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3년차에 경험한 열한번째 이야기
“매일 고추 모종을 사가시는 것을 보면, 고추 농사를 크게 하시는 모양이에요.”
지난 몇 주 동안 매일 아침에 둔내 모종 가게를 들러서 고추 모종을 사갔다. 처음에는 서먹하던 가게 여사장님과 웃으면서 인사를 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둔내에는 모종 가게가 두 군데가 있는데, 다른 곳보다 이곳이 더 컸다. 그래서 그런지 육묘를 잘해서 모종의 상태도 좋았다.
나는 2025년 5월 중순 6백여평의 노지 밭에 청양고추를 심었다. 3천주 가까이 정식을 했다. 보통 정식을 한 후에도 모종 중에서 문제가 있는 것을 다른 모종으로 보식(補植)을 해준다. 보식용으로 수 십 그루의 모종을 여유분으로 남겨둔다. 그런데 이번에는 농사 경험이 없던 백현씨가 다 팔아버렸다. 내가 서울에 잠시 갔다 온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밤새 모종 줄기를 잘라 놓는 놈들이 있어요. 거세미 나방 애벌레들인 것 같아요”
“그 해충들을 없애는 약이 있어요. 이 약을 물에 섞어서, 잘라진 모종이 있는 곳의 흙을 푹 적셔주세요.”
이 모종 가게에서는 농약도 같이 팔고 있었다. 나는 여사장님의 말에 반가워서, 거세미 나방 애벌레를 없애는 약을 샀다. 하지만 이 약은 친환경 약이 아니어서, 내 밭에 사용할 수 없었다. 그 후로도 매일 몇 그루의 모종들이 거세미 애벌레들에 의해 잘려 나갔다.
“잘라진 모종이 있는 자리의 흙을 4~5센티미터 정도 파내면, 거세미 나방 애벌레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어요. 굳이 약을 칠 필요가 없어요.”
어느 날 백현씨가 거세미 나방 애벌레를 잡아보고는 나에게 이야기해주었다. 그날부터 우리는 땅을 파헤치고 수 십 마리의 애벌레를 잡을 수 있었다. 노지 밭의 여기 저기서 발견되는 바람에, 다시 나타나지 않을 때까지 몇 주 동안 이 작업을 해야만 했다.
사실 거세미 나방 애벌레가 나타나기 전에도 고추 모종의 모살이가 심했다. 3개월동안 하우스의 육묘장에서 키운 고추 모종을 정식한 것은 5월 중순이었다. 정식을 하자 마자 일주일 동안 비가 내렸다. 그렇지 않아도 습한 편인 노지 밭에 연일 비가 오니까, 모종들이 숨을 쉬지 못했다.
작물들은 보통 고체 50%, 액체 25%, 기체 25% 정도로 구성된 흙을 좋아한다. 그런데 비가 오게 되면 액체 비율이 올라가게 되면서, 작물들이 호흡에 어려움을 겪는다. 액체 비중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게 되면, 결국 작물들이 죽게 된다. 특히 고추는 습한 땅을 싫어하는 작물이다.
오히려 정식 직후에는 작물들에게 평소보다 물을 적게 주거나 아예 며칠동안 주지 않기도 한다. 그래야만 습기를 찾아서 땅 속으로 뿌리를 뻗어 나가기 때문이다. 뿌리가 제대로 자란 모종은 나중에도 튼튼한 몸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물빠짐이 좋지 않은 일부 이랑에서 삽과 괭이로 배수로로 물이 잘 빠지도록 작업을 했다. 비만 오면 물이 고여 있는 곳은 고추가 심어진 이랑을 일부 없애고 대신 배수로를 새로 만들기도 했다.
일부 고추 모종에서 모 잘록병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면서 모살이를 심하게 했다. 처음 심은 상태에서 제대로 자라지 못했을 뿐 아니라, 비바람에 잎들이 떨어져 나가서 줄기에 잎이 거의 붙어 있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허약한 모종들은 뽑아내고, 그 자리에 다른 모종들을 심어줘야 했다. 거의 한달동안 100그루가 넘는 모종을 이식해야만 했다.
마침내 비가 그친 후에는 고추에 영양제를 관주해주었다. 모종을 튼튼하게 해주어야, 모살이를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거의 한달동안 이어진 보식작업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6월 중순이 지나면서 더 이상 육묘 가게에서 고추 모종을 팔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게를 향한 나의 발길도 뜸해지게 되었다. 그 사이에 조금씩 자란 고추 나무들이 점차 건강을 되찾기 시작했다. 줄기가 굵어지면서 웬만한 비바람이 몰아쳐도 끄덕도 하지 않았다.
올해는 작년에 비해서 비가 꾸준히 왔다. 다행히 내 밭이 있는 횡성군 둔내면에는 시설물이 파괴될 정도의 큰 비가 오지 않았다. 덕분에 건강해진 고추나무들에 생각보다 훨씬 많은 고추 열매들을 맺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