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3년차에 경험한 네번째 이야기
“문앞을 나서면 사방에서 퇴비 냄새가 나서, 밖에 나가기 싫어요.”
냄새에 민감한 아내는 같이 산책을 가자는 나의 제안에, 이렇게 불평을 해댔다. 둔감한 나도 퇴비 냄새가 심하다는 아내의 말에 동감을 했다. 우리 집의 앞뒤에는 밭이 있어서, 냄새가 더 많이 난다. 엊그제 나도 내 밭에 퇴비를 뿌렸다. 농사를 짓는 나에게는 이제 익숙한 냄새가 되었지만, 아내가 퇴비 냄새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내 밭에 퇴비 뿌리는 작업은 작년과 같이 퇴비 살포차를 이용하였다. 유기농 계돈분 비료를 판매하는 최사장님이 퇴비 뿌리는 작업도 같이 해주었다. 이 퇴비 살포차를 이용하면 작업이 30분도 걸리지 않는다. 퇴비 살포차를 이용하지 않으면, 농업기술센터에서 소형 퇴비 살포차를 빌려야 한다. 퇴비를 살포차에 싣는 과정을 수작업으로 해야 해서 힘이 들고, 소형 차량이어서 시간도 많이 걸린다. 나이많은 농부들이 많은 탓에, 많은 사람들이 최사장님의 퇴비 살포차를 이용한다. 그래서 내 차례가 오기까지는 많이 기다려야 했다.
“퇴비 살포차가 언제쯤 올까요? 경운기 로터리 기계를 임대해 놓아서, 가능하면 그 전에 퇴비를 뿌리면 좋겠는데요.”
최사장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사실 퇴비 살포차 작업을 직접하는 사람은 그가 아니었다. 퇴비 살포차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를 통해서 퇴비 살포차를 운전하는 분의 계획을 확인해야 했다. 작년에는 로터리 작업을 위해 트랙터를 빌린 시기와 퇴비 살포차가 온 일정이 잘 맞지 않아서 고생을 했었다. 결국 너무 늦게 퇴비를 뿌리는 바람에, 농작물의 정식전에 밭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올해에는 퇴비 살포차의 일정이 변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서, 일주일의 여유기간을 두고 경운기 로터리 기계를 빌려 놓았다. 그런데 퇴비 살포를 하는 분이 횡성뿐 아니라 평창까지도 작업을 하러 다닌단다. 횡성이나 평창 같은 고랭지에서는 일반적으로 4월 중순부터 작물을 정식한다. 냉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 기온이 어느 정도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퇴비는 작물 정식하기 한달전후에 뿌려준다. 퇴비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가스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이다. 그러다 보니까 대부분의 농가에서 퇴비 살포를 3월 중순부터 시작하고, 늦어도 4월 초순까지 한다. 이 시기에 퇴비 살포하는 분은 눈코 뜰새없이 바쁘게 일을 해야만 했다.
“평창에 작업량이 많아서, 퇴비 살포차가 그쪽으로 넘어갔어요. 2~3일 뒤에나 작업이 가능할 것 같아요.”
최사장님은 빨리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듯이 답장을 해왔다.
“트랙터가 있으면 로터리 작업도 하고 퇴비 살포도 내가 원하는 시간에 할 수 있을 텐데. 너무 비싸서 나 같은 소작농이 구매하기에는 부담스러워.”
최사장님의 메시지를 보면서, 같이 농사를 짓는 백현씨에게 푸념 섞인 말을 했다. 매년 이맘때쯤에는 ‘트랙터가 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트랙터는 퇴비를 살포하고 로터리를 치고, 때로는 이랑을 만드는 작업도 할 수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농작물들의 정식 일정에 맞춰서 내가 원하는 시간에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농부들이 외부 육묘장에서 작물의 모종을 사온다. 육묘장에서는 농부가 정식할 날짜에 맞춰서 모종을 키운다. 토마토는 정식 2개월전, 고추는 3개월전부터 육묘를 시작해야만 한다. 정작 모종이 다 커서 정식해야 하는 날짜에, 로터리나 이랑을 만드는 기계가 없어서 일정을 맞출 수 없으면 낭패가 된다. 노화묘는 생산량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 횡성군 둔내면이나 안흥면에서는 4월 중순부터 감자, 양상추, 브로컬리 등을 정식하고, 5월에는 주로 토마토나 고추를 심는다. 기온에 맞춰서 진행되는 일정이다. 많은 농부들이 비슷한 기간에 정식을 하다 보니까, 한달 정도 기간안에 로터리 치기, 이랑 만들기, 그리고 비닐 피복작업을 해야만 한다. 자기 소유의 기계가 없는 사람들이 임대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서 날씨 변덕이 심해진 요즘에는 더욱 트랙터가 절실하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밭 작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맑은 날 땅이 어느 정도 마른 후에야 일을 할 수 있다. 나와 같이 농기계가 없는 농부들은 농업기술센터에서 2주전부터 기계를 임대 예약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임대 예약을 한 후에 발생하는 날씨의 변덕은 어찌할 수가 없다. 임대하기로 한 날 비라도 온다면, 일을 할 수 없다. 또 다시 적당한 날을 잡아서 임대를 해야 하기에, 작업 일정이 늦춰질 수밖에 없다. 다른 농부들도 비슷한 기간의 맑은 날에 기계 임대를 원하기 때문에, 예약 경쟁이 치열하다.
“작업을 하다가 퇴비 살포기가 빠지는 바람에, 이것을 꺼내느라 시간이 많이 지났어요. 그래도 오늘은 꼭 퇴비 살포를 해드릴 거예요.”
퇴비 살포기가 오기로 한 닐 아침부터 밭에서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미뤄 놓았던 다른 작업들을 했다. 퇴비를 살포할 하우스 안의 잡동사니들을 창고용 하우스로 옮기고, 농막도 정리하였다. 겨우내 추위를 피해 농막에 넣어 놓았던 각종 자재들을 창고용 하우스로 옮겼다. 농막안을 깨끗하게 청소하였다. 농번기에 대비해서 새참도 먹으면서 쉴 수 있는 공간을 농막에 마련해야 했다. 이제 막 싹이 나기 시작한 명이나물과 눈개승마에게 비료를 흩뿌려주었다. 산비탈에 심어놓은 탓에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비료 살포작업을 해야만 했다.
당초 온다고 했던 오전 시간을 훨씬 넘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 사이에 이런 저런 작업들을 진행하다 보니까, 무료하지는 않았다. 오랜만에 하루종일 일을 해서 피곤함이 몰려오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오후 4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드디어 퇴비뿌리는 분이 도착했다. 그 분의 얼굴에도 피곤함이 잔뜩 묻어 있었다.
“퇴비 살포차가 빠지는 바람에 고생하셨죠.”
오래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상냥하게 맞아주었다. 내 밭은 그다지 넓지 않기 때문에, 퇴비를 뿌리는 일이 금방 끝났다. 육묘를 하고 있던 하우스에는 절반의 면적만 뿌리고 나머지 퇴비는 한 쪽에 놓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 분은 별다른 불평없이 작업을 해주었다. 작업이 끝나자, 나는 음료수를 주면서 감사 인사를 했다. 예정된 시간보다 늦어지는 바람에 하루 종일 기다렸지만, 퇴비 살포작업을 마무리해준 것에 감사했다. 덕분에 다음 작업인 로터리 작업을 예정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으로 가는 도중에, 퇴비를 실은 트랙터 뒤를 따라가게 되었다. 마을 길이 1차선이라서 비껴갈 공간이 없었다. 마을 여기 저기에 밭이 많은 전사장님이었다. 퇴비를 쌓아 두었던 곳에서, 이곳 저곳의 밭으로 퇴비를 운반하고 있었다. 트랙터에서 퇴비가 조금씩 마을 도로에 떨어졌다. 퇴비 냄새가 차안으로 들어왔다. 내 밭에 퇴비뿌리는 작업을 막 끝내서 홀가분해서 인지, 기분 좋은 냄새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