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3년차에 경험한 다섯번째 이야기
“벌써 뼈대 세우는 일을 끝냈어요? 역시 전문가시네요.”
작년 겨울 폭설로 무너진 하우스를 철거하고, 새 하우스를 세웠다. 4명의 작업팀이 부지런히 움직이더니, 하루만에 뼈대 세우는 작업을 끝냈다. 비닐 씌우는 작업만 하면 마무리된다. 이 작업은 반나절밖에 걸리지 않기 때문에, 하루 반만에 하우스를 뚝딱 지어버린 것이다.
이번 하우스 신축작업은 작년에 작업했던 업자가 아닌, 둔내면의 신생업체에 의뢰를 했다. 작년에는 하우스 2동을 짓는데, 3개월이나 걸렸다. 하우스 설치업자가 여러 군데에서 동시에 일을 벌려 놓았지만, 일하는 팀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 바람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설치업자가 신용불량 상태여서 일꾼들에게 품삯도 제대로 주지 못했단다.
금년에는 가장 신뢰가 가는 사장님이 있는 ‘나우 농자재’란 회사에 의뢰를 했다. 사장님은 횡성군의 공무원 출신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 믿음이 갔다. 무엇보다도 친절하였다. 다른 농자재 회사들은 나와 같이 한 두채의 비닐하우스를 짓는 소규모 농부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수십채를 짓는 대규모 작업이 돈이 되기 때문에, 소규모 구매자의 작업은 맡아주려 하지 않았다. 작년에 이들 회사의 사장님들과 접촉했을 때, 도시와 똑같이 돈을 밝히는 모습에 화가 많이 났었다. ‘시골 인심은 도시와 다르게 좋을 것이다.’라는 나의 기대가 잘못된 것이었다.
“올 겨울 폭설때문에, 횡성군 둔내면과 안흥면에서 하우스 6천채가 무너졌어요. 그래서 재해지역으로 선포되기까지 한 거죠.”
마을 이장님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덕분에 하우스 설치업체들은 눈코 뜰새없이 바빴다. 그만큼 작물 정식하기전에 하우스 짓는 작업을 끝마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작년에는 토마토를 정식한 후에도 하우스 짓는 작업이 계속되는 바람에, 십여 그루의 토마토 나무들이 꺾여져 죽었다. 작업팀이 드나들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올해에도 똑 같은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하우스가 무너진 직후에 여기 저기 업체를 조사해서, 최종적으로 ‘나우 농자재’와 접촉했다. 하우스 한 동을 짓는 나에게는 일찍 접촉해야, 일을 빨리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사장님의 하우스를 제일 먼저 지어줄께요. 걱정하지 마세요. 땅이 얼어 있으면 작업을 할 수 없으니까, 날이 풀리면 진행할께요.”
나우 농자재 사장님은 이런 말로 나를 안심시켜주었다. 나는 따뜻해진 3월말 하우스 설치를 시작하자는 전화를 나우 농자재 사장님에게 했다. 그러자 내 밭에 와서 현장 확인을 해보겠다고 했다.
“하우스가 들어설 자리의 땅이 수평이 될 수 있도록, 평탄화 작업을 해야 해요.”
폭설로 하우스가 무너진 뒤, 철거과정에서 포크레인이 이곳 저곳을 헤집어 놓은 상태였다. 일부 파여 있는 곳이 있는 가 하면, 흙들이 쌓여 있는 곳도 있었다.
“평탄화 작업을 하려면 포크레인을 불러야 하는데, 지금 포크레인 작업하는 분들이 제일 바쁜 시기라서 언제 가능할 지 모르겠네요.”
하우스 설치 작업을 바로 하기 어렵다는 사장님의 이야기에, 나는 실망스러운 모습으로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겨울을 막 지나는 시점인 3월부터 첫 작물들을 정식하는 시기인 4월 초중순까지가 포크레인 작업이 제일 많은 기간이다. 그래서 몇 달전에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포크레인을 구경조차 하기 어렵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우 농자재 사장님이 요청하는 대로 제대로 준비를 해놓을 수밖에. 최근 1~2년동안 내 밭에서 포크레인 작업을 같이 했었던 사람들에게 전화를 했다. 예상대로 모두 너무 바쁘단다. 다른 지역에서 며칠씩 작업하는 일정이 있다고 했다.
“하우스를 빨리 지어야 해서, 100평정도만 평탄화 작업을 하면 돼요.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을 거예요. 잠깐 시간 내서 와줄 수 없나요?”
속이 탄 나는 간절히 부탁을 했다. 그러자 작년 겨울에 노지밭의 물빠짐 공사를 같이 했던 변사장님이 응해주었다. 1시간 가까이 떨어진 갑천면에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단다. 포크레인을 그곳에 놓고 출퇴근을 하고 있다고 했다.
“퇴근할 때 잠깐 들려서 평탄화 작업을 해주세요.”
다행히 그의 집이 내 밭 인근이어서 마음만 먹으면 작업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굳이 포크레인을 싣고 와야 한다는 점만 빼면은. 나의 거듭된 부탁에 변사장님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허락해주었다. 그는 그날 오후 6시 가까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그동안 나와 작업을 많이 했는데, 이럴 때 도와 줘야죠.”
이렇게 이야기했지만,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쉬어야 하는 시간에 작업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의 가장 큰 고객중 한 명이 산채마을의 김대표님이었다. 내 부탁으로 김대표님도 그에게 요청을 한 상태였다. 거절하기 어려운 고객의 전화였다. 작업은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사방이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에 끝났다. 나는 음료수를 주면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했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하우스 설치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며칠이 지난 뒤 하우스 설치팀이 도착했다. 4명이 한 팀이었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50대 남자분이 팀장이었고, 그의 아내와 중국인 한명, 그리고 한국인 한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커피 한잔을 대접해주고, 쉴 때 마실 음료수도 내놓았다. 팀장님이 너그러운 분이어서 그런지, 팀원들과 웃으면서 일을 했다. 작업을 지시할 때도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팀원들도 제각기 할 일을 이미 알고 있는 듯, 시키지 않아도 척척 일을 해나갔다. 특히 건장한 체구의 중국인 근로자는 무척 쾌활하였다. 서툴렀지만 한국말도 곧잘 했다.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의 나이인 것 같았는데, 한국에서 일을 한 경험이 많은 것 같았다. 큰 소리로 노래도 불러 가면서, 즐겁게 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작년의 하우스 설치팀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그 당시 사장님은 욕을 입에 달고 살았다. 경험이 일천한 외국인 근로자들을 데리고 일을 해서 그런지, 그들의 실수가 많았다. 사장님이 그렇게 닦달을 해도,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일도 잘 모를 뿐 아니라, 사장님의 욕설에 대해 불만이 가득하였다. 작업장은 적막이 흘렀고, 외국인들의 얼굴에서 즐거운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인상적인 모습의 하우스 설치팀은 하우스 뼈대 세우는 작업을 하루만에 끝냈다.
“이제 비닐만 씌우면 돼요. 반나절만 더 일하면 설치작업이 끝납니다.”
웃으면서 팀장님이 이야기했다. 무려 3개월이나 걸렸던 작년에 비하면, 너무도 빠른 속도였다. 이렇게 빨리 지어질 것이란 기대를 하지 못했던 나는 기분이 좋았다. 작업 도구들을 정리하고 떠나는 팀장님과 팀원들에게 감사 인사와 함께 음료수를 건네 주었다.
다음 날은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서 비닐 씌우는 작업을 하기 어려웠다. 이틀이 지난 뒤, 이 팀이 다시 왔다. 하우스 비닐 씌우고, 문을 달고, 자동으로 측창(側窓)과 천장창(天障窓)을 여닫는 컨트롤 박스와 설비를 설치하고… 설치작업을 마무리하는 데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다 지어진 하우스를 보면서 나는 연신 감탄하면서 감사 인사를 했다.
“이렇게 빨리, 깔끔하게 작업하는 분들은 처음이에요. 고생 많이 하셨어요.”
오전에 작업을 마무리하고 그들은 인근의 다른 곳에 하우스를 지어야 한다면서 떠났다. 그날 오후에 나우 농자재 사장님이 현장 점검차 방문하였다.
“작업을 깔끔하게 하는 분들이었어요. 이렇게 빨리 하우스를 지어줘서 고마워요.”
나는 사장님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 팀이 잘 하는 분들이에요. 인기가 많은 팀이죠.”
웃으면서 사장님이 대답하였다. 하우스 설치작업이 많은 관계로 여러 개의 이런 팀들과 작업을 같이 진행한단다. 나우 농자재의 직원이 아닌 프리랜서로 일하는 팀들이었다. 일종의 하청 관계였다. 사장님은 이곳 저곳 둘러보고는, 다른 작업장에 가봐야 한다면서 바쁘게 돌아갔다. 이제부터는 내가 농사일을 시작해야 하는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