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3년차에 경험한 열세번째 이야기
얼마 전에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을 지시하였다. 농산물에 의한 장바구니 물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복잡한 유통 구조를 개선할 필요성을 제시한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을 지시한 바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똑 같은 지시가 나오고 있다.
‘청양고추의 납품을 당분간 받지 않겠습니다.’
내가 주로 거래하고 있는 친환경 전문유통업체 사장님의 메시지였다.
“갑자기 납품을 받지 않는 이유가 뭐죠?”
나는 이해가 안되어서 전화를 했다.
“우리가 고추를 납품하는 업체에서 물량이 많다고 사가지를 않아요. 재고가 200박스가까이 쌓여 있는 상태이고요.”
“해당 업체와 물량 계약이 안되어 있나요?”
“물량 계약을 할 수가 없어요. 우리가 납품하는 업체는 앞으로의 시장 공급 상황을 잘 모르기 때문에, 고정된 물량을 사가기를 꺼려하죠. 더군다나 농민들이 고정된 물량을 우리에게 주지 않기 때문에, 물량 계약을 요구할 수도 없고요.”
사장님은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하지만 고추들이 주렁주렁 달려서 한참 수확해야할 시점이기에, 나는 난처한 입장이 되었다. 친환경 유통망에 납품할 수 없다면, 할 수없이 일반 농산물 유통업체에 납품할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는 납품된 농산물을 전국에 있는 경매장으로 보낸다. 결국 힘들게 친환경 농법으로 수확한 것이지만, 재래 농법으로 재배한 농산물과 똑같이 취급받게 되는 것이다. 친환경 농법이 비료나 농약의 가격도 비싸거니와 화학 재료만큼 강력한 효과가 없기 때문에 여러 번 사용해야 한다. 그만큼 농민들이 힘들게 재배해야만 한다. 그에 대한 대가를 인정받을 수 없다면 누가 친환경 농사를 짓겠는가?
친환경 농산물의 생산 물량이 작기 때문에, 유통구조가 재래 농법의 농산물보다 체계적이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일반적으로 재래 농법으로 재배한 농부들은 마을 근처에 있는 유통법인에 납품한다. 극히 소수의 물량만이 농협 마트나 로컬 마켓에서 소비자들에게 직접 판매된다. 유통법인에 납품된 농산물은 전국에 있는 경매시장으로 보내어 지고, 다음날 새벽쯤이면 경매가격을 알리는 메시지가 농부의 핸드폰으로 오게 된다. 결국 그때 그때의 농산물 수요와 공급량, 그리고 농산물의 품질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
반면 친환경 농산물의 경매시장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친환경 농산물을 취급하는 유통법인에 납품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들 유통법인들은 학교의 급식이나 농산물 판매업체 등 친환경 농산물의 수요자들과 계약을 맺고 있다. 직접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업체들도 생겨나고 있지만, 판로가 크지 않다. 농민들은 사는 곳과 가까운 친환경 유통업체에 의존하는 방법밖에 없는 실정이다. 가격구조가 제대로 형성되기 어려운 환경이어서, 친환경 농산물 유통구조의 개선이 필요한 대목이다.
이번에 농수산부장관이 국무회의에서 발표하였듯이, 온라인 도매시장을 통해서 농산물이 소비자들에게 도달하는 단계를 줄이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은 유통이라는 단면만을 본 해결책이다. 농산물 가격구조는 전적으로 유통망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농산물의 공급구조이다. 농산물 가격은 수확 시기와 기온의 변화에 따라 진폭이 크다. 농산물에 따라서 계절적인 출하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매년 농산물별 공급량의 예측이 아예 되지 않는 것도 한 원인이다.
“고추씨를 판매하는 농자재 마트의 사장이 금년에는 청양고추를 심어보라고 권하더라고. 다른 때보다 많이 팔리지 않는다는 통계가 있다네.”
내가 사는 마을의 반장님이 어느 날 나에게 해준 말이다. 종자를 파는 업체들은 전국에서 농산물별 씨앗 판매량 정보를 알고 있다. 그 해의 농산물별 공급량을 어느 정도 예측해볼 수 있는 데이터가 된다. 외국의 어느 업체는 농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나 씨앗 또는 모종 판매량, 기후 예측 등 다양한 변수를 가지고 그해의 농산물 가격을 예측하기도 한다. 이것도 역시 농부들에게는 재배 농산물을 선택할 때 좋은 정보가 된다. 과도한 공급량의 변화를 줄일 수 있는 인프라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왜 이런 것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는 지 이해가 잘 안된다. 시장 규모상 정부의 선도적인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정부는 농산물의 유통구조뿐 아니라 수요와 공급상황을 종합적으로 살펴본 후 대책을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