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3년차에 경험한 세번째 이야기
어느 덧 횡성군으로 귀농한 지 3년차에 접어들었다. 이제 따뜻한 봄 날씨가 되면, 농촌이 어떻게 겨울에서 깨어나는 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며, 어떤 일을 언제쯤 시작해야 하는 지… 마치 겨울잠을 잔 동물들이 동면에서 깨어나 해야할 일들을 무의식중에 해 나가듯이, 농부들도 몸에 익숙한 스케줄대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봄을 제일 먼저 준비하는 것은 각종 교육 프로그램들이다. 바쁜 농번기가 오기전에, 교육 일정을 잡는다. 주로 교육을 많이 진행하는 곳은 횡성군 농업기술센터이다. 횡성군의 주 작물인 토마토 재배 교육부터 각종 농기계 이용방법 교육까지, 농부들에게 꼭 필요한 주제들이 다뤄진다.
나는 2024년에 이어 올해에도 농업기술센터에서 한 달 가량 토마토 재배교육을 받았다. 청년농업인들의 관심이 많아서 인지, 작년부터 토마토 수경(水耕)재배 교육이 이어졌다. 수경재배는 온도나 습도 조절, 물과 비료, 그리고 농약의 관주 등 농작물 재배에 필요한 것들을 자동화된 기계로 관리하기 때문에, 노동력 투입을 많이 줄일 수 있다. 반면 초기 시설투자비가 크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고정 투자비를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의 생산을 할 수 있는 재배 면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
사실 나는 수경재배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토마토 재배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싶은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돈을 벌겠다는 욕심보다는 내가 관리할 수 있는 적당한 수준의 농사 규모를 가져가고 싶다. 아마도 나이 든 탓일 게다. 거기에 유기농 재배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도 또 다른 이유이다. 유기농 인증을 받으려면, 먼저 1~2년 무농약으로 재배를 해서, 무농약 인증을 받아야 한다. 이후 3년동안 유기농 재배와 같은 환경으로 농사를 지어야, 유기농 인증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수경재배는 무농약 인증까지만 받을 수 있도록 제한되어 있다.
토경(土耕)재배는 퇴비를 사용하고 자연의 흙을 통해 공급되는 60종이상의 다양한 양분을 작물에게 제공할 수 있다. 반면 수경재배는 토양없이 양액(영양배지)을 첨가한 물에서 키우는 방식이어서, 인공 비료로 만들어진 소수의 양액만을 공급하게 된다. 수경재배는 근본적으로 토지에서 키우는 것이 아니라 양액을 이용하기 때문에, 유기농의 조건을 맞추기 어렵다.
수경재배에 대해 큰 관심이 없지만 토마토 관련 교육은 이것밖에 없기에, 수업을 들었다. 4시간씩 8번의 강의중 절반정도는 일반적인 토마토 재배 교육이어서, 주로 이 시간에 참가를 했다. 온도, 습도뿐 아니라 하루중 기온 조절, 광량 조절 등 작년보다 심도있는 내용들을 다루어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
올해는 이전과 전혀 다른 교육도 있었다. 수자원공사에서 진행한 ‘흙탕물 저감관리 방안’이었다. 강원도에서 시작된 물이 한강을 만들어낸다. 강원도의 뼈대를 이루는 태백산맥에서 발원되는 물이다. 그런데 여름철 폭우가 쏟아지면 산과 논밭의 흙들이 같이 쓸려 내려가서, 강물이 오염되게 된다. ‘깨끗한 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흙탕물 관리가 중요하다’는 인식에서 만들어진 교육이었다.
작년말 추수가 끝나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 밭이 있는 둔내면 삽교 1리의 이장님으로부터 쪽지가 왔다. 마을에 흐르는 하천을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수자원공사에서 코어네트와 야자매트 등을 지원해준다는 것이다. 원하는 사람은 신청을 하라고 했다.
나는 작년에 폭우로 인한 수해피해를 당했다. 마을 하천의 물이 불어나면서, 바로 옆에 붙어 있던 내 밭의 큰 블록담이 무너지고 화장실 등 가건물도 하천으로 넘어져 버렸다. 1.5미터 정도 성토하였던 밭의 흙들도 많이 쓸려갔다. 마을 하천이 온통 흙탕물로 가득 했었다. 물관리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던 경험이었다. ‘흙탕물 관리방안’이 꼭 필요한 프로그램이라는 것에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농업경영체 등록증’ 등 교육에 필요한 서류들을 제출했다.
2025년 3월 어느 날 삽교1리 마을회관에서 ‘흙탕물 저감관리 방안’에 관한 첫번째 교육이 있다는 안내 쪽지가 왔다. 3~4차례의 교육이 있는데, 모두 참가하면 필요로 하는 각종 자재들과 인센티브 금액을 지원해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요즘은 정부에서 지원하는 각종 보조금들이 교육을 전제로 하고 있다.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원금을 주는 의도를 정확히 알아야, 제대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을 하던 날, 아침부터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교육시간에 맞춰서, 삽교1리 마을회관으로 향했다. 마을회관은 옛날에 있었던 초등학교 분교 옆의 마을 한 가운데 위치한 이층 양옥 건물이다. 지은 지 30년이 지났지만, 관리를 잘 해서 그런지 여전히 깔끔하였다. 그날 교육장으로 쓰는 일층으로 들어가니까, 20여명이 앉을 수 있는 책상과 의자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렇게 많은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일년에 두세차례 정도에 불과하다.
‘이분들이 마을 하천을 깨끗하게 만들자는 취지에 공감한 것인가? 아니면 무상으로 지원되는 코어네트 등 각종 자재와 인센티브로 받는 지원금때문에 참석한 것일까?’
한 순간 이런 의문이 들었다. 교육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첫번째 시간의 교육은 수자원공사 산하의 연구원에서 나온 분이 진행하였다. 마을 하천에 흙탕물이 만들어지는 다양한 원인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교육을 하는 와중에, 수차례에 걸쳐서 인센티브로 지급되는 금액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몇 차례 진행되는 교육에 꼭 참석해야, 인센티브 금액을 받을 수 있어요. 이 금액은 경작하고 있는 밭의 크기에 비례해서 정해지고요.”
마을 하천과 함께 이 물이 흘러가는 주천강이나 한강을 살리기 위해 시작한 프로그램이 아닌가? 자연을 사랑하자는 마음에 호소를 해야 하는 프로그램인데, 왜 자꾸 지원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오히려 나와 같은 소작농은 그다지 인센티브 금액이 크지 않았기에, 자연을 위하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이 사그러 들었다.
더 이해가 안되었던 것은 두번째 교육시간이었다. 참석자들간에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교육이었다. Ice breaking을 할 때 흔히 하는 내용들이었다. 노래하고 게임하고 춤도 추고… 처음에는 참석자들 대부분이 고령자들이어서, 이런 교육을 하는 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흙탕물 저감대책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이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흙탕물 저감방안’이라는 주제와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이어서, 왜 이런 교육을 하는 지 잘 이해하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그날은 또 다른 해프닝이 있었다. 참석자중 한명인 송사장이 바쁜 일정 때문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런데 출석부에는 참석한 것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교육 주관자가 발견하였던 것이다. 몇 차례 확인한 뒤 송사장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이런 경우 인센티브 지급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공지하였었다. 바쁜 사람도 무조건 교육에 참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까지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았다면, 교육내용이 충실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 수자원공사에서 지원하는 코어네트와 야자매트를 가져가라는 연락이 왔다. 자재들이 놓여있던 마을회관 앞마당에서 이것들을 트럭에 실었다. 내 밭의 규모에 비해서 여유있는 물량이었다. 그 다음날 농사를 같이 짓기로 한 백현씨와 같이, 코어네트를 경사지에 깔았다. 여름 장마철이면 경사지에서 흙들이 무너져 내리기 때문이다. 잡초가 나기 전에 코어네트를 깔아 놓으면, 코어네트 사이사이로 잡초가 나오면서 서로 단단하게 뒤엉킬 것이다. 그만큼 흙이 무너져 내리기 어려울 것이다.
비록 교육 프로그램중 이해 안되는 내용이 있기는 했지만, 정부에서 준비한 좋은 프로그램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전부터 홍천군 자운리에서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단다. 횡성군도 둔내면 조항리를 시작으로 여러 마을에서 이미 시행되었단다. 그만큼 호응이 있었기 때문에, 금년에는 삽교1리에서 진행되었던 것이다. 특히 작년에 큰 수해를 당한 나로서는 여름 장마철을 좀 더 든든하게 준비할 수 있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