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광 슬러지
어느 날부턴가 로와가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볼 때면 큰 목소리로 야옹 야옹 울부짖기 시작했다. 화장실에서조차도 관심을 가져주기를 원하는 건가, 강아지들이 변을 보고나면 가끔 보호자에게 자랑하고 싶어한다던데 그런 감정인가 생각했다. 평소보다 화장실에 더 자주 가는 것도 같았다. 또 다른 어느 날, 로와가 앉았다 일어난 자리에 새빨갛게 혈흔이 묻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며칠 뒤 또 그런 일이 있었다. 로와의 고추를 확인하니 거기에도 마찬가지로 피가 묻어있었다. 근무가 없는 날이 되자마자 바로 로와를 데리고 동네의 동물병원에 갔다.
병원에서 엑스레이와 초음파를 찍었다. 수의사 선생님께서는 방광에 슬러지가 쌓여 이것이 배출되면서 요도를 긁어 피가 나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제야 왜 로와가 화장실에서 울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소변을 보는 것이 아팠던 것이다. 방광염을 여러 번 앓아본 나는 로와의 고통을 알 것 같았다. 얼마나 아프고 힘들까... 이젠 나도 함께 힘들 차례였다. 선생님께서는 하루 두 번 먹는 약을 일주일 치 내주셨다.
약 먹이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약을 먹여보는데 이건 어려운 수준이 아니라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로와는 안그래도 소변 보는 게 스트레스인데 병원에 다녀오고나서 심기가 많이 불편해져 있었다. 나를 요리조리 피해다녀서 애를 잡아오는 것부터가 진이 빠졌다. 그래서 꾀를 내어 평소 잘 먹는 츄르에 약을 섞어보았다. 그런데 항생제가 들어서 향과 맛이 써서일까 입도 안 댔다. 직접 목구멍에 약을 넣는 수밖에 없었다. 역시나 지난 번 경험한대로 잘 먹은 것 같더니 구석에 가서 뱉어가지고 가슴털에 약을 대롱대롱 매달고 다니고... 한 번 입에 넣었다 뱉은 약은 겉표면이 녹아 말랑하고 끈적해지기 때문에 다시 필건을 쓸 수가 없었고 손으로 먹이려 해도 내 손가락에 붙어서 잘 떨어지지가 않았다.
이래서 약을 일주일치 내주셨구나 싶었다. 사람은 방광염 처방을 보통 3-5일치 씩 받는데 우리보다 덩치가 작은 녀석들이 굳이 더 길게 복용을 할 필요가 없을 테다. 이렇게 망해서 버리는 약 때문에 일부러 넉넉하게 주신게 아닐까 싶었다.
아침, 저녁으로 약을 먹여야 하는데 약 먹이는 데 삼십 분 이상이 걸리는 바람에 아침에는 원래 일어나던 시간보다 훨씬 더 일찍 일어나야 했다. 전쟁처럼 약을 먹이고 출근을 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약을 먹이고 나서도 십 분 가량 로와를 주시했다. 저 녀석이 진짜로 약을 먹은건지, 내가 출근하고 나면 어딘가 구석에 뱉어버리는 게 아닌지 불안했다. 유튜브에서도 약을 먹이고 나서 입 안이 비었는지 확인하라고 했는데 주둥이에 약을 넣는 것도 어마어마하게 힘든데 주둥이를 열어서 안에 약이 없는지 확인까지는 도저히 할 수 없었다. 하품을 하는 걸 보면 고양이는 입이 참 크구나, 뭐든 입에 잘 넣겠구나 싶은데 정작 약을 먹일 때 보면 콕 다문 주둥이, 입술을 벌려도 틈을 내어주지 않는 뾰족뾰족한 이빨을 강제로 열기가 참 어렵다.
병원에 다녀오고 나서 방광 슬러지에 대해 많이 검색해보고 나름대로 공부를 했다. 사람 방광염과 마찬가지로 쉽게 재발하고 병원에 갈 때마다 항생제만 처방받아오기 때문에 반복을 막기 위해서는 다른 조치들이 필요했다. 사람을 치료할 때와 똑같이, 생활습관을 개선해야 했다.
비싸고 품질이 좋은 사료를 먹이고 있었고 그로 인해 아이들 모질이 광이 날 정도로 부드러워졌지만 이 사료는 확실히 기름진 것 같았다. 그래서 신장과 방광에 부담을 주지 않는 유리너리 사료를 새로 구매했다. 물을 많이 먹어야 한다고 해서 건사료 양을 줄이고 대신 아침마다 캔을 하나씩 뜯어 주었다. 날마다 주던 츄르도 염분이 걱정되어 어쩌다 한 번 주는 것으로 줄였다. 흐르는 물이 호기심을 자극해 음수량을 늘린대서 위에서 아래로 물이 흐르는 예쁜 고양이 정수기도 마련했다.
나의 정성이 통한 것인지 로와는 금세 회복을 했고 재발도 없었다. 사실 나이가 들면 이렇게 정성을 쏟아도 회복이 느릴텐데, 로와는 아직 어리고 튼튼해서 다행이었다. 이렇게 또 한 번의 위기를 겪고 나는 베테랑 고양이엄마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