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첫 해에 겪은 첫번째 이야기
2022년 10월말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의 전국 발표회를 마지막으로, 6개월간 진행된 교육과정이 막을 내렸다. 다음은 2023년에 대한 설계를 해야 할 차례였다. 3천평의 밭에 다양한 작물을 재배해봤다는 것이 나에게 농사 짓는 것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했다.
사실 향후 10년간 나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직장을 그만두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10년정도는 뭔가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강원도로 귀촌하는 것만으로는 10년을 채워 가기에 허전했다. (아내와 강원도로 귀촌하는 것은 일찌감치 합의를 본 상태였다.) 뚜렷하게 하는 일없이 취미로만 하루 하루를 채워 가기에는, 아직 젊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약간은 바쁜 삶을 살고 싶었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친환경 농법으로 농산물을 재배해야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나와 가족의 건강에 좋은 농산물을 소비자들에게도 나눠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귀농의 벽은 높았다. 귀농은 결심만 가지고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재배하고자 하는 작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뿐 아니라, 농촌 문화에도 적응해야만 한다.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농촌에서,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야 한다.
선뜻 결심하기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래서 시행착오를 겪을 각오를 하고, 2023년에는 자그마한 밭을 임대해서 농사를 지어 보기로 했다. 내가 농사를 재미있어 하는 지, 농촌 문화에 적응을 잘 하는 지 등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다행히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운영했던 김대표님의 도움으로 산채마을에 있는 비닐하우스 1백평과 노지 밭 5백평을 임대할 수 있었다.
임대한 비닐하우스안에는 다 말라버린 토마토와 고추 줄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주인인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가 토마토와 고추 농사를 지은 모양이다. 다음 해 농사를 위해서 토마토와 고추 줄기들을 뽑아내고, 지주대와 멀칭 비닐도 제거해야 했다. 이것이 나의 첫번째 작업이 되었다.
고추와 토마토의 줄기와 지지대를 뽑아내는 일은 의외로 시간이 걸렸다. 지주대와 줄기들이 많기도 하거니와, 땅이 단단하게 굳어서 잘 뽑혀지지 않았다. 그동안 비닐하우스에 유기물과 미생물을 충분히 공급해주지 않아서, 땅이 단단해져 버린 것이다. 이런 땅에서 작물의 뿌리가 제대로 뻗어 나가기 어려울 것 같았다. 토마토를 심기전에 영양분이 충분한 땅으로 만들어야 했다.
지주대와 함께 토마토와 고추 줄기를 뽑아서 하우스 밖의 한쪽에 쌓아 나갔다. 한참 일을 하고 있으려니까, 주인 할아버지가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다가왔다. 심한 당뇨로 다리를 절단하는 바람에, 농사를 짓지 못한다고 한다. 비닐하우스의 한쪽 구석에 앉아서, 내가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런 저런 조언을 해 주셨다.
“지주대가 잘 뽑히지 않으면, 저기 있는 스패너를 이용해서 뽑으면 쉬울 거야.”
하우스 한쪽에 놓여있던 스패너를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과연 스패너로 지주대를 돌리니까, 쉽게 뺄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초보라서 가르쳐주고 싶은 심정도 있겠지만, 대화 상대가 필요해 보였다. 불편한 다리로 인해 집에만 갇혀 있는 생활을 해서 갑갑하셨던 모양이다.
할아버지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일을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주인 할머니가 나타났다. 오전에는 외부에 나가서 일을 하고, 오후에 주로 집에 있단다. 할머니 역시 연로하셔서, 2023년에는 텃밭정도만 가꿀 생각이란다. 멀칭 비닐을 걷어내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할아버지보다는 할머니가 농사지은 경험이 훨씬 많았다. 할아버지는 젊었을 때부터 직장에 다녔고, 할머니가 집에서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다음 날 산채마을 근처 두원리에서 계분과 돈분이 섞인 유기질 퇴비를 100포대 사왔다. 1포대에 20kg이니까, 2톤의 무게였다. 1톤짜리 트럭에 2톤의 비료를 싣고 운전하다 보니까 조심스러웠다. 자신의 한계 용량보다 무거운 짐을 싣고 있어서, 트럭이 버거운 듯 보였다. 특히 회전 구간에 접어들 때면, 엉금엉금 기어가듯이 운전을 해야만 했다. 조심스럽게 운전해온 트럭을 비닐하우스 앞에 주차시켰다. 퇴비를 비닐하우스 안으로 옮긴 후, 전체적으로 흩뿌려주어야 했다. 나중에 작은 트랙터를 이용해서 로터리작업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비닐 하우스 앞에 트럭을 주차하고, 싣고 온 계분 포대를 내리기 시작했다. 한 포대에 20kg이니까 무게가 꽤 나갔다. 잘 숙성된 유기질 비료였다. 손수레를 이용해서 계분 포대를 하우스 안으로 실어 날랐다. 총 56포대의 비료를 1백평의 하우스 바닥에 깔았다. 한번에 3~4포대를 날랐으니까, 하우스와 트럭 사이를 20번정도 왔다 갔다 한 것 같다. 계분 포대를 나르기 시작한 지 한시간쯤 지났을까? 겨울 바람이 제법 차가운데도 등에서 땀이 흥건히 흘러내렸다.
물 한모금을 마시면서 잠깐 쉬고 있으려니까, 슬슬 배가 고파왔다. 동료들과 같이 일할 때는 이맘때쯤 새참을 먹는 시간이었다. 여자동료들이 요리해오는 간단한 요기거리와 막걸리 한잔을 마시고 나면 힘이 나곤 했다. 이제 혼자이기에, 누구도 새참을 준비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문득 지난 6개월동안 동료들과 같이 할 때가 그리워졌다. 그리고 이제 홀로서기의 시작이라는 걸 실감했다.
하우스 안으로 옮겨 놓은 비료를 흩뿌려야 했다. 새참대신 음악을 틀어 놓았다. 비료 포대의 한쪽 면을 잘라낸 다음, 퇴비를 골고루 뿌리기 시작했다. 규모가 큰 밭에서는 농기계로 퇴비를 뿌린다. 그런데 겨우 백평정도 밖에 안되는 비닐하우스여서, 직접 몸을 써야 했다.
퇴비는 숙성이 잘되어 있어서 그런지, 그다지 냄새가 심하게 나지 않았다. 퇴비를 뿌린 다음에 쇠칼퀴로 골고루 흩뿌려 주었다. 오후 4시 30분쯤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퇴비를 뿌리는 데만 거의 3시간 가까이 걸렸다. 초보 농사꾼으로서 나의 첫번째 비닐하우스 정리작업을 끝냈다. 집에 갈 힘이 없어서, 한참동안 의자에 걸터앉아 쉬어야만 했다. 혼자서 농사를 짓는 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기 시작한 출발점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