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차 귀농인의 하루>half-day farmer

- 귀농 3년차에 경험한 열번째 이야기

by 유진

작년에는 초보 귀농인인 나에게 너무나도 힘들었던 한 해였다. 거의 매일 아침 해가 뜰 때 밭에 가서, 저녁에 해가 질 때나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것도 4월부터 9월까지 무려 6개월동안이나. 농장을 처음 만드는 시기여서 하루의 반나절은 배수로 만들기, 움푹 패인 땅의 평탄화 작업하기, 농장 안쪽까지 농기계가 드나들 수 있는 진입로 만들기 등등… 농장 입구에 배수로를 만들 때는 콘크리트 배수관을 설치하고, 시멘트를 바르고, 그레이팅도 설치해야 했다. 배수로 설치 작업도 난생 처음이지만, 시멘트 바르는 작업도 처음이었다. 끝도 없는 작업의 연속이었다.

혼자서 하기 힘든 일이 있을 때면 포크레인을 불러서 작업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포크레인이 작업한 뒤에도 잔업이 항상 남아 있었고, 그것은 온전히 나 혼자의 몫이었다. 괭이질과 삽질을 매일 해야 했다.

가장 일이 많았을 때는 여름 장마철에 수해를 입은 뒤였다. 면사무소에서 수해 복구 작업을 지원해 주어서, 포크레인을 이틀 보내주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부족해서 자비로 포크레인 작업을 추가로 진행했다. 마을 냇가와 내 밭의 경계에 세워졌던 블록이 무너지면서 그 옆에 설치했던 화장실마저 냇가 쪽으로 넘어졌다. 블록이 넘어지면서 흙들도 빠져나가, 창고로 쓰던 소형 하우스의 바닥을 채우고 있던 흙들도 많이 소실되었다. 다른 곳에서 흙을 파다가 메워야만 했다. 화장실을 일으켜 세우느라 ‘농촌에서 살아보기’에 함께 했던 동료와 후배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수해 복구를 하는 데 거의 한달 정도 노동을 해야만 했다.

겨울에는 습설이 많이 내리면서 하우스 한 동이 무너져 버렸다. 지은 지 불과 1년밖에 안된 새 하우스였는데. 또 다시 포크레인을 불러서 무너진 하우스 철거작업을 하고, 하우스를 짓기 위해 땅의 평탄화 작업을 했다. 그리고 하우스 시설업자에게 부탁해서 하우스를 짓는 과정을 1~2개월 진행해야만 했다. 남들이 쉬는 겨울 농한기에도 나는 쉴 틈이 없었다.


애초 귀농을 결정했을 때는 2024년과 같이 쉴새없는 노동이 이어지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원래 하루 반나절 정도만 농사를 짓고, 나머지 시간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고 싶었다. 색소폰을 연주하고, 글을 쓰고, 책도 읽고… 회사 다닐 때는 시간이 없어서 제대로 못했던 일들을 하고 싶은 욕망이 컸다. ‘half-day farmer’의 길을 걷고 싶었다.

그런데 거의 6개월동안 하루 종일 일만 해야 했던 2024년을 경험하면서, ‘농사를 포기해버릴 까?’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2025년 겨울 뜻밖의 계기를 통해서, ‘half-day farmer’가 될 수 있는 발판이 만들어졌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교육과정의 1년 후배인 백현씨가 귀농을 준비하기 위해, 나와 같이 농사를 짓고 싶어했다. 아직 밭이 없어서 농사를 지을 수 없었던 그이기에, 내 밭에서 같이 일한다는 것이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었다. 나도 귀농하려는 후배를 돕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half-day farmer’의 길은 2025년 농번기에 들어서기 전인 올해 겨울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백현씨와 같이 토마토와 고추 육묘를 했다. 비용도 줄일 겸 경험삼아 시작했다. 아침에 가서 밤새 추위를 피하기 위해 덮어놓았던 비닐과 이불을 걷어주고, 물을 주고 육묘 하우스의 측창(側窓)이나 천창(天窓)을 열어 주었다. 오후에 가서 다시 비닐과 이불을 덮어주고, 필요할 때는 열풍기도 켜주었다. 물론 열어놓았던 측창이나 천창도 닫아주었다. 보통 백현씨가 아침에 가서 일을 하면, 나는 오후에 나가서 마무리 작업을 했다.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다.

토마토와 청양 고추를 정식했던 5월달에는 일주일 정도 하루 종일 일을 해야만 했다. 밭에 로터리를 쳐주고, 비닐을 멀칭해주고, 겨울 내내 키워왔던 모종을 정식해주고… 2024년에는 다른 동료 3~4명의 도움을 받아서 했던 일인데, 2025년에는 백현씨와 내가 다 끝마칠 수 있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힘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힘든 기간의 전부였다.

그 이후에는 해가 뜨는 아침 일찍 농장에 가서 농작물들에게 물이나 비료를 관주해준다. 하우스와 노지에 모두 점적 테이프를 설치해 놓아서, 스위치만 돌려주는 손쉬운 작업이었다. 토마토의 곁순을 제거해주거나 하엽을 제거해주는 등의 일들도 반나절이면 둘이서 충분히 소화할 수 있었다. 1천평의 밭을 둘이서 관리하는 것은 그다지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반나절(half day)’이면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나는 금년부터 색소폰 사관학교라는 학교에 입학하였다. 정식으로 인가받은 학교는 아니지만 4년 학부과정과 2년 대학원과정의 프로그램이 충실하게 만들어져 있는 교육기관이었다. 온라인 교육이기 때문에, 매일 과제를 내주고 제출한다. 제출된 과제에 대해 조교나 교수들의 코멘트를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서 교육이 이루어진다. 과제를 하기 위한 연습과정을 통해서 실력이 향상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매일 숙제를 해야 하다 보니까, 농장 일을 하지 않는 나머지 시간은 거의 색소폰과 함께 지낸다. 내가 좋아하는 곡들도 연습을 하였다.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브런치에 적어도 일주일에 하나의 글을 올리자는 나 혼자만의 목표도 있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글을 썼다. 색소폰과 함께 나의 반나절 시간을 투입하는 것이 바로 ‘글쓰기’였다. 둘 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이라서 즐거운 시간이었다.


귀농 3년차에 드디어 ‘half-day farmer’의 삶을 경험하고 있다. 같이 농사짓는 친구가 있어서, 농사를 짓는 시간에도 스트레스가 크지 않다. 이것이 내가 생각했던 제2의 삶이다. 물론 이런 생활을 하게 되면, 농사를 통해 큰 소득을 올릴 수 없다. 하루 종일 일을 하는 농부들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저 생활비에 보탬이 되는 정도만 번다는 생각을 해야만이 가능한 생활이다.

앞으로는 귀농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농지를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확장하면서 그들의 귀농을 돕고 싶다. 그러면서 나의 제2의 삶도 즐겁게 만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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