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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차 귀농인의 하루>협농(協農)의 시작1:파트너되기

- 귀농 3년차에 경험한 여섯번째 이야기

by 유진

올해부터 백현씨랑 같이 농사를 짓기로 했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교육프로그램의 1년 후배여서, 평소에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그렇다고 서로 속내를 터놓을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나보다 10살가량 어리지만, 벌써 손자를 둔 할아버지이다. 할아버지 티를 내려고 그런가? 온통 머리가 하얗다. 머리를 길러 꽁지머리를 하고 있어서, 예술가 느낌이 나는 친구이다. 하지만 감성적인 외모와는 다르게, 이성적인 스타일이었다. 일도 체계적으로 진행하는 것을 좋아했다. 음악을 좋아하지만, 전기공학과를 졸업해서 전기 관련 작업도 잘했다. 취미로 목수 일을 할 정도로 일 머리가 있는 친구였다.

그는 천천히 귀농을 준비하고 있는 상태였다. 일단 내 농장에서 나와 같이 1년 정도 일을 해보고, 미래에 어떻게 할 지 결정한단다. 혼자서 1년동안 고군분투하면서 외롭게 지냈던 나도 그와 같이 농사를 짓는 것이 좋았다. 꼼꼼하게 일을 잘하는 그가 믿음직스러웠고, 후배의 귀농과정을 도와주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2025년 1월 토마토와 고추 육묘작업부터 같이 시작했다. 하우스와 노지 밭에는 작년 10월에 파종해 놓은 보리가 자라고 있었다. 친환경 인증의 전제조건 중 하나가 반드시 윤작을 해야 한다는 것이 있기도 하고, 보리가 뿌리를 깊게 내리면서 자라기 때문에 흙을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어느 정도 자란 뒤에는 베어내서 흙과 함께 로터리를 쳐주면, 유기질 비료의 역할도 한다. 육묘를 하기전에 자라고 있던 하우스 안의 보리를 흙과 함께 뒤집어 주고, 땅을 평탄하게 해주는 작업을 했다.

우리는 육묘틀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다. 실질적인 첫번째 협동 작업이었는데, 그다지 순탄한 출발이 아니었다. 둘 다 처음 육묘하기에, 어떻게 만드는 것이 좋은 것인지 잘 알지 못했다. 나나 그는 각자 유튜브나 인터넷을 통해서 육묘틀 만드는 방법을 공부했다. 나는 멘토의 육묘용 하우스에도 방문해서, 육묘틀 만들 때 주의해야할 점들을 배우기도 했다. 우리는 서로 공부한 것을 가지고 논의를 하면서 만들어갔다.

“그냥 땅 바닥 바로 위에 부직포를 깔고, 그 위에 전기선을 설치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굳이 40센티정도 위쪽에 육묘 트레이를 놓을 필요가 있나요?”

“굳이 플라스틱 팔레트를 쓸 필요가 있나요?”

“강선 활대를 굳이 그렇게 많이 쓸 필요가 있나요?”

그는 나의 제안에 대해 질문이 무척 많았다. 더군다나 자신이 전체 만드는 과정을 이해해야만 작업을 시작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나오면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만큼 작업이 더디게 진행되었다. 완벽주의자에 가까운 친구였다. 첫 작업이니만큼 의욕적으로 시작했지만, 그와의 소통이 무척 힘들었다.

“흙 위에 바로 하게 되면, 흙의 냉기가 올라와서 모종에 좋지 안대요. 땅속에서 사는 병원균에 감염될 염려도 있고.”

“강선 활대위에 비닐만 덮는 것이 아니라 무거운 이불도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같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꼬치꼬치 따지는 그의 버릇에 점차 지쳐갔다. 때로는 그가 질문하는 모든 것에 답변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이나 경험이 없기에, 오히려 그의 질문에 짜증이 났다. 그가 스스로 공부한 얕은 지식으로 반박을 해올 때마다, 치밀어 올라오는 화를 억눌러야 했다. 그는 주로 인터넷이나 유튜브에서 정보를 얻었는데, 이곳에는 농부들이 자신만의 스타일이나 경험을 바탕으로 글이나 동영상을 올린다. 그중에는 맞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잘못된 지식도 상당히 많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맞는 지 여부를 판단할 수 없기에, 무조건 신뢰부터 보내는 버릇이 있었다. 어떤 때는 옆에서 같이 일하는 나의 경험보다도 블러그나 유튜브의 이야기를 더 믿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삼사일에 걸쳐서 고추 3,400주와 방울토마토 3,400주를 키울 육묘틀 2개를 완성하였다.

완성된 육묘틀_20250211.jpg


그와의 대화에 피곤함을 느끼던 어느 날, 내가 화를 참지 못하고 폭발하는 일이 생겼다. 1시간 넘게 일을 하고 농막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우연하게 토마토의 곁순이나 하엽을 제거할 때, 가위와 칼 중 어느 것을 사용하는 것이 좋은 지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가위는 양쪽의 칼날로 베어내기 때문에, 잘라지는 단면이 깨끗하지 않아요. 줄기가 으깨지게 되죠. 그곳으로 병균이 침입할 가능성이 높아요.”

“양쪽에서 베기 때문에 오히려 깨끗하게 단면이 만들어지지 않나요?”

이 주제는 얼마전에도 이야기했던 것이었다. 내가 가위와 칼로 베어낸 토마토 줄기의 단면 사진을 보여주면서, 칼을 사용하는 것이 훨씬 깨끗하다는 것을 증명했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것은 받아들이지 않고, 똑 같은 질문을 되풀이했다. 그와의 소통에 힘들어하던 차였기에, 나는 순간적으로 화를 내고 말았다.

“얼마전에도 사진까지 보여주면서 이야기했고, 이 주제는 여러 번 이야기했지 않아요? 왜 내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죠?”

사실 같이 일을 시작한 지 2~3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와의 소통이 어려웠다.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좋을지 고민이 많았다. 더 나아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동료들간에 있었던 인간적인 갈등을, 또 느끼면서 살아야 하는 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고민을 하던 중, 어느 순간부터 나 스스로의 소통 방식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도 그와 비슷하게 자기 주장이 강한 스타일이었다. 그의 농사 경험이 나보다 일천하다는 것때문에, 그의 주장을 무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몸이 피곤한 날에는 내가 하고자 하는 대로 따라줬으면 하는 생각도 강했다.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오히려 그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과거 그의 삶의 여정을 잘 모르지만, 그의 성향이나 성격이 만들어진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성격이나 성향으로 오십 평생을 살아온 그이다. 이제 와서 쉽게 바뀌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어쩌면 그의 삶에서는 그가 보여주는 소통방식이 적합했을 수도 있기에.


“선배님, 오늘 우리집에 아무도 없는데 집에 가서 막걸리 한잔 안할래요?”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던 날, 가볍게 농사 일을 마무리하려고 하던 차에 그가 제안을 했다. 그와 나의 공통점중의 하나가 술자리를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좋지, 내가 고기를 가져갈 테니까 그것을 안주삼아 구워 먹으면 되겠네.”

그날 저녁 그의 집 거실 탁자 위에 소박한 한두가지 안주와 막걸리가 놓였다. 그는 요리도 제법 잘해서, 간단하게 다진 고기가 들어간 샐러드와 전을 내놓았다. 우리는 그가 살고 있는 마을 이웃집들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하였다.

“얼마전에 바로 앞집이 이사오지 않았어?”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셨는데, 굉장히 조용하게 지내세요. 할아버지가 거동이 불편하셔서, 주로 집안에서 지내시는 것 같아요.”

그는 조용한 이웃집을 만나서 만족스러워했다. 마침 거실 창문으로 서너집 건너에 마을 사람 몇몇이서, 마당의 처마 밑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있었다. 은퇴하고 귀촌한 사람들인데, 가끔 모여서 술 한잔씩 하곤 한단다. 그의 마을에는 삼 사십채의 집이 모여 있는데, 주로 귀촌한 사람들이란다. 토박이가 거의 없는 동네였다. 마을 한 가운데에 자그마한 개울물이 흐르고, 마을 뒤쪽에는 야트막한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아름다운 경치였다.

“나는 인천에서 자랐는데, 어렸을 때 무척 가난했던 기억이 있어요.”

어느 정도 술이 취하자, 자신의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꺼냈다. 1남 1녀의 장남으로 태어났고, 가난한 집에서 힘들게 살았단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해서, 많은 시간을 음악과 함께 보냈다고 한다. 주로 라디오를 듣거나 카세트 테이프로 녹음된 것을 들었단다.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노래를 감상하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그의 집 거실에는 영화를 볼 수 있는 프로젝터와 함께 성능 좋은 스피커가 있었다. 술이 취하자 서로 좋아하는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나는 주로 7080 노래를 좋아하고, 색소폰을 취미로 불기 때문에 재즈도 좋아하는 장르이지. 옛날에 4대강을 자전거로 완주했을 때는 케니지의 노래도 많이 들으면서 달렸지.”

“저도 7080 노래 좋아해요. 클래식도 많이 듣고요.”

그는 재빠르게 케니지의 ‘Going Home’을 틀었다. 그렇게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우리는 750미리짜리 막걸리 큰 통을 3병째 비웠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는 마을 풍경은 차분하면서도 아늑하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좋아하는 음악까지 들으면서 술을 마셔서일까? 우리는 그다지 취하지 않았다. 그날은 밤 늦게까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것이 우리가 서로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를 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날 밤이후로 나는 나보다 어린 그에게 말을 놓을 수 있었다. 그도 내가 하는 말에 좀 더 경청하는 태도로 바뀌었다. 우리의 소통이 좀 더 부드러워지는 계기가 되었고, 같이 하는 농사 일도 재미가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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