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첫 해에 겪은 두번째 이야기
‘농촌에서 살아보기’ 과정이 끝난 직후인 2022년 가을, 나는 본격적인 농부로서의 삶을 준비했다. 아직 밭을 구입하기 전이어서, 임대를 해야만 했다. 마침 ‘농촌에서 살아보기’ 과정에서 옥수수를 재배했던 1천평 규모의 밭을 빌릴 수 있었다. 혼자서 농사 짓기에는 너무 큰 규모여서, 같은 교육생이었던 신반장과 5백평씩 나누기로 했다.
교육 과정중에 옥수수를 재배하면서 보니까, 밭에 습기가 너무 많았다. 웬만한 밭에서도 잘 자라는 옥수수들이 너무 습해서 힘들어했을 정도였다. 다음 해 농사를 위해서는 밭의 습기를 줄이는 작업을 해야 했다. 농작물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과습한 것이니까. 2022년 10월 물이 많이 나는 곳을 중심으로 유공관(有孔管) 묻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동네에 사는 포크레인 기사에게 작업을 부탁했다. 습기가 많은 곳을 중심으로 ‘T’자 형태로 땅을 1미터 깊이로 파냈다. 파낸 땅에 총 22개의 유공관을 설치했다. 길이 40센티미터 정도되는 연결관의 양쪽 끝에, 길이 5미터 정도 되는 유공관 두개를 끼워서 연결하였다. 플라스틱 원통인 유공관의 표면에는 볼트의 겉 표면에 있는 것과 같은 둥그런 홈이 있어서, 돌려 끼울 수 있었다. 나는 ‘농촌에서 살아보기’ 동료인 최선생님, 전장군님과 함께 플라스틱 원통을 연결관 안으로 돌려 넣었다. 유공관의 표면에 많은 구멍이 뚫려 있어서, 땅 속에서 흐르는 물이 들어갈 수 있었다.
설치된 유공관을 하얀색 부직포로 싸맸다. 부직포는 솜과 같은 형태의 가벼운 섬유들을 합성수지 접착제로 결합하여 만든 것이다. 재질의 특성상 흐르는 물이 유공관안으로 스며들게 하면서도, 흙이 유공관 표면에 뚫린 구멍을 막지 못하게 했다. 이렇게 설치된 지름 150미리짜리 유공관은 땅 밑에서 스며 나오는 물길이 된다.
포크레인 기사는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을 했다. ‘T’자 형태로 파내야 할 곳의 길이가90~100미터나 되어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땅 파는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오후에 유공관을 연결해서 설치하고, 파냈던 땅을 다시 메웠다.
오후 4시 30분쯤이었다. 한참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웃집에 사는 함선생님이 나와서 인사를 했다. 강원도청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정년 퇴임을 하고 귀농한 분이었다. 춘천에 가족이 살고 있어서, 왔다 갔다 하면서 사백평정도 되는 밭에 농사를 짓고 있었다.
“지난 여름 장마 때 밭 옆쪽에 있는 마을 하천이 넘쳐 흘러서, 내 밭까지 피해를 봤어요. 오늘 포크레인이 온 김에 하천을 좀 더 깊이 파내고, 굽어진 곳도 직선으로 정비를 해주세요.”
인사를 하면서 나에게 요청을 했다. 나와 함선생님 밭의 바로 옆에는 나즈막한 야산이 있었고, 그 사이에 마을 하천이 흐르고 있었다. 마을의 하천이 흘러 나가는 끝 자락에 우리의 밭이 있었다. 마을 안쪽의 태기산 자락에서 흘러나오는 물 뿐 아니라 생활오수도 이 하천을 통해서 흘러 나갔다. 우리 밭이 하천의 바닥에 비해 그다지 높지 않았기 때문에, 장마철에 비가 많이 오면 넘쳐 흐를 수 있을 것 같았다.
함선생님이 요청한 것이 그렇게 어려운 작업이 아니어서, 포크레인 기사에게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포크레인 기사는 우리의 요청대로 하천을 깊게 파고 굽어진 곳도 직선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함선생님은 작업해 놓은 수로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30분쯤 후에 와서 다시 요구를 했다.
“하천을 좀 더 반듯하게 정비해주시고, 넓게 만들어주세요.”
하천이 산 바로 옆에 위치해 있어서, 바닥에 큰 돌들이 많이 박혀 있었다. 이 돌들을 치워야 하천의 깊이와 넓이를 확장할 수 있었다. 포크레인으로도 박혀 있는 돌을 빼내기가 쉽지 않은 탓에, 포크레인 기사는 가능한 돌들만 치워 놓았다.
첫번째 하천 정비 작업한 후, 내 밭의 흙을 메웠던 곳에 평탄화 작업을 하고, 유공관으로 흘러나오는 물이 잘 빠져나가도록 기존에 있던 배수관으로 연결해줬다. 오후 5시가 겨우 내 밭 작업을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또 하천 작업을 요청한 것이다. 포크레인 기사에게 좀 더 작업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나는 불쾌했다. 비용은 내가 지불하는 데, 왜 이웃 사람이 와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루 포크레인 작업을 하는 데 보통 60만원을 지불해야 한다.) 포크레인 기사도 일을 끝마치고 다른 곳으로 작업하러 가야 한다고 하면서, 투덜 투덜 불평을 쏟아 놓았다.
2022년 옥수수가 한참 자라고 있을 때, 옥수수 잎에 붙은 진드기를 없애기 위해 농약을 살포했었다. 어른 키보다 커버린 옥수수 위쪽을 향해서, 분무기로 농약을 뿌리고 있을 때였다. 이웃집에 사는 함선생님이 나와서 큰 소리로 불평을 했다.
“내가 친환경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데, 토양 검사에서 농약이 검출되었어요. 결국 생산한 농산물도 판매하지 못하게 되었죠. 이 밭에서 뿌린 농약이 날아와서 그렇게 됐어요.”
농약이 자기 밭에 날아오지 못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바람이 불면 자연스럽게 날아가는 것인데, 그것을 어떻게 막는다는 말인가? 미안하기도 했지만,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 뒤부터는 농약치는 것을 가급적 자제했다.
그런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장마로 인해 쓰러진 옥수수들을 일으켜 세우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이 분이 다시 나와서 항의를 했다. 자기 밭에 심어진 아로니아 나무들을 누군가가 베어냈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 있었던 신반장과 나는 금시초문이어서, 우리가 한 일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막무가내로 화를 내는 그 분때문에, 우리의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중에 확인해보니까 동료인 교장선생님이 옥수수 밭으로 넘어온 아로니아 나무 줄기들을 잡초로 잘못 알고 베어낸 것이다.)
토착농민들은 서로 잘 알고 있는 사이라서, 농사로 인한 갈등이 그다지 크지 않다. 하지만 귀농한 사람들과는 간혹 이런 갈등이 생긴다고 한다. 특히 함선생님은 마을 사람들과 접촉도 거의 없고, 이기적인 요구가 많아서 평판이 썩 좋지 않았다. 초보 농사꾼인 나는 이웃집 농부가 와서 불만을 터트리는 것을 처음 겪었다. 당황스러우면서도, ‘논밭을 접한 이웃끼리는 이런 갈등이 생길 수 있겠구나.’하는 것을 경험했다. 귀농하면 내가 겪어야 할 갈등 중 하나일 것이다.
함선생님이 두번째 요청한 작업까지 마무리하고 나니까 5시 30분이 가까워졌다. 포크레인 기사는 부리나케 다음 작업장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