남하하게 되었다. 여기에 ‘추석 폭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9월 중하순까지 더위가 길게 이어졌다. 폭설이 내리기 불과 10일전에 서울 최고 기온이 22.6도에 이를 정도였다. 이로 인해 평년보다 따뜻해진 바닷물이 북쪽에서 내려온 찬 공기와 만나면서, 눈구름을 발달시킴과 동시에 수증기를 많이 머금은 습설(濕雪)이 된 것이다. 결국 온실가스가 증가하면서 지구 표면온도가 올라간 것이 폭설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천재(天災)가 아니라 인재(人災)라고 할 수 있었다.
지구 온난화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나온 것은 이미 오래되었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을 비롯해서 전 세계가 그 심각성을 인지하고, 피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대통령의 기후협약 탈퇴 등 여전히 범 지구적인 대응은 미흡한 상황이다. 눈앞에 놓인 자신들의 경제 성장이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데 관심이 더 많다. 결국 지구의 수명을 인간 스스로가 단축시키고 있는 것이다.
계엄 선포이후 대통령 탄핵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와중에도, 대통령은 ‘종북세력’ 운운하면서 계엄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장관급 인사들에 대한 탄핵, 예산 삭감 등 국회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야당의 행위에 대한 대응이라고도 했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이 진정 이 나라의 발전과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적인 가치로 두고 있는 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정치는 근본적으로 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 아닌가? 자신들의 정권 획득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치의 수단이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요즘 정치권의 행태는 본말이 전도되었다는 생각이 들고, 이것이 ‘계엄’이라는 인재(人災)를 낳았다는 생각이 든다.
수만채의 하우스가 무너진 기후 상황와 계엄선포이후 정국 혼란을 지켜보면서,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들이 왜 눈앞의 이익에만 집착하는 것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왜 더 크고 중요한 목적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일까?’
횡성 이웃 주민들의 따뜻한 말들로 인해서, 나는 점차 오기가 생기게 되었다.
‘귀농 첫 해에 이런 일들이 생긴 것이 오히려 다행이지 않을까? 농사를 짓겠다고 칼을 빼들었는데, 여기서 포기하는 것은 나 스스로에게 우스운 일이지 않을까?’
‘처음부터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농사를 배우면, 좀 더 단단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저런 긍정적인 생각으로 내 머리속을 채우면서, 스스로를 위로하였다. 이것이 나의 마음을 다잡는 수단이 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근시안적인 욕망’으로 인해서 표출되는 갈등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기후 변화가 심해지면서 점차 농사를 짓기 힘들어지고, 당분간 이어질 정치적 혼란 때문에 겪게 될 미래가 두려움으로 다가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