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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차 귀농인의 하루>처음 도전하는 육묘_이식작업까지

- 귀농 3년차에 경험한 두번째 이야기

by 유진

어느 덧 농사 3년차에 접어들었다. 2025년에는 백현씨와 같이 농사를 짓기로 했다. 백현씨는 횡성군 둔내면 산채마을에서 진행되었던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의 3기 졸업생이다. 나보다 1년 늦게 교육과정에 참여하였다. 귀농준비를 하는 과정이었기에, 나와 같이 농사를 지으면서 어떤 작물을 어디에 재배하는 것이 좋은 지를 고민하고 싶어했다.

“육묘를 하게 되면, 남들이 쉬는 겨울내내 일을 해야 돼. 매일 하우스에 나와서 모종들이 잘 크도록 돌봐야 하니까.”

1월 어느 날 백현씨와 육묘를 할 지 여부에 대해 논의를 했다. 전년도에는 육묘할 만한 공간이 없어서, 나의 멘토인 박선생님에게 부탁했었다. 그렇지만 작물의 생리를 알고 농사를 제대로 지어보려면 육묘를 꼭 해봐야 한다.

“겨울동안 한가하니까 육묘를 해보죠.”

백현씨는 선뜻 육묘를 시도해보자는 의견을 냈다. 망설이고 있던 나는 천군만마를 얻는 듯했다. 육묘를 하려면 하우스 안에 육묘틀을 만들어서 설치해야 한다. 백현씨는 손재주가 좋아서 집을 짓는 공사 현장에서 목수 일을 하곤 했었다. 육묘틀을 만드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2025년에도 전년과 같이 하우스에는 방울토마토를, 노지에는 청양고추를 재배하려고 한다. 방울토마토의 육묘기간은 2개월정도인 반면, 청양고추 등 고추류는 3개월이 소요된다. 횡성군 둔내면의 농부들은 서리피해가 없도록, 5월 20일 이후에 대부분의 작물들을 정식한다. 나도 비슷한 시기에 정식할 생각이어서, 고추는 2월 20일, 토마토는 3월 20일 전후에 육묘를 시작해야 했다.

처음 해보는 육묘인지라, 멘토와 마을의 반장님 등 30년이상 농사를 지은 분들을 찾아 다녔다. 씨를 파종하는 방법부터 50구 트레이(tray)에 이식하는 법, 수분과 양분관리, 병해충 예방 등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물어보았다. 그리고 농업기술센터의 교육에도 참가해서, 육묘하는 법에 대해 공부를 하였다.


2월초부터 육묘틀 만드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나와 백현씨가 시간 나는대로 틈틈이 만들어 갔다. 가지고 있던 하우스 철봉 자재들을 활용하였다. 육묘틀은 땅에 닿지 않게 40센티 정도 높이에 모종 트레이를 놓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땅 위에 비닐을 이중으로 깔기는 하지만, 지온의 영향이나 병충해 등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고추와 토마토 모종을 각각 3,600주 정도 키워야 했기에, 똑 같은 크기의 육묘틀을 2개 만들기로 했다. 처음 만드는 육묘틀이라서 고민을 많이 해야 했다. 육묘틀의 크기나 안정성, 그리고 육묘틀 위에 비닐과 담요를 덮을 수 있을 정도의 무게를 받칠 수 있는 강선 활대의 두께와 길이 등을 감안해서 만드는 것이 어려웠다. 필요한 크기를 계산해보니까, 가로 길이는 12미터 전후, 세로는 3미터 정도의 크기가 적당했다. 역시 목공일을 해본 경험이 많은 백현씨가 주도적으로 틀을 만들어갔다. 그렇게 1주일도 안되어서 완성이 되었다.

완성된 육묘판_20250221.jpg


2월 20일 저녁 잠자리에 들기전에 사다 놓았던 고추씨 3,600알을 미지근한 물에 담궈 놓았다. 다음 날 파종을 하기 위해, 잠자고 있는 고추 씨앗을 깨우는 과정이었다. 21일 백현씨와 함께 인근에 사는 강선배가 와서, 파종 작업을 도와주었다. 강선배는 매운 고추를 좋아해서, 아시아와 이태리의 고추씨를 구해와서 파종을 하였다. 반장님에게서 얻어온 육묘판에 상토 흙을 채운 뒤에, 고추씨를 골고루 뿌렸다. 한 육묘판에 400알 정도를 흩뿌려서, 총 9개에 파종을 하였다. 반장님이 알려준 과정이었다. 고추가 싹을 틔운 뒤 알게 된 것이지만, 파종단계에서는 육묘판에 흙을 고르게 채워주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야 비슷한 크기의 고추로 발아가 될 수 있었다.

고추씨를 파종하는 동료들_20250221.jpg

발아단계에서는 25~30도 정도의 온도를 유지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추운 겨울 날씨 탓에 농업용 온풍기 2대로는 육묘틀 안의 온도를 높이기에 역부족이었다. 2대를 추가로 더 구입해서 설치해주었다. 햇빛이 비치는 낮 동안에는 비닐을 벗겨서 통풍을 해주는 것도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육묘틀 안이 너무 다습해지기 때문이다.

연일 추운 날씨가 이어지면서 덮고 있던 비닐을 벗기기 어려웠다. 어느 날부터인지 육묘판에 하얀색의 곰팡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물을 주고 나면 없어지기에,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서 하얀 곰팡이가 육묘판 전체를 뒤덮고 말았다. 아무래도 발아하는 고추씨에게 좋지 않을 듯해서, 그전보다 통풍을 좀 더 자주해주고 곰팡이도 샅샅이 걷어냈다.

육묘판을 뒤덮은 하얀 곰팡이_20250305_110830.jpg

조심스럽게 관리해주던 고추씨들이 드디어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아직은 여리지만 떡잎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때부터는 육묘틀의 온도를 23도 내외로 낮추어 주었다. 모종이 웃자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봄 기운이 완연해지면서 햇빛이 하우스안을 비추는 날이 많아졌다. 그만큼 온도도 올라갔다. 하우스안의 육묘틀을 덮고 있던 담요와 비닐을 오전에 걷어냈다가 오후에 덮어주곤 했다. 백현씨와 나는 교대로 매일 최소한 두차례 이상은 비닐하우스에 가봐야 했다. 둘이 하다 보니까, 시간 투입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발아한지 10일쯤 지났을까? 2장의 떡잎 사이로 본잎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인터넷 사이트를 찾아보니까, 고추 본잎이 1~2장 자랐을 때 50구 트레이에 이식을 하면 된다고 했다. ‘며칠 있다가 이식을 해야겠구나.’하는 생각이 들 무렵, 산책길에 지나가던 반장님을 만났다.

“고추 이식을 했어요?”

“이제 막 본잎이 나오기 시작해서, 며칠 더 기다렸다가 하려구요.”

“그럼 너무 늦어요. 지금 바로 하세요.”

반장님은 본잎이 나온 뒤에 하게 되면, 뿌리가 육묘판에 붙어 있어서 이식과정에서 뿌리가 끊어질 염려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50구 트레이로 옮긴 뒤에 적응하는 것도 더 어려워진단다. ‘모살이’라고 하는데, 모종이 클수록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는 시간이 더 필요하단다.

나는 바로 백현씨와 강선배에게 연락해서 이식작업을 했다. 50구 트레이에 상토를 채운 뒤, 육묘판에 있던 모종들의 떡잎을 잡고 이식을 했다. 모종의 몸통을 잡으면 자칫 사람 몸의 높은 온도에 의한 피해와 함께 감염의 가능성이 있단다. 이식작업을 마친 모종 수는 3,120주였다. 3,600알을 파종했는데 거의 500알이 깨어나지 못한 것이다. 구입한 종자치고는 발아율이 낮은 것 같았다.

이식한 고추 모종들_20250311.jpg

일단 육묘의 1단계를 무사히 마쳐서 다행이었다. 아직은 연약하지만 씨앗을 틔우고 나온 어린 모종들이 예뻐 보였다. 튼튼하게 자라서 많은 열매가 맺어지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하였다. 이것이 농부의 정성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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