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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차 귀농인의 하루>생소했던 색소폰 사관학교

- 귀농 3년차에 경험한 첫번째 이야기

by 유진

[ ~~님, 대한민국 최고의 색소폰 사관학교에 잘 오셨습니다. ~기 입학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하합니다. 단결!]

2025년 1월 나는 ‘색소폰 사관학교’라는 곳에 입학을 했다. 입학과 동시에 이런 메시지가 수도 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나와 입학동기들을 위한 카톡방이었다. 일부 카톡에 붙은 명칭을 보니까,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 입학처장님 등이 눈에 띄었다. 아마도 몇 분은 학교에서 행정이나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분들인 것 같았다. 하지만 대부분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더 생소하게 느꼈던 것은 하나같이 보내온 메시지의 내용이 똑같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보냈던 메시지를 복사해서 보내준 것이리라. 입학을 축하해주니까 고맙기는 하지만, 형식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긴 보내준 사람들이 나를 모르는데, 이렇게라도 해주는 것이 고맙지.’

이렇게 생각하고 지나갔다. 하지만 생소한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메시지의 맨 끝에는 마치 군대에서 경례를 하는 듯한 구호가 붙어 있었다.

‘단결!’

학교의 카페에 올라와 있는 다른 동영상 컨텐츠들을 살펴보니까, 실제로 군대에서 경례를 하는 자세와 똑 같은 모습으로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그래서 사관학교라는 이름을 붙인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군대와 같은 딱딱한 분위기를 싫어하는 나로서는 그다지 유쾌한 인사법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얼마 뒤 학교장님의 경례에 대한 설명을 읽은 뒤에야, 서서히 이 인사법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경례’는 학생들 상호간이나 교수와 학생들간에 예의를 지키는 문화를 만들기 위한 첫 걸음이라는 설명이었다. 더 나아가 ‘단결’이란 구호를 통해서, 같은 학교의 일원으로서 팀웤을 만들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온라인 학습으로 모든 교육과정이 이루어지다 보니까, 선후배뿐 아니라 입학 동기들간에도 우정이 쌓이기 쉽지 않으리라.

색사 로고최종_20250304.jpg

내가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2012년도로 기억된다. 한때 몸담았던 회사에서 색소폰, 드럼, 베이스 기타 등 여러 악기를 이용한 연주 동호회를 조직해서 열심히 연습했다. 못하는 연주였지만, 다른 악기들과 같이 연주를 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서로 다른 소리를 내는 악기들이 앙상블을 이루었을 때, 희열이 몰려오곤 했다. 조화로운 소리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서로의 악기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만 했다. 연습이 끝나고 막걸리 한잔 기울이던 시간도 행복했다. 모든 과정이 ‘함께’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공연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회사내에서 공연도 여러 차례 했었다. 막상 공연에 나설 때면 긴장되고 떨렸지만, 같이 즐겨주는 회사 동료들 덕분에 스트레스가 풀리곤 했다. 음악과 함께한 시간들이 있었기에, 나의 30여년 회사 생활중 가장 행복했던 때로 기억되어 있다. 그때 사귀었던 동료들과의 관계가 가장 끈끈하게 오래 지속되었다.

학교 다닐 때는 음악이나 미술에 제일 자신이 없던 나였다. 역시 색소폰에도 그다지 소질이 있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특히나 박자 감각이 떨어진 탓에, 일부러 드럼을 6개월정도 배워 보기도 했다. 합주에서 드럼이 박자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하기에, 박자 감각을 키울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박치’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한 후로, 박자 감각을 키우고 싶은 욕심은 내 마음안에 항상 잠재되어 있었다.

그러던 차에 색소폰 사관학교에 입학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일이 생겼다. 횡성군 둔내면의 색소폰 동호회에서 강사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 동호회는 횡성군 둔내면사무소에서 운영하고 있었는데,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서 두시간동안 수업을 받고 곡을 연습하기도 했다. 둔내면에 살고 있는 강사님은 80세 가까운 고령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색소폰 사관학교에 다니면서 국가에서 인증하는 색소폰 강사 자격증까지 따기도 했다. 현재는 대학원 과정에 다니고 있었다.

“색소폰을 불 때 바이브레이션이나 꾸밈음 같은 기교를 많이 쓰지요.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박자를 맞추는 거예요.”

강사님은 수업 시간마다 박자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면서 ‘색소폰 사관학교’라는 곳이 ‘박자’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과과정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내가 원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나의 부족한 점을 채우면서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러던 차에 학교에서 2025년 1월에 학생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는 바로 입학하게 되었다.


이름도 생소한 ‘색소폰 사관학교’는 정식 학교가 아니지만, 학교와 거의 비슷한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학부과정과 대학원과정이 각각 2년제로 구성되어 있었다. 정규과정이외에도 애드립반, HEY JUDE반, CCM반 등 특수한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클래스도 있었다.

모두 온라인으로 과정이 운영되었다. 그러다 보니까 학습내용을 온라인으로 전달해주고, 학습결과는 과제를 band에 올리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매일, 매주, 그리고 매월 제출해야 하는 과제가 있었다. 제출된 과제물을 바탕으로 진급 심사를 했다. 진급은 ‘D’단계부터 시작해서 ‘C’, ‘B’, ‘A’단계로 올라가고, 그 이후에는 ‘1 star’로부터 ‘5 star’까지 단계가 있었다. 금년에는 ‘5 star’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Master’, ‘Maestro’, ‘Legend’ 단계가 추가로 만들어졌다. 같은 입학 동기들이지만 실력차가 있는 만큼, ‘진급’이라는 별도의 process를 만든 것이다. 참고로 나를 추천해준 강사님은 ‘5 star’를 지나 ‘Maestro’ 단계에 있는 분이었다. 어쩌면 이 학교에서 제일 높은 단계를 밟고 있는 분중의 하나일 것이다.

진급 단계별로 그에 걸 맞는 프로그램들이 많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 모든 컨텐츠들을 바탕으로 특허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20년 가까이 운영되던 학교여서 그런지, 학과 과정(curriculum)은 충실하였고,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내가 입학한 기수는 38기였다. 32명의 동기들이 같이 입학했다. 이 학교 학생들의 평균 나이가 60세 정도란다. 대부분 은퇴한 분들이었다. 어떤 분들은 인터넷이나 sns에 익숙한 분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온라인 학습과정에 익숙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과제들을 어떤 형식으로 제출해야 하는지, 어디에 제출해야 하는 지 등등 모르는 것이 많아서 허둥지둥 했다.

학교에서는 신입생들을 위해, 고참 선배중의 한 명을 담당 조교로 임명해 주었다. 우리 기수의 조교는 약 10년전에 입학한 선배님이었다. 그는 38기생들의 카톡방에 매일 출현하였다. 우리들은 카톡방에서 수많은 질문들을 쏟아냈다. 과제를 제출하는 형식과 제출 시기뿐 아니라, 학교의 Café 활용법 등 수업과정에 관한 질문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외에도 Band 이용하는 법, 동영상 파일 올리는 법 등 sns 활용을 위한 기초적인 질문들도 나오곤 했다. 그는 우리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변을 달아주었다. 그렇게 2개월차에 접어들면서, 색소폰 사관학교의 교과과정이나 문화에 익숙해져 갔다. 처음 1개월 동안 그가 없었다면, 학교 생활에 적응하는 데 굉장히 힘들었을 것이다.


2025년 겨울 농한기동안 언제든지 색소폰 연주가 가능한 곡을 20개 만들어 놓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주로 내가 좋아하는 70/80시대의 곡들을 연습하였다. 2월 현재 13~14곡 정도 채워진 것 같다. 곡 연습과 더불어 색소폰 사관학교에 매일 숙제를 제출하다 보니까,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색소폰과 함께 보냈다.

새로운 곡을 골라서 색소폰 연습을 하는 시간이 제일 재미있다. 가사를 따라 흐르는 작사자의 감정과 그것을 음표로 표현해낸 작곡자, 그리고 자신이 가진 음색으로 노래에 풍부한 감정을 입혀 놓은 가수. 이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수십번 노래를 들어본다.

‘이 노래의 클라이맥스가 어떤 부분이지?’

‘마디마다 어떤 꾸밈음들이 노래에 흐르는 감정을 좀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으로 노래를 들어본 다음에는, 몇몇 프로 색소폰 연주자들의 연주를 들어본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에 대한 분석을 시작한다. 마디마다 색소폰 소리의 높낮이 차이를 비롯해서 다양한 색소폰의 기교중에서 어떤 것을 사용했는지 등등… 분석내용을 악보에 표시한 다음, 그대로 따라 불러 본다. 이 과정을 수십번 반복하다 보면, 어느 새 내 마음에 드는 나의 연주 녹음을 들을 수 있었다.

색소폰 연습을 할 때는 잡생각이 나지 않는다. 가수가 노래를 부를 때 가졌던 감정을 느끼다 보면, 어느 새 음악에 푹 빠져든다. 매일 연습하는 것이지만, 색소폰을 하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음악속에서 즐겁고 행복한 삶의 윤기가 흐르는 것을 느낀다. 이번 겨울을 음악에 파묻혀 지낼 수 있어서 행복했다. 오늘도 색소폰 사관학교에 제출할 과제를 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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