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3년차에 경험한 열두번째 이야기
8월에 접어들면서 횡성군 둔내면은 축제 분위기로 들떠 있었다. 주요 도로에는 1백미터마다 토마토 축제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고,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들어오면 대형 플래카드가 눈앞에 펼쳐진다. 그렇지 않아도 7월말부터 시작되는 휴가시즌이면, 평소의 몇 배나 되는 차량들이 주요 도로에 줄지어 늘어서 있곤 한다. 둔내면의 하나로 마트나 식당가에도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손님들이 붐비는 시기이기도 하다. 실제로 토마토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온 사람들도 많다.
8월 14일부터 시작된 토마토 축제는 16일까지 이어졌다. 작년과 비슷한 모양으로, 인조잔디가 깔린 축구장에 천막들이 설치되었다. 축구장 한 가운데에 대형 무대가 설치되었고, 무대를 둘러싸고 직사각형 형태로 세워진 천막들이 축구장 바깥쪽을 둘러싸고 있었다. 수십개의 천막에서는 여러 농가에서 재배한 토마토를 비롯해서, 각종 지역 농산물들, 농산 가공품들, 공예품 등이 판매되었다. 그리고 축구장 뒷편 공간으로는 각종 음식들을 파는 수십개의 천막들이 있었다.
가장 손님들이 많이 몰리는 프로그램은 초대가수들의 공연이었다. 3일 연속 저녁시간대에 가수들이 오기 때문에, 그 때를 전후해서 축제장 일대는 수많은 차량으로 가득 채워지곤 했다. 또 하나의 볼거리는 토마토로 가득 채워진 큰 풀장에서 금반지나 각종 보물들을 찾는 행사이다. 수십명의 사람들의 몸과 옷에 으깨진 토마토가 묻어서, 온통 빨간 색으로 변한 모습이 볼만하다.
나는 작년에 이어서 두번째로 이 축제에 참여하였다. 작년에는 손님이었지만, 금년에는 공연팀의 한 명이었다. 나를 포함한 둔내 색소폰동호회 구성원들은 매주 수요일 복합체육센터의 연습실을 향했다. 3월부터 시작된 동호회 클래스는 거의 12월까지 매주 이어진다. 특별히 토마토 축제가 열리기 한달전부터는 축제 공연 연습을 한다. 둔내면에 등록된 드럼이나 민요, 댄스 등 여러 동호회들은 축제에서 장기자랑을 하곤 했다.
면사무소에 등록된 색소폰 동호회 회원은 15~20명정도 되나, 실제로 매일 연습하는 사람은 10명 내외였다. 상반기와 하반기 두차례 모집을 하는 데, 거의 같은 멤버들이 주축이 된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60대 중후반이어서, 내가 가장 어린 편이다. 회원들의 나이가 많다 보니까, 색소폰 연습곡으로 트로트를 선호하였다. 나를 비롯해서 막 60대에 접어든 몇몇 사람들은 7080노래를 더 좋아하기에, 선생님이 간혹 트로트 대신 7080시대의 노래를 선곡하기도 했다.
토마토 축제에서는 3곡을 공연하는데, 최성수의 ‘해후’,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 디스코 버전, 이성우의 ‘진또배기’를 선정하였다. 잘 알려진 노래이면서 조용한 노래인 ‘해후’를 시작으로 빠른 템포의 두 곡을 연주할 계획이다. 작년까지는 전체 회원이 다같이 3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주(前奏)와 간주(間奏), 후렴을 각각 다른 한 사람이 부르는 형식으로 변경되었다. 이 부분을 여러 사람이 같이하게 되면 서로 다른 소리가 나서 맛을 살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3곡의 전주를 담당하게 되었다. 처음 노래를 시작하는 부분이라서 부담이 되었다. 연습만이 실수를 줄이는 방법이어서, 전주만 수십번 불러보았다.
색소폰 동호회 공연은 축제 마지막날 오후 5시 30분경에 예정되어 있어서, 회원들은 오후 2시 30분에 만나서 사전 연습을 하기로 했다. 공연 당일 날, 나의 공연과 토마토 축제를 구경하기 위해서, 아내와 아들이 함께 집을 나섰다.
오후 4시가 넘어서자 리허설을 위해서 나는 회원들과 같이 무대로 향했다. 초대 가수의 공연시간이 많이 남아서 그런지, 무대 앞자리에 놓인 수백개의 의자들은 텅 비어 있었다. 동호회 구성원들이나 가족들만이 듬성 듬성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무대에 우리가 사용할 TV 모니터 2대를 설치하고, 10명의 색소폰 연주자들이 쓸 마이크 5대가 놓였다. 우리의 연주소리에 맞춰서 음향상태도 체크하였다. 그렇게 리허설도 마무리되었다. 독주(獨奏)가 아니고 동료들과 같이 공연하는 것이어서 그런지 전혀 긴장이 되지 않았다.
동호회 공연이 시작되면서 무대 앞 의자에는 수십명의 관객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리 앞 순서는 드럼 동호회의 공연이었다. 드럼 공연이 끝나자 마자 색소폰을 들고 대기실에서 준비하고 있던 회원들은 차례로 무대에 올랐다. 마지막으로 음향 상태 체크를 한 후, 반주기에서 ‘해후’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 노래의 전주는 첫 마디부터 시작되었기에, 나는 박자에 맞춰서 바로 연주에 들어갔다. 무대에 설치된 스피커에 실린 나의 색소폰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3곡을 이어서 연주하였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두번 실수는 했지만, 나의 연주는 무난하였다. 음악 공연장이 아닌 야외의 축제에 맞춰서 설치된 스피커여서 그런지, 작은 실수도 티가 나지 않았다. 회원들도 그동안 연습한 기량을 십분 발휘하였다. 눈에 띄게 틀린 부분이 없이 3곡을 완주할 수 있었다. 각 곡이 끝날 때마다 관객들의 박수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생각했던 것보다 좋은 반응이었다.
공연을 끝낸 회원들의 얼굴에서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한달 동안, 아니 3월부터 연습했던 기량을 마음껏 발휘했다는 만족감이 느껴졌다. 나도 둔내면으로 이사한 후 대중들 앞에서 공연을 처음 하였다. 긴장감없이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도 있었지만, 같이 연습하면서 고생한 회원들과 동료애도 커진 시간이었다. 가장 긴장되는 전주(前奏) 부분을 소화했다는 희열도 느낄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도로에는 차량들이 가득 차 있었다. 평상시 집에 갈때 10분도 걸리지 않는데, 30분이 넘게 소요되었다. 길게 늘어선 차들 안에서는 축제를 즐긴 사람들의 기분좋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서울에서나 느낄 수 있는 차량 정체였지만, 나도 가족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래서 축제(祝祭)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