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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차 귀농인의 하루>대상포진

- 귀농 3년차에 경험한 여덟번째 이야기

by 유진

“어제 병원에 갔었는데, 대상 포진이래요.”

백현씨가 너무 힘들어했다. 지난 2~3일동안 아침 일찍부터 시작해서 저녁에 해가 져서 캄캄해질 때까지 일을 해야 했다. 토마토를 심을 하우스에 경운기로 로터리를 치고, 휴립기로 이랑을 만들고, 이랑위에 점적 테이프를 설치하고, 관리기로 비닐을 씌우고… 다음 날은 노지 밭에도 하우스와 똑같은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그나마 김대표님이 트랙터로 노지밭에 로터리를 쳐주어서 조금이나마 수월하였다. 노지밭에서 진행되는 모든 과정은 비가 오기 전에 마무리해야 했다. 비가 온 뒤에 하게 되면, 땅이 굳어버려서 작물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오늘 밤부터 비가 온다고 하니까, 오늘까지 노지밭에 비닐 멀칭을 끝내야겠네.”

5월 중순에는 봄을 재촉하는 비가 일주일에 3~4일씩 내렸다. 강수량이 많으면 노지밭이 어느 정도 마를 때까지 기다려서 로터리를 쳐주어야 했다. 로터리를 친 후에 이랑을 만들고 비닐 멀칭을 해주어야만, 흙이 부드러워지기 때문이다. 이 모든 과정을 비가 오기전에 끝내야 했다. 작업이 가능한 시간이 많지 않은 탓에, 일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강선배한테 빌린 휴립기가 있으니까, 이랑 만드는 작업은 아무 때나 가능해서 그나마 다행이네.”

노지밭 작업을 시작한 날 아침 일찍부터 이랑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35미터 정도 길이의 43개 이랑을 만들어야 했다. 생각대로 반듯하게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작업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점심식사를 한 후부터는 이랑 위에 점적 테이프를 설치하고 비닐을 멀칭했다. 기계를 잘 다루는 백현씨가 주로 관리기로 비닐 멀칭을 해나갔다. 나는 비닐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삽으로 흙을 덮어주면서, 관리기가 비닐을 잘 덮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어, 축이 끊어졌네요?”

관리기 운전을 하던 백현씨가 큰일 났다는 듯이 소리를 쳤다. 멀칭 작업이 절반도 진행되지 않았는데, 관리기가 문제를 일으켰다. 모터 부분과 바퀴 부분을 연결하고 있는 축의 연결쇠가 끊어져 버렸다. 두개로 분리된 관리기를 한참 살펴보았지만, 도저히 고칠 수가 없었다. 연결쇠를 사서 납땜까지 해야 고정시킬 수 있는 구조였다. 농협의 농기계 임대센터에서 빌려온 관리기여서, 그대로 반납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으로 더 이상 작업이 어렵겠네요. 오늘 안에 끝내야 하는 데 큰 일이네요.”

“그럼 김대표님 관리기를 빌려서 작업하자.”

백현씨와 나는 낙담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김대표님에게 전화해보니까, 다행히 관리기를 빌려줄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얼른 트럭을 몰고가서 관리기를 가져왔다. 시간은 벌써 오후 5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비가 오기전까지 비닐이 날아가지 않을 정도만 덮어놓는 식으로 작업을 하죠. 하나 하나 완벽하게 멀칭작업을 해서는 너무 느리니까요.”

백현씨가 이렇게 제안했다. 그때부터 나도 관리기로 비닐 덮는 작업을 같이 하였다. 이랑 하나에 비닐 덮는 작업이 끝나면 비닐을 끊어주고, 제대로 흙이 덮이지 않은 비닐에는 주변의 돌을 주워다가 비닐이 날아가지 않도록 놓아주고… 해가 지기전까지 최대한 많은 이랑에 멀칭을 해야 했다. 밤에 온다는 비는 이미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오후 7시가 가까워오자 주변이 어둑 어둑 해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가로등이 켜지면서 관리기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이미 만들어진 이랑위에 비닐을 씌워야 했기에, 이랑이 보일 때까지 일을 해야 했다. 비가 점점 많이 내리면서 땅이 질퍽거렸다. 우리가 신고 있던 장화에 흙이 달라붙기 시작했다. 질퍽거리는 땅에서는 관리기 바퀴도 빠지기 일쑤였다. 둘이 힘을 합해서 관리기를 들다시피 하면서 비닐을 깔아야 했다.

“아이고 힘들다. 안보이니까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네요.”

아무 말없이 빠르게 관리기를 다루던 백현씨가 드디어 손을 놓고 말았다. 더 이상 작업을 할 수 없게 된 우리는, 그 자리에 관리기를 놓아두고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새벽에 다행히 비가 조금밖에 오지 않았다. 비록 흙은 젖어 있었지만 비닐 멀칭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고추 정식을 해야 하는 날짜에 맞춰야 했기 때문에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하루 이틀 내리던 보슬비가 그쳤다. 며칠 뒤에는 또 비가 내린단다. 우리는 곧바로 고추 정식을 했다. 금년에는 노지밭에 청양고추를 3천주 정도 심을 계획이다. 겨울 내내 육묘장에서 키워온 모종을 가지고 나왔다. 며칠동안 밤낮없이 일을 한 탓에 우리의 피곤은 여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서로 말없이 고추 모종을 정식하기 시작했다. 이랑을 만들고 비닐을 멀칭하는 작업보다는 수월했기에, 그래도 나았다.


“이것은 어떤 회사에서 나온 비타민 B야. 의사에게 물어보니까, 대상 포진에는 이것이 제일 좋대. 아침 저녁으로 한 알씩 먹으면 좋아질 거야.”

나도 몹시 지쳐 있었고, 여기저기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같이 일한 백현씨가 안쓰러워서, 약국에서 비타민 B를 구입해왔다. 이것도 약국에 없어서 구매요청을 하고 며칠 기다려야만 했다.

“선배님이 주실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몸이 확실히 좋아지는 것 같아요. 컨디션이 많이 회복되었어요.”

백현씨가 다음 날 기분 좋은 표정으로 나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어떻게 하루 이틀만에 비타민효과가 나타날 것인가? 바쁜 일들이 마무리되어서, 몸을 쉬어 주었기에 피로가 풀렸을 것이다. 그래도 그렇게 감사 인사를 받으니까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일년 중 가장 바쁜 날을 넘긴 우리는 막간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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