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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공포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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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전연 May 19. 2024

주온 - 극장판

주온은 딱 여기까지만 보면 된다

1. 감상

비디오판보다 안 무섭다. 극장판답게,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답게 비디오판보다 이야기가 풍성하고 영상 화질도 좋고 편집 효과도 화려하나 오히려 그런 구색 맞춤 때문에 공포감이 현저히 떨어진다. 비디오판이 무서웠던 이유는(엄밀히 말하면 비디오판 1편이 무서웠던 이유는) 칙칙한 화면과 건조한 연출이 자아내는 날것의 느낌 때문이었다. 꾸미지 않아서 더욱 현실 같았고, 비디오판이 지닌 비주류적 성격 때문에 스너프 필름 같은 기괴한 분위기가 있었다. 마치 실제 겪은 무서운 이야기를 누가 옆에서 들려주는 느낌이랄까. 그런 생것의 느낌이 <주온>의 마력이었고, 그 마력 때문에 비디오 영화에서 끝나지 않고 극장 영화로 발돋움한 것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를 영화답게 만들고자 한 노력이 영화(주온) 본유의 정체성을 저해하고 말았다.

극장판으로 본격적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비디오판에서 느낄 수 있는 음산함과 미묘함은 전혀 없다. 초장부터 흑백 화면으로 타케오가 일가족을 살해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문제는 이른 정보 제공(공포는 무지(無知)에서 비롯하기 때문에 공포에 관련된 사건이나 사연은 후반에 제시하는 편이 좋다.)이 아니라(비디오판을 본 시청자라면 왜 저주가 발생했는지 알고 있으므로) 흑백 화면에 있다. 극장에 걸리는 영화라고 감독이 나름 멋을 부려 흑백으로 표현한 것 같은데, 앞서 말했듯이 <주온>의 마력은, <주온>이 무서운 이유는 꾸미지 않은 사실감에 있지 과장된 표현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인위적으로 처리된 흑백 화면을 보자마자 기대감과 공포감이 사그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흑백 화면은 '이것은 영화다.'라고 대놓고 광고한다. 가상의 영화는 자신의 가상을 실상으로 속임으로써 시청자에게 감각을 전달하는데, 흑백 효과가 가상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시청자가 느낄 공포감을 날려버린 것이다. 쉽게 말해, (비디오판에 비해) 너무 영화 같아서 무섭지 않다.

또 하나 예를 들면, 이즈미의 친구 둘이 사진을 갖다 주려고 이즈미 집을 찾았을 때 엄마가 문을 열고 그들을 맞이하는데, 남편의 죽음 때문에 슬픔과 시름에 빠쪄 행색이 엉망인 것은 이해하나 머리 헝클어지고 낯빛 어두운 모습이 너무 작위적이라, 너무 극적이라, 너무 영화 같아서 공포 영화의 무거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다.

귀신을 자주 보여주는 점도 문제다. 비디오판(엄밀히 말하면 비디오판 1편)은 귀신을 자주 보여주지 않는다. 귀신이 그렇게 많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공포의 긴장감이 지속된다. 공포는 무지, 즉 알지 못함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자주 안 나타나니까 귀신에 대해 모르는 것이고, 모르니까 알게 될 때까지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현실 속 혹은 괴담 속 귀신은 형체가 불분명하고 정체가 모호하다. 분명하고 뚜렷해서 우리가 파악하고 알게 되었다면 무서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심령 사진을 예로 들면, 우리의 인지를 벗어난 미지의 것이 찍혀 있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다. 그 미지의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찍혔고, 왜 나타났는지 알면 무서움은 사라진다. 앎이 공포를 이기는 힘이다. 이 때문에 공포 영화는 공포의 대상(귀신이나 괴물)을 숨길 수 있을 때까지 숨겨야 한다. 노출을 절제해서 시청자가 공포의 대상을 모르도록 해야 한다. 드러내더라도 간접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귀신의 외모나 사연이 직접적으로 노출되면 귀신은 무지의 존재에서 인지의 존재로 변질되고 공포감은 휘발한다. 시청자의 앎이 공포를 이기기 때문에 귀신은 더 이상 무섭지 않게 되고 그의 출현은 재롱 잔치로 전락해 영화의 장르가 공포에서 코미디로 둔갑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영화사에는 이러한 예가 꽤 많다. 당장 이 영화의 카야코만 보더라도 <주온>이 처음 개봉됐을 때는 초절정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시리즈를 거듭함에 따라 지금은 <링>의 사다코와 대결까지 벌이는 어처구니없는 막장의 수준에 이르렀다. 이불 속에서 튀어나와 사람을 저세상으로 끌고 갔던 카야코는 이제 이불 속에서 사람에게 성희롱 당하는 처지가 되었고, 텔레비전 화면 밖으로 기어 나와 사람을 놀랬던 사다코는 이제 벽걸이 텔레비전에서 바닥으로 추락해 사람을 웃기는 처지가 되었다.

시리즈를 통틀어 길게 살펴볼 필요도 없이 <주온> 비디오판 두 편만 봐도 직접적인 노출이 공포 영화에 얼마나 해악을 끼치는지 알 수 있다. 2편에서 카야코는 경찰서 의자 아래에서 얼굴을 쏙 내밀며 나타나고 학교에서는 개처럼 사족보행(四足步行)까지 선보이는데, 이런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등장으로 말미암아 2편은 공포의 기념비적 작품이 된 1편의 아성에 먹칠하고 <주온>의 장르를 코미디로 변질시킬 만한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그래서 1편과 2편은 놀라울 정도로 천양지차다.

이 극장판도 카야코가 자주 직접 등장해서 비디오판 1편과 같은 <주온> 전통의 공포감은 없다. 영화를 계속 보다 보면 카야코가 예쁘게 생겼다는, 그런 딴생각도 든다. 다행히 사족보행은 하지 않아서 공포 영화의 명맥은 지켰으나 동해 번쩍 서해 번쩍 나타나서 사람 깜짝 놀래는 데만 치중한 점이 아쉽다. 앞서 말했듯 공포의 본질은 무지이고, 모르는 상태에서 은은하게 스며드는 긴장과 숨막힘이 진짜 공포인데 카야코가 자주 직접 등장하니 시청자를 무지의 상태에 빠뜨릴 수는 없고, 그래서 갑자기 나타나서 시청자를 깜짝 놀래는 가짜 공포를 보여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대개의 공포 영화가 저지르는 잘못과 실수다. 대개의 감독은 깜짝 놀래는 게 공포인 줄 안다. 그래서 영화에 효과음과 함께 귀신을 빵 출현시켜 시청자를 놀래고 골리는 데만 열중한다. 어떤 영화가 시청자를 더 많이 놀라게 했느냐에 따라 공포의 순위가 정해진다. 현재에도 여름마다 양산되는 공포 영화는 죄다 이런 식이다. 놀라는 것과 무서운 것은 엄연히 다른데 놀라는 것에만 치중해서 공포스러운 공포 영화가 없다. 나는 이것이 공포 영화의 고질적 문제이자 난제이고, 실패한 공포 영화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라고 본다. 귀신이 놀래는 것은, 그래서 시청자가 놀라는 것은 육체의 즉각적이고 본능적인 반응이지 공포가 아니다. 정말 무서우면 몸이 굳는다. 놀라고 싶어도 놀랄 수가 없다. 기묘함과 찝찝함과 호기심이 동반되어 지속적인 감응을 일으킨다. 단발로 끝나는 놀람과는 성질이 다르다.

귀신을 등장시키고 시청자를 놀래야 한다는 그런 가짜 공포의 과한 연출 때문에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두 번 웃었다. 이즈미의 집에 귀신이 된 친구 셋이 나타나는 장면에서 한 번. 그리고 이즈미가 죽고 난 후 집 안에 안치된 사당에 토오야마와 이즈미의 얼굴이 떠오르는 장면에서 다시 한 번. 귀신이 된 이즈미 친구들은 하얀 얼굴을 하고 느릿느릿해서, 게다가 두 발로 걷는 모습까지 보여서 동양의 귀신 같지 않고 서양의 좀비 같다. <그루지 2>에서도 친구들 귀신이 나타나는 장면이 있는데 그것도 웃기다. 그리고 이즈미의 귀신 친구들이 신문지 구멍 사이로 얼굴을 보이며 나타나는 장면은 액션 영화에서 닌자나 자객이 나타나는 모습과 흡사해서 공포 영화의 진중한 분위기에 초를 치는 결과를 낳는다. 사당에 떠오른 토오야마와 이즈미의 얼굴도 마찬가지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합성한 티가 너무 나서 이질감과 엉뚱함이 든다. 유머 사이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합성 사진 같다. 얼굴만 동동 떠 있는 모습은 공포 영화의 무거운 분위기를 가볍게 바꾸어 놓는다.

전통적으로 한국 귀신은 원한의 대상만 공격한다. 아무 잘못 없는 애먼 사람은 되도록 건드리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의 귀신 이야기는 권선징악의 주제를 내포하는 경우가 많다. 나쁜 짓을 저지르면 귀신이 복수하니 착하게 살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그러나 <주온>의 일본 귀신은 이유 없이 다 죽인다. 자신과 접촉한 대상은 그들이 인생을 착하게 살았든 나쁘게 살았든 선악 불문하고 해친다. 그래서 <주온>에는 교훈적 메시지가 없다. 무자비하고 무차별한 귀신의 연쇄 살인만 나열될 뿐이다. 이런 이유 없고 당위 없는 귀신 놀음에 한국 사람들은 공감하기 힘들다. 우리의 귀신은 한을 품고 시작되고 한을 풀며 끝나기 때문이다. 한에는 이유와 당위가 있으므로 귀신의 놀음을 한 편의 서사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카야코의 저주와 복수에는 수긍할 만한 논리가 없기 때문에 <주온>은 묵직한 서사를 지닌 공포 영화라기보다 미치광이 살인마가 되는 대로 아무나 도륙하는 B급 슬래셔 무비에 가까워 보인다. 이 점이 <주온> 시리즈의 맹점이다. 이것을 해결하고 보완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악명 높았던 <주온>이 지금은 사다코와 싸우며 돈벌이에 급급한 처지로 전락했다고 본다.

카야코가 무슨 이유 때문에 죽었는지, 그녀의 사연에 대한 설명이라도 있었다면 나았을 텐데 그 이야기는 이 극장판에 나오지 않는다. 비디오판을 봐야 내막을 알 수 있다. 비디오판은 구하기 힘들고 본 사람도 상대적으로 적고, <주온>이 영화다운 영화로서 처음 공개되는 것이 이 극장판인데 카야코의 사연을 보여주지 않은 것은 감독의 오판이라고 생각한다. 카야코가 과거에 고바야시를 사랑했다는 일기의 내용 때문에 남편에게 오해를 사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는, 그 이야기는 <주온> 저주의 핵심이고 줄거리 이해의 필수 요소이므로 반드시 이 극장판에 넣었어야 함이 옳다. 안 그래도 시간을 뒤죽박죽 섞어 놓은 옴니버스 구성이라 줄거리를 이해하기 힘든데, 그래서 깊이 없이 말초 신경만 자극하는 게 이 영화의 목적처럼 보이는데 귀신이 등장하는 동기까지 빠뜨려 놨으니 시청자에게 공감과 이해를 바라는 일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

어쩌면 오히려 동기 없는(없어 보이는) 원한 살해이므로 이야기 순서를 섞어 놓은 것이 막무가내 살인의 반복성과 지루함을 희석하고 영화를 뭔가 있어 보이게 하는 효과를 가져다 주었다고 본다.

혹평만 늘어놓았는데 개봉된 지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 봐서, <주온> 귀신에 대한 익숙함에 내성이 생겨서 무섭지 않았던 것일 수 있다. 그럴 확률이 높다. 개봉됐을 당시에 봤다면 나도 무서워서 호평을 했지도 모른다. 어쨌든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이 극장판이 비디오판(1편)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깨끗한 화질, 극적인 효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 등 이러한 영화적 시도가 오히려 공포에 독이 되었다.


2. 줄거리

<주온>에 대해 얘기할 때는 줄거리 해설이 필수다. 서사가 통으로 시간순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인물 중심으로 무작위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리카, 카츠야, 히토미, 토오야마, 이즈미, 카야코' 순서로 진행되지만 실제 시간의 순서는 '카츠야, 리카, 히토미, 토오야마, 카야코, 이즈미'다. 전체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전개하면 다음과 같다.

카야코의 저주가 걸린 집에 토쿠나가 가족(남편 카츠야, 아내 카즈미, 할머니(카츠야의 엄마) 사치에)이 이사 온다. 밤마다 잠 안 자고 깨어나서 움직이고 물건을 어지럽히는 소리 때문에 카즈미는 잠을 설친다. 그녀는 시어머니(사치에)가 그런 행동을 하는 줄로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범인은 토시오다. 귀신이 된 토시오가 사람 몰래 물건을 어지럽히고 장난을 치는 것이다. 카즈미가 소파에 앉아 잠깐 졸고 있을 때 찻잔을 엎지르고 도망한 게 토시오이므로 그간 집 안을 어질렀던 범인이 그였음을 알 수 있다. 문에 난 손바닥 자국도 문고리만 한 것으로 보아, 그만큼 크기가 작으므로 토시오가 행한 짓이라고 볼 수 있다. 카즈미는 이상한 기운을 느끼고 집 안을 살피다가 고양이(토시오가 기르던 고양이 마)와 토시오를 발견하고 그들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간다. 부부 방(원래는 토시오 방)에 들어가자 무언가 나타나 카즈미를 놀래고 그녀는 소리 지른다. 저녁에 퇴근해서 집에 온 카츠야가 침대에 기절해 누워 있는 카즈미를 발견하고 구급차를 부르기 위해 휴대전화를 꺼내는데 방 안에 누가 있는 것 같은 낌새를 느낀다. 조심스럽게 방 안을 수색하다가 갑자기 나타난 토시오를 보고 놀란다. 토시오는 고양이 울음을 내고 사라진다. 그가 고양이 소리를 낸 이유는 고양이의 혼이 그에게 빙의했기 때문이다. 카야코의 남편 타케오가 일가족을 몰살할 때 고양이도 잡아다 죽이는데 그때 고양이의 혼이 귀신 토시오에게 들어간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토시오의 혼과 고양이의 혼이 서로 섞여버린 것. 이를 증명하는 장면도 있다.

리카가 옷장에서 토시오를 발견했을 때 그림들이 벽에 붙어 있는데, 토시오 등 뒤에 있는 그림 두 개를 보면 고양이와 토시오의 관계를 알 수 있다. 우선 아래쪽에 있는 두 얼굴과 고양이의 그림을 보면 두 얼굴 중 하나는 머리가 길고 나머지는 머리가 짧다. 긴 머리의 얼굴은 카야코고 짧은 머리는 타케오다. 토시오가 부모님 얼굴을 그린 것이다. 검은 고양이 그림은 당연히 그가 키우는 고양이 마다. 위쪽에 붙어 있는 그림을 보면 사람 머리에 고양이 몸을 한 반인반수가 그려져 있다. 머리 길이가 적당한 것으로 보아 그 얼굴의 주인공은 토시오 본인이다. 고양이 몸은 마의 몸이고. 토시오 머리와 고양이 몸이 합쳐져 있다는 것은 둘이 혼연일체 되었다는 뜻과 같다. 서로의 영(靈)이 혼합된 것이다.

카즈미는 꺼어억 숨 막히는 소리를 내며 죽는다. 카야코가 죽을 때도 남편에게 목이 꺾여 꺼어억 소리를 내는데(<그루지>에서 확인 가능) 그 죽음의 저주가 카즈미에게 재연된 것이다. 카츠야는 카즈미의 죽음에 놀라 벌벌 떨며 손톱을 깨무는데 그 행위를 통해 타케오에게 빙의되어(타케오가 카야코를 죽였을 때 손톱을 깨문다.) 그가 일가족을 몰살했던 때 했던 행위를 되풀이한다. 카즈미(카야코)의 시신을 과거 카야코가 썼던 방으로 이동시키고, 과거 토시오가 썼던 지금 부부 방의 옷장을 봉인하기 위해 테이프를 손에 쥔다. 히토미가 계단에 앉아 있는 카츠야를 발견하고 놀랐을 때 그의 손에 테이프가 들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카츠야는 타케오에게 빙의된 상태이므로 타케오가 일가족을 몰살했을 때 토시오가 숨어 든 옷장을 테이프로 봉인했다는 사실도 유추된다.

카츠야는 집에 방문한 여동생 히토미를 내쫓을 때 카즈미에게 남자가 있었다고, 그녀가 나를 속였다고, 그 애는 내 애가 아니라고 중얼거린다. 타케오의 영혼이 빙의한 상태이므로 카즈미에게 남자가 있었다는 말은 카야코가 고바야시와 사귀고 있었다는 뜻이 되고, 그녀가 나를 속였다는 말은 카야코가 자기(타케오)를 사랑하지 않음에도 자기와 결혼하고 결혼 후에도 고바야시를 잊지 못했다는 뜻이 되고, 그 애는 내 애가 아니라는 말은 토시오가 자기의 친자가 아니라 고바야시의 친자라는 뜻이 된다. 물론 이것은 타케오의 오해이자 착각이다. 카야코가 고바야시를 사랑한 것은 맞지만, 그래서 일기에 별의별 것을 적었지만 그것은 과거의 일일 뿐이다. 카야코는 결혼하고 토시오를 낳은 후 수년 뒤에 선생과 학부모 관계로 고바야시와 재회하므로 토시오가 고바야시의 친자일 수도 없다. <주온>의 저주는 타케오의 망상이 저지른 참극이다.

히토미를 내보낸 후 카츠야는 2층으로 올라가고 카야코가 썼던 방의 창문에 카야코가 등장하며 문이 열리는데, 이는 카츠야가 타케오가 그랬던 것처럼 카즈미(카야코)의 시신을 다락에 숨기려고 들어간 것이고 후에 카츠야도 타케오가 카야코 귀신에게 살해당했듯이 창문에 나타난 그녀에게 죽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그래서 나중에 경찰들이 집을 조사했을 때 다락에서 카츠야와 카즈미가 함께 발견된 것이다. (카야코는 사람을 다락으로 끌고 올라가 죽이는 경우가 많다.) 재밌는 점은 경찰들이 전화벨 소리로 시체를 찾았을 때 카츠야의 휴대전화가 윗옷 주머니에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침대에 기절해 있는 카즈미를 발견한 뒤 구급차를 부르려고 휴대전화를 들었을 때는 바지 주머니에서 꺼냈고, 토시오의 기척 때문에 놀라서 통화를 관두고 방 안을 수색할 때는 도로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었는데 어떻게 휴대전화가 윗옷에 가 있는 것일까. 비디오판을 보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타케오는 일가족을 몰살한 뒤 고바야시의 집으로 찾아가 그의 임신한 아내를 죽이고 태아를 꺼내 가방에 담고 근처 공중전화에서 고바야시에게 전화를 건다. 타케오에게 빙의된 카츠야도 자신의 휴대전화로 고바야시에게 전화 거는 행동을 했을 것이다(물론 고바야시는 이미 죽었지만). 그리고 그 휴대전화를 윗옷 주머니에 넣은 뒤, 전화 끝내고 타케오가 카야코 귀신에게 살해당한 것처럼 그도 그 상태에서 최후를 맞은 것이다.

토쿠나가 가족의 집에 들러 할머니 사치에를 돌보았던 사회복지사가 (카야코의 저주 때문에) 실종되었으므로 리카가 복지사 대신 그 일을 떠맡는다. 카츠야와 카즈미가 죽고 난 뒤이므로 집에는 사치에 혼자 있다. 리카는 (토시오의 장난 때문에) 더럽고 어지러운 집 안을 청소하다가 2층에서 이상한 소리(옷장 안에서 토시오가 손으로 문을 긁는 소리)을 듣고 과거 토시오가 썼던 방이자 카츠야와 카즈미 부부가 쓰는 방에 들어간다. 방의 창문이 나무를 덧대서 봉쇄돼 있는데, 이를 통해 (이는 타케오에게 빙의된 카츠야가 한 짓이지만) 타케오가 토시오를 죽일 때 옷장 안에 가두고 테이프로 봉인했을 뿐 아니라 창문도 막아서 완전히 감금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토시오를 보고 놀란 리카는 아래층으로 내려와 복지 센터에 전화를 걸어 웬 아이가 집에 있다는 사실을 알린다. 그때 응답 전화로 히토미가 엄마(사치에)의 안부를 묻는 전화를 거는데, 이는 히토미 편에서 그녀가 맨 처음에 전화를 거는 장면과 동일한 순간이므로 리카 편이 히토미 편보다 시간적으로 앞서 진행된 사건임을 알 수 있다.

리카는 2층 난간에 매달린 토시오와 잠깐 얘기를 나눈다. 그녀는 토시오에게 이름을 묻고 토시오는 자신의 이름을 답한다. 이제 그녀도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고 하는데 ("내 이름은….") 토시오가 고개를 돌려 사치에가 있는 쪽을 바라본다. 리카는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지 못하고 사치에를 살피러 간다. 왜 하필 이름을 알려주는 순간에 토시오가 고개를 돌렸을까. 본인은 이름을 말했으면서 왜 남의 이름은 듣지 않고 시선을 돌린 걸까. 단순히 다음 사건이 사치에가 카야코에게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라서 사치에 쪽을 쳐다본 것일까. 이름 따위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기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걸까. 이에 대한 해답은, 왜 리카가 자신의 이름을 말할 수 없었는지는 이따 얘기하겠다.

사치에는 검은 모습으로 나타난 카야코에게 죽음을 당하고, 카야코와 눈이 마주친 리카는 놀라서 기절한다. 이때 리카가 어떻게 된 것인지, 카야코가 리카를 어떻게 한 것인지, 마지막에 리카 귀신이 등장하고 그동안 카야코로 알고 있던 게 리카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는데 이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리카와 카야코가 무슨 관계인지에 대한 논란이 많다. 가장 유력한 가설 네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무관계설(無關係說), 지박령설(地縛靈說), 사후귀신설(死後鬼神說), 정체불명설(正體不明說).

무관계설은 리카는 인간이고 카야코는 귀신이므로 둘은 아무 관계 없다는 주장이다. 리카가 귀신을 볼 수 있었던 까닭은 손으로 눈을 가린 행위가 일종의 영매적 행위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눈을 가린 사치에나 사이토(복지 센터에서 리카와 산책했던 할아버지)나 똑같이 귀신을 보았을 것이고, 손으로 눈을 가리면 가린 사람과 동일한 모습으로 귀신이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리카는 그런 영매적 행위를 통해 단순히 자신의 모습을 한 귀신을 본 것일 뿐 귀신과 본인은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손으로 눈을 가리는 행위가 영매적 행위인 것은 맞다. 손 틈 사이로 보이는 눈은 카야코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디오판에 나오는 카야코의 일기장을 보면 알 수 있다.

카야코는 대학생 때 고바야시를 짝사랑하고 염탐하는 것을 즐겼다. 일기에는 그녀가 훔쳐본 고바야시에 대한 일거수일투족이 기록돼 있다. 그가 사는 아파트에 몰래 가서 그가 자는 모습을 지켜본 내용까지 있다. 이렇게 몰래 보는 것이 카야코가 사랑했던 사람에게 할 수 있었던 최선의 행동이었으므로 그녀가 죽어 귀신이 된 후에, 눈으로 몰래 보는 행위가 그녀를 상징하고 그녀를 불러일으키는 영매적 작용을 하게 된 것이다. 그녀의 일기장에는 찢어진 종이 구멍으로 훔쳐보는 눈이 그려져 있다.

그렇지만 손으로 눈을 가린다고 해서 자신과 똑같은 모습의 귀신을 본다는 주장은 틀렸다. 사이토는 눈을 가렸을 때 토시오를 보기 때문이다. 리카와 산책을 끝내고 복지 센터 안으로 들어갈 때 유리문으로 토시오가 보이고 사이토는 손을 흔들며 작별한다. 만약 손으로 눈을 가릴 때 자신의 모습을 한 귀신을 보는 것이 맞다면 사이토는 토시오가 아니라 자기 귀신을 봤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장면은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마지막에 리카가 그간 나타났던 (거의) 모든 귀신이 자신이었음을 깨닫는데, 리카와 귀신이 아무 관계가 없다면 히토미를 죽인 귀신과 형사들을 죽인 귀신이 리카 자신의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손으로 눈을 가릴 때만 자기 모습을 한 귀신을 보는 것이라면 히토미와 형사들은 리카 귀신이 아닌 본래 카야코 귀신을 봤어야 한다. 따라서 리카와 귀신이 관계없다는 무관계설은 틀린 것이다.

지박령설은 인터넷에서 가장 지지도가 높은 가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카야코가 지박령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녀가 자신의 집을 벗어나면 힘을 쓸 수 없기 때문에 리카를 기절만 시켜 살려 두어 그녀의 몸에 빙의해 여러 사람을 죽이고 다닌 것이라고 한다. <주온> 극장판만 봤다면 나도 이 가설을 지지했을지도 모른다. 지박령이라는 개념을 끌어와 가장 편하고 그럴싸하게 이야기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카야코는 지박령이 아니다. 절대 아니다. 왜냐하면 이미 비디오판에서 그녀는 스스로 이곳저곳에 출몰함으로써 자신이 지박령이 아님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루지> 시리즈에서는 외국으로 원정 살인 하는 재주까지 보여준다. 카야코는 만능이기 때문에 지박령이라는 개념 따위에 구속받지 않는다. 그녀 능력은 슈퍼맨보다 광범위하고 무한대하다. 비디오판에 나온 것만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고바야시가 썼던 휴대전화를 시간이 꽤 흐른 뒤에 미즈호가 다니는 학교에 가져다 놓고, 당연히 집뿐만 아니라 학교에도 나타나고, 타케오를 죽일 때 쓰레기 봉투에서 나타나고, 타케오가 고바야시의 임신한 아내를 살해하는 장면을 영화 장면처럼 눈앞에 보여주고, 키타다에게 빙의해 남편의 머리를 프라이팬으로 내려치고, 쿄코로 둔갑해 타츠야를 찾으러 왔다가 순간 이동으로 사라지고, 액자(타츠야 부모님 집)와 천장(요시카와 집)에 나타나고, 생전의 카야코 모습으로 경찰서를 찾아와 여경을 속이고, 노부유키와 함께 있던 학생 친구들을 자신의 등장과 함께 사라지게 하고, 하나의 모습이 아닌 여러 모습으로 분신술까지 보인다. 자, 이래도 카야코가 지박령인가? 카야코는 이미 만능이므로 누구 몸에 빙의할 필요가 없다. 빙의했다면 그것은 심심풀이 장난이지 자신의 능력에 제한이 있어서 필요에 의해 한 것은 아니다.

또한 카야코가 리카 몸에 빙의했다는 표현은 정황상 부적합하다. 빙의란 귀신의 영혼이 인간의 육체에 들어가 인간을 조종하는 것을 뜻한다. 카야코가 지박령이라서 밖에 나가려면 육체가 필요하므로, 그러한 목적 때문에 리카에게 빙의한 것이라면 리카의 육신이 히토미의 이불 속에 들어갔고, 리카의 육신이 카야코 집의 다락에 숨어 있다가 토오야마와 형사들이 잠입했을 때 그들을 공격했고, 리카가 머리 감고 있을 때 리카 본인이 자기 머리를 만지고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는 건데, 이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타케오가 카츠야에게 빙의했을 때를 떠올려보자. 카츠야의 육신이 타케오처럼 행동했다. 카야코가 리카에게 빙의한 것이라면 리카의 육신이 카야코처럼 행동했어야 한다. 짧은 머리의 리카가 카야코처럼 사람들을 죽였어야 한다. 그러나 리카의 모습을 한 귀신은 카야코처럼 긴 머리이므로 카야코가 리카에게 빙의했다는 것은 틀린 주장이 된다.

사후귀신설은 리카가 본래부터 귀신이었다는 가설이다. 본인은 자신이 귀신이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마지막에 거울 보고 눈 가리는 행동을 통해 본래 귀신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주장이다. 리카가 언제 죽고 귀신이 되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영화 시작 처음부터 귀신이었을 수도 있고, 사치에와 함께 검은 카야코를 보고 난 뒤 죽어서(기절했을 때) 그때부터 귀신이 됐을 수도 있다. 어찌 됐든 이것도 말이 안 되는 주장이다. <식스 센스>를 방불케 하는 이 귀신설은 데우스엑스마키나처럼 리카를 귀신으로 확대 해석 해 영화 속 복잡한 인과 관계를 분석하지 않고 맘 편하게 덮어버리는 꼼수를 부린다. "이것저것 따지지 마. 리카 원래 귀신이니까." 이렇게 쉽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리카가 본래 귀신이었다면 이 영화에서 카야코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 카야코의 저주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는 게 <주온> 시리즈의 골자인데, 리카가 본래 귀신이고 마지막에 그 사실을 스스로 깨닫는 것이라면 카야코는 들러리 역할밖에 안 되는 것이다. 또 귀신인 리카가 복지 센터에 일하고, 병원에 입원하고, 형사와 얘기를 나누고, 마리코와 친구 관계를 지속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든 설정이다. 본인은 귀신인 줄 모르고 있을 수 있다 쳐도 남들까지 그녀가 귀신인 줄 모르고 귀신을 사람처럼 대했다는 것은 억지고 허위고 불가다.

리카가 귀신이었기에 그녀만이 토시오의 생전의 모습과 마주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마리코가 가정 방문으로 카야코 집을 갔을 때 토시오의 생전 모습과 마주한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마리코도 귀신이라는 건가. 리카와 마리코가 귀신끼리 단짝처럼 지내왔다는 뜻인가. 무엇보다 이 가설은 치명적 결점을 가지고 있다. 다른 반론을 차치하더라도 이 이유 하나 때문에 가설이 성립하지 못한다. 그것은 이즈미가 하교 후 집에 도착했을 때 엄마가 남편(토오야마)의 영정 앞에 앉아 라디오를 듣고 있는데 그 방송에서 리카의 시체가 카야코 집에서 발견되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A woman's body has been found in an empty house in Nerima ward.). 리카의 시체가 거기서 발견되었다는 것은 그녀가 예전에 거기서 죽었다는 뜻이다. 가설에 따라 본래부터 귀신이었다면 영화 시작 이전에 카야코 집에서 죽었다는 뜻인데, 리카는 자원봉사 할 때 그 집을 처음 방문한 것이고 이미 그곳에서 죽어 있었다고 해도 경찰이 카츠야와 카즈미 부부의 시체를 발견했을 때 다락에는 그녀의 시체가 없었으므로 그녀가 죽은 시점은 절대로 경찰 수사 이전일 수가 없다. 따라서 그녀는 경찰 수사 이전까지 살아 있는 인간이었다는 셈이므로 본래부터 귀신일 수 없는 것이다. 결국 그녀는 우리가 아는 대로 인간 리카가 맞고 영화에서 보는 대로 마지막에 타케오의 원혼에 의해 최후를 맞고 다락에 버려진다.

정체불명설은 리카가 인간계와 영계를 둘 다 초월한 어떤 존재라는 가설이다. 그래서 인간적 상황과 귀신적 상황이 영화에서 동시에 나타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그 근거로 토시오를 드는데, 행방불명 되어 죽었을 가능성이 높은 그가 초등학교에 입학해 마리코가 가르치는 학생이 되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 이 모순을 해결하려면 토시오가 인간계와 영계를 초월한, 두 영역에서 모두 활약 가능한 어떤 존재로 상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 사이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더 높은 차원의 개념을 끌어와 모순 자체를 포섭해 버리는 방식이다. 이것도 사후귀신설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귀신이나 초월자나 꼼수인 것은 마찬가지다. 결국 이 가설도 카야코의 존재 의미를 간과하고 있고, 방송에서 리카의 시체가 카야코의 집에서 발견됐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행방불명 된 토시오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것은 귀신의 능력 범주 안에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비디오판에서 카야코는 노부유키와 교실에 함께 있는 친구들을 순식간에 없애버리고 분위기를 무섭게 바꾼다. 이 극장판에서도 토오야마가 휘발유를 들고 집을 불태우러 갔을 때 미래의 시간 차원에 있는 이즈미와 한 공간에서 만난다. <주온>의 저주에는 시공간의 물리적 제약이 없다. 따라서 토시오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고 귀신보다 더 전능한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네 가지 설 모두 논리적 모순이 있고 리카와 카야코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주지 못한다. 정답은 없는 것일까. 그냥 오리무중으로 남겨 두어야 하나. 그렇지 않다. 영화에 리카와 카야코의 관계를 파악할 만한 힌트들이 조금 나오는데 이것을 잘 조합하면 궁금증을 풀 수 있다. 일단, 이즈미 엄마가 들었던 라디오 방송에 의하면 리카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어린 이즈미가 여고생이 됐을 때) 카야코의 집에서 발견된다. 영화 마지막에 그녀는 타케오 혼에 의해 카야코처럼(타케오가 일기장을 보고 그녀를 죽였던 것처럼) 최후를 맞는데 이때 죽어서 카야코처럼 다락에 처박힌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가 죽기 전까지는 인간이었다고 해야 함이 옳다. 본래 귀신이었다느니 인간도 아니고 귀신도 아닌 초월적 존재라느니 하는 말은 맥락상 부적절하고 영화 속 논리 구조를 따져 보기 귀찮아서 그럴싸한 개념을 도입한 낭설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리카가 거울 앞에서 눈을 가린 행위를 통해 자신이 본래 귀신이었음을 깨닫는 장면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자신이 귀신이었음을 깨달은 것이 아니라 카야코 귀신이 자신과 동일했음을, 귀신이 자신에게 접해서 자신과 귀신의 정체성이 일치했음을, 카야코가 자신(리카)의 영혼을 탈취해서 자신의 자아와 하나가 된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쉽게 말해, 내가(리카가) 카야코고 카야코가 나라는 사실을 그때 깨달은 것이다. 뚱딴지같은 소리로 들릴 수 있으나, 리카가 본래 카야코여서 타케오랑 결혼하고 토시오를 낳은 여자였다는 소리가 아니라 카야코 귀신이 자원봉사자 리카에게 접해서 그때부터 두 사람의 육체와 영혼이 동일해졌다는 소리다. 리카가 사치에를 죽이려는 검은 귀신과 눈이 마주쳤을 때 놀라 기절하는데, 그때 카야코 귀신이 리카에게 접해 리카의 영혼과 자아를 먹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리카는 몸은 자신이지만 영혼(자아)은 카야코가 되고, 카야코 귀신은 리카의 영혼을 접수해서 리카의 얼굴을 한 귀신으로 나타난 것이다. 즉, 리카가 카야코고 카야코가 리카인 상태가 된 것이다. 나는 이것을 동일설(同一說)이라고 부르겠다.

그래서, 리카와 카야코가 서로 같아졌기 때문에, 카야코가 리카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 것이고 이즈미를 저세상으로 끌고 갈 때에는 리카가 죽은 후이므로 본래 자신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리카의 경우는 그녀가 대학교 3학년 때 어떤 남자(토요시마)를 좋아했다는 마리코의 말을 통해, 토시오가 늘 그녀 곁에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통해, 그리고 그녀의 방 안에 곰돌이 인형이 있다는 것을 통해 동일설을 증명할 수 있다. 카야코도 대학생 때 고바야시를 짝사랑했기 때문이다. 사이토 할아버지를 산책시킬 때와 마리코의 전화를 받으러 갈 때 토시오가 리카 주변에 있었던 것은 그가 그녀를 카야코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새끼들이 어미 새를 졸졸 쫓아다니는 것과 유사하다.

곰 인형은 히토미가 떨어뜨린 그 인형을 말한다. 그것은 원래 히토미 가방에 달려 있던 것이다. 리카 귀신(카야코와 동일해졌으므로)이 영적 능력으로 곰 인형을 히토미 손에 쥐어 주고 이불 속에서 그녀를 저세상으로 끌고 가는데, 나중에 그것과 유사하고 크기만 더 큰 인형이 리카의 방에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침대 위, 옷걸이 옆). 둘 다 곰이고 빨간 리본을 목에 달고 있다는 점이 둘의 동일성을 시사한다. 카야코(귀신)는 비디오판에서도 고바야시가 썼던 휴대전화를 미즈호가 주울 수 있도록 학교에 갖다 놓았는데, 히토미가 소유했던 것과 유사한 곰 인형이 리카의 방에서도 발견되는 것은 고바야시의 휴대전화 사례처럼 카야코(귀신)의 영향 때문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리카와 동일해진 카야코가 히토미의 곰 인형을 습득하고, 카야코와 동일해진 리카가 그것을 자기 방에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곰 인형은 두 사람의 동일성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

리카의 옷차림을 통해서도 이를 알 수 있지만 옷차림은 '때에 따라 다를 수도 있는 것이다.'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동일성을 나타내는 근거로 들지 않겠다. 사실 리카의 옷차림은 카야코 귀신이 접한 이후로 확연히 달라진다. 접하기 전에는 의도적으로 편하게 입은 듯한 사복이지만 접한 이후로는 옷깃 있고 단정한 예복으로 스타일이 바뀐다.

리카는 마지막에 눈 가리는 행위를 통해 카야코가 자신의 영혼을 잠식해서 둘이 동일해졌음을, 그래서 카야코가 자신의 얼굴을 하고 돌아다녔던 것이고 자신도 카야코의 운명처럼 타케오에게 죽임 당할 것임을 깨닫는다. 실제로 2층에서 타케오가 내려오고 리카는 시체가 되어 다락에 처박힌 모습으로 끝난다. 왜 마지막 편의 제목이 '카야코'인지 알겠는가. 이 영화는 각각의 단편이 인명의 제목을 달고 있다. 그 이름들은 각각의 편에서 귀신에게 당한 사람들의 이름이다. 리카 편에서는 리카가, 카츠야 편에서는 카츠야가, 히토미 편에서는 히토미가,  토오야마 편에서는 토오야마가, 이즈미 편에서는 이즈미가 당한다. 그런데 카야코 편에서는 리카가 당한다. 타케오에 의해 죽는 것은 카야코가 아니라 리카다. 동일설은 이 모순을 말끔히 해소한다. 카야코가 리카고 리카가 카야코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카야코 편에서 카야코와 동일시된 리카가 죽은 것이다. 마지막 편의 제목이 '카야코'인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앞서, 리카가 토시오와 잠깐 대화 나눌 때 본인의 이름을 말하지 못했다고 얘기했다. 토시오는 자기 이름을 말하고 리카도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려고 하는데 토시오가 시선을 사치에 쪽으로 돌려버려 말할 타이밍을 놓친다. 이것이 단순한, 사소한, 별 의미 없는 장면일까. 리카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못한 까닭을 뒤에서 밝히겠다고 앞서 말했는데, 방금 동일설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기 때문에 내가 왜 그 까닭을 나중에 말하려고 했는지 이제 독자는 알 것이다. 리카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못한 까닭은 자신이 카야코가 될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리카는 잠시 후 카야코한테 접신 당해서 카야코와 동일해지기 때문이다. 이름을 말하지 못한 것은 그녀가 카야코가 되는 것을 암시하는 복선이다. 리카는 카야코가 될 테니 리카를 리카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이 신이 이 영화에서 가장 잘 만든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내가 봤던 영화 중에서 가장 세련되고 수준 높은 연출이라고 감히 말한다. 이 장면은, 리카에게 일부러 이름을 말하지 못하게 한 연출 의도는 두고두고 기억에 간직하고 싶다.

다시 줄거리 설명을 이어가겠다. 히토미는 직장에서 엄마의 안부를 묻기 위해 오빠(카츠야) 부부의 집에 전화를 걸지만 부재중이므로 응답전화에 녹음만 남긴다. 그 후 직장 건물에서 이상한 기운을 느끼고 화장실에 잠깐 들어갔는데 오빠한테서 전화가 온다. 전화를 받았지만 오빠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꺼어억 소리만 난다. 그녀는 오빠가 장난치는 줄 알고 하지 말라고 하자 전화가 끊긴다. 화장실 칸을 나가는데 옆 칸에서 방금 전화로 들었던 꺼어억 소리가 난다. 무서워서 도망하는 순간 가방에 매달린 곰 인형이 떨어진다. 줍고 가려는데 옆 칸 문이 열리며 긴 머리의 귀신이 나타난다. 히토미는 기겁하고 곰 인형을 바닥에 내버려 둔 채 도망한다. 그 길로 경비실에 가 경비원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경비원도 귀신에게 당하고 그녀는 집으로 줄행랑친다. 엘리베이터에 급히 올라타고 빨리 집 층수에 도착하기를 기다린다. 엘리베이터 창밖으로 토시오의 모습이 층마다 보인다. 귀신이 그녀의 집까지 쫓아왔다는 뜻이다. 집에 도착한 히토미는 조금 안도하는데 집 전화가 울린다. 오빠다. 집 밖에 와 있으니 안에 들어가게 호실을 알려 달라고 한다. 귀신은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갈 수 없어서 그 집 주인이 문을 열어줘야 들어갈 수 있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래서 카야코 귀신이 오빠 목소리 흉내를 내어 호실을 물어본 것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계속 강조하지만 <주온>의 저주에는 제약이 없다. 문을 열어주지 않는 이상 남의 집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허접한 귀신한테나 통하는 얘기다. 카야코가 오빠 목소리 흉내를 낸 것은 맞지만 집에 들어가기 위해 호실을 물어본 것은 아니다. 카야코는 전지전능하므로 그러한 속설 따위에 구애되지 않는다.

문을 열어 보니 집 앞에 아무도 없고 들고 있던 전화기에서 꺼어억 소리가 난다. 놀라서 전화기를 내던지고 집에 들어와 전화기 선을 뽑고 이불을 뒤집어쓴다. 혼자 있는 게 무서워서 텔레비전을 켜지만 화면 속 여자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꺼어억 소리가 또 난다. 텔레비전을 꺼보려고 하지만 리모컨이 작동하지 않는다. 갑자기 알아서 텔레비전이 꺼지고 히토미는 무서워서 이불을 머리 끝까지 올리는데 손에 무엇이 잡힌다. 확인해 보니 아까 화장실에서 떨어뜨린 곰 인형이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놀라 곰 인형을 내던지고 벌벌 떠는데 이불 속에서 리카 귀신이 나타나 저세상으로 끌고 간다.

리카에게 연락이 닿지 않자 히로하시(복지 센터 직원)는 사치에가 사는 집을 직접 방문해 본다. 죽은 사치에와 넋이 나간 리카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다. 경찰이 집을 수색하고 사라진 카츠야와 카즈미 부부를 찾기 위해 전화를 걸어 본다. 집 위층에서 벨 소리가 난다. 옛날에 카야코가 썼던 방의 다락이 소리의 근원지다. 거기서 카츠야와 카즈미 부부의 시체가 발견된다. 카즈미의 시체는 카야코에게 빙의되었으므로 타케오에게 빙의된 카츠야가 타케오가 카야코를 죽이고 다락에 둔 것처럼 거기에 둔 것이고, 카츠야의 시체는 카츠야가 타케오에게 빙의되었으므로 카야코 귀신이 본인이 타케오에게 죽음을 당한 후 귀신이 되어 복수한 것처럼 다락으로 끌고 올라간 것이다.

그 집에 대한 사건과 의문을 풀기 위해 경찰은 전에 그 사건을 담당했던 토오야마에게 협조를 구한다. 히토미가 일했던 직장의 건물에서 경비원이 죽었을 당시에 찍힌 CCTV를 보다가 토오야마는 화면 속 귀신과 마주하고 공포와 불길함을 느낀다. 저주를 끝내려면 집을 없애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그는 집을 불태우기 위해 휘발유 통을 들고 직접 그곳을 찾는다. 신기하게, 훌쩍 커 여고생이 된 자신의 딸 이즈미와 조우한다. 수년 뒤에 친구들과 흉가 체험을 하러 그 집에 들어온 이즈미도 같은 공간에서 죽기 전의 아버지 토오야마와 마주친다. 한 공간에 두 시간 차원이 공존하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물론 귀신의 장난이다. 이즈미는 그 뒤로 집을 나가고 토오야마는 소리가 들리는 2층으로 올라간다. 이즈미 친구들이 방에서 이것저것 살피다가 귀신을 보고 놀라고, 그 시간 차원이 닫히면서 본래 시간으로 돌아오고 리카 귀신이 무섭게 접근한다. 토오야마를 찾으러 온 형사들은 거기서 최후를 맞고, 토오야마는 그 집을 빠져나오지만 얼마 후에 죽는다.

시간이 흐르고 정상 생활로 돌아온 리카는 오랜만에 마리코를 만나 얘기를 나눈다. 마리코는 초등학교 교사인데 자기가 맡은 반에 학교를 한 번도 나오지 않은 학생이 있다고 문젯거리라고 말한다. <주온>의 저주는 전지전능하므로 귀신인 토시오가 행정 서류를 조작해 학교에 입학하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다. 그러므로 영화가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없다. 토시오가 초등학생이고 마리코가 그의 담임이라는 점 때문에 이 카야코 편의 이야기가 현재고 그 전편들이 미래라는 주장이 있는데, 이것은 논리적 허점이 너무 많고 결정적으로 리카가 마리코를 구하러 그 집을 찾아갈 때 집 주위에 노란 안전띠가 쳐져 있는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마리코가 들어갔을 때는 안전띠가 없었을 것이다. 마리코에게 착각을 일으켜서 안으로 들어오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리카가 갔을 때는 안전띠가 있다. 이미 일전에 그녀는 그 집에서 귀신을 보았고 경찰이 그곳을 수색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문을 열고 입구에 들어섰을 때, 토오야마가 가지고 왔던 손전등과 먼지 위에 찍힌 발자국이 보인다. 토오야마 편 이후 시간이 좀 흘렀고 그 다음 전개가 카야코 편임을 증명하는 단서다.

종국에 리카는, 카야코에게 접신 당한 이후부터 자신이 카야코와 동일시되어 공존했음을 알게 되고 카야코가 타케오에게 살해당한 것처럼 자신도 타케오의 혼에 의해 똑같은 죽음을 맞이한다.

세월이 흘러 토오야마의 딸 이즈미는 훌쩍 큰 여고생이 된다. 그녀는 사오리(비디오판 2편 마지막 인물)를 포함한 친구 셋과 함께 흉가로 소문난 그 집에 호기심으로 찾아간다. 불길하고 찜찜한 느낌을 받은 그녀는 친구들을 남겨 두고 혼자 집을 나간다. 1층 현관에서 과거의 아버지(토오야마가 불을 지르려고 휘발유 통을 들고 왔을 때)와 조우하지만 잠깐 눈만 마주치고 황급히 그 집을 빠져나간다. 흉가 체험 후 친구들은 사라지고 그들의 얼굴이 붙은 실종 전단지를 길에서 보게 된다. 이즈미는 그들의 실종이 그 집과 관련 있음을 예감하지만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학교에서 학생들 찍은 사진이 복도에 전시되는데 거기에 이즈미만 없다. 그녀가 찍힌 사진은 하나도 없다. 이즈미의 다른 친구들(치하루, 미아키)이 사진에 그녀가 보이지 않는다며 다시 현상하자고 선생님에게 조른다. 하굣길에 벽에 붙은 친구들의 실종 전단지를 다시 보고 그녀는 그 집에 확실히 문제가 있었음을, 그래서 친구들이 실종된 것이고 자기의 모습이 사진에 없었던 것임을 거의 확신한다. 남편(토오야마)의 죽음으로 폐인이 된 엄마는 집 안에 위패와 사당을 차리고 그 앞에 앉아 라디오를 듣는다. 라디오에서는 리카의 시신이 발견되었다고 보도한다. 자기 방에 들어온 이즈미는 누가 자기를 쳐다보는 것 같은 불길한 기운을 느껴서 창의 커튼을 닫는다. 새로 현상한 사진을 보여주려고 친구들이 이즈미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녀는 방 창문에 신문지를 붙여 놓고 모든 시선을 봉쇄한 채 폐인처럼 살고 있다. 이즈미는 친구들에게, 실종된 친구들과 예전에 흉가를 방문하고 자기는 무서워서 혼자 도망쳤다고 그간에 있었던 일을 털어놓는다. 제정신이 아닌 이즈미와 집 안의 음침한 분위기 때문에 친구들은 돌아간다. 가는 길에, 깜박하고 보여주지 못했던 사진을 꺼내 보는데 이즈미와 실종된 친구들의 눈만 검게 패여 있다. 두 친구는 놀라서 사진을 바닥에 버리고 도망친다. 이즈미는 꿈에서 아빠를 보고 깨어난 뒤, 집에 귀신이 되어 나타난 실종 친구들을 피해 도망하다가 카야코 귀신에 의해 저세상으로 끌려 간다.

맨 마지막에 리카 귀신이 눈을 뜨는 장면은 깜짝 영상이다. 시청자를 놀래기 위해 줄거리와 상관없이 끼워 넣은 것이다. 굳이 해석하자면, 리카와 카야코는 동일하므로 리카가 죽은 것은 곧 카야코가 죽은 것과 같다. 그래서 머리 짧은 리카 대신에 머리 긴 카야코, 즉 리카 귀신이 희생 당한 모습으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해석하면 카야코는 남편에게 두 번 죽음 당한 꼴이 되니까 맨 마지막 장면은 해석하지 않는 편이 좋다. <주온>의 저주가 계속될 것이라는 전조쯤으로 받아들이자.


3. 주제

마지막에 리카가 타케오에게 죽음을 당한 후 거리의 풍경을 담은 일곱 장면이 등장한다. 벽에는 실종자 전단지가 붙어 있고, 물건들이 바닥에 버려져 있고,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아 황량하고 을씨년스럽다. 이것은 <주온>의 저주 때문에 인간미가 사라진 음울한 사회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저주 이전에는 가족도 있고(토쿠나가 가족, 토오야마 가족), 부부도 있고(카츠야와 카즈미), 남매도 있고(카츠야와 히토미), 친구도 있고(리카와 마리코, 이즈미 친구들), 동료도 있지만(복지 센터 직원들) 저주 이후에는 모두 죽어 관계가 소멸한다. 죽을 때도 그들은 혼자 죽는다. 귀신이 나타났을 때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없다. 고독사가 만연한 현대 사회의 모습과 흡사하다.

관계는 해체되고 개인은 혼자다. 이 외로움의 슬픈 심정을 엔딩곡이 담고 있다.


開かない家の鍵わたしの鍵なのに 

아카나이이에노카기와타시노카기나노니 

열리지않는집열쇠나의열쇠인데도


何度も試しても扉は開かない 

난도모타메시테모도아와아카나이 

몇번이고다시해봐도문은열리지않아


昨日も一昨日もその前からひとりで 

키노-모오토토이모소노마에카라히토리데 

어제도그제도그전부터혼자서


誰もいない家に歸ることがあたりまえだった 

다레모이나이이에니카에루코토가아타리마에닷타 

아무도없는집으로돌아가는것이당연했었어


ママから渡された小さい時だった 

마마카라와타사레타치-사이토키닷타 

엄마로부터받은것은어렸을때였어


だけど鍵が開かない家に入りたい 

다케도카기가아카나이이에니하이리타이 

열쇠가열리지않는집에들어가고 싶어


他に歸る場所はないのああ 

호카니카에루바쇼와나이노아아 

달리돌아갈장소가없는걸아아


鍵を開けてもうこれ以上ひとりにしないで 

카기오아케테모-코레이죠-히토리니시나이데 

열쇠를열고이이상혼자내버려두지마


夕燒けに染まる空何かが迫ってくる 

유-야케니소마루소라나니카가세맛테쿠루 

석양에물드는하늘무엇인가가다가오고있어


カ-ディガンもう一枚着たいと思っている 

카-디간모-이치마이키타이토오못테이루 

카디건을한장입고싶다고생각하고있어


昨日は三人で晩御飯を食べたの 

키노-와산닌데반고항오타베타노 

어제는셋이서저녁밥을먹었어


殘りが冷藏庫に入っているのたしかにそうなの 

노코리가레이조-코니하잇테이루노타시카니소-나노 

남은것이냉장고에들어있어확실히그랬어


みんなが一緖だったたしかにそうだった 

민나가잇쇼닷타타시카니소-닷타 

모두가함께였어확실히그랬어


夜がそこまで來てわたしは泣いてる 

요루가소코마데키테와타시와나이테루 

밤이다가와나는울고있어


どこにも行く場所がないのああ 


도코니모이쿠바쇼가나이노아아 

어디에도갈곳이없는걸아아


鍵を開けて中に入れてわたしを受け止めて 

카기오아케테나카니이레테와타시오우케토메테 

열쇠를열고안으로들여보내줘나를받아줘


だけど鍵が開かない家に入りたい 

다케도카기가아카나이이에니하이리타이 

열쇠가열리지않는집에들어가고 싶어


他に歸る場所はないのああ 

호카니카에루바쇼와나이노아아 

달리돌아갈장소가없는걸아아


鍵を開けてもうこれ以上ひとりにしないで 

카기오아케테모-코레이죠-히토리니시나이데 

열쇠를열고이이상혼자내버려두지마


ひとりにしないで 

히토리니시나이데 

혼자내버려두지마


ひとりにしないで 

히토리니시나이데 

혼자내버려두지마


화자는 열쇠가 있어도 문이 열리지 않아 집에 들어가지 못한다. 집은 가족의 따뜻함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열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은 단절과 고독의 상황이 필연적이고 불가항력적이라는 뜻이다. 어떤 방법으로도 피할 수 없고 막을 수 없는 <주온> 저주의 성질과 흡사하다. 석양에 물드는 하늘은 해가 지고 밤이 오고 있다는 뜻이므로, 또 화자는 밤에 울고 있다고 말하므로 상황이 그만큼 절망적임을 뜻한다. 그래서 따뜻한 카디건을 필요로 한다. 어제 셋이 함께 밥을 먹은 것을 떠올리지만 지금은 혼자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 노래를 듣고 타케오에게 죽어 다락에 홀로 처박힌 리카의 모습이 떠올랐다. 맨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는 무섭다기보다 슬프고 외로워 보인다. <주온> 시리즈는 당연히 상업 영화니까 귀신 이야기를 무섭게 만드는 데 주력했겠지만, 인간관계가 파괴되고 개개인이 고독으로 소멸하는 현대 일본 사회를 표현하고자 한 면도 있다. 사실 진짜 무서운 것은 귀신이 아니라 영화 전반에 깔린 고독이다. 저주가 만들어 내는 고독과 단절. 그리고 그 저주는 카야코의 원혼에서 비롯한 것이므로 누구도 막지 못한다. 우리 사회의 고독이 숙명적이라는 이 메시지가 <주온>의 진짜 공포다.

그래서 이즈미가 어렸을 적 바닥에 그린 왕자와 공주가 천국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즈미는 그림을 소개하면서 이들이 천국의 왕자, 천국의 공주, 그들의 아이라고 말한다. 천국은 우리가 사는 현실이 아니라 이상향이다. 현실에서는 가족이 파괴되지만 천국에서는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이므로 가족이 화목하다. 역설적으로 이 그림은 가족의 화목은 천국에서만 가능한 것이라는 비관적 의미를 담고 있다. 가장 오른쪽에 얼굴만 있는 것은 고양이 마다. 양쪽 귀가 뾰족한 점이 고양이임을 증명한다. 천국의 가족과 다르게 현실의 카야코 가족은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천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족의 화목은 천국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4. 표현

<주온>의 저주를 시각화하면 감옥, 함정, 늪 같은 이미지로 표현할 수 있다. 한번 걸리면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디오판에서는 이러한 저주의 속성을 거미줄로 상징화한 장면이 있다. 이 극장판에서는 주변 환경이 만든 틀이 인물을 가둠으로써 그들이 저주에 걸려서 헤어날 수 없음을 표현했다.

리카는 저주 걸린 집에 처음 당도했을 때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는데, 무성한 나무와 문의 사각 틀이 그녀를 가두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형사들이 그 집에서 일어난 여러 사망 · 실종 사건을 조사면서 이것들이 모두 카야코 가족과 관련 있다는 사실을 직감하는데, 그때 전경의 책장과 후경의 벽이 감옥처럼 그들을 가두는 구도를 만든다. 카야코 가족에게 관심을 가졌으니 저주에 걸린 것이나 다름없다.

전경에 사물을 배치하는 구도는 공포 영화에 단골로 쓰인다. 화면 앞에 장애물이 있으면 시청자는 조금씩 스트레스를 받는다. 압박감과 찝찝함을 느낀다. 공포 영화는 그런 식으로 긴장감을 지속시킨다. 비디오판과 <그루지> 1편에서 그런 구도가 많이 쓰였는데 이 극장판에서는 굉장히 드물게 나타난다. 전경의 사물과 함께 화면에 담긴 인물은 주체적 권위를 상실하고 그저 배경과 다름없는 일부분으로 전락한다. 무조건 모두의 경우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의 경우 그렇다. 전경의 장애물이 인물에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경의 사물과 후경의 배경이 인물을 가두는 틀이 되므로 그 속에 갇힌 인물은 능동적이 아닌 피동적 분위기를 나타낸다. 그래서 인물들이 주로 희생양이 되는 공포 영화에 그런 장면이 자주 쓰이는 것이다.

리카가 토시오에게 이름을 묻고 답할 때 토시오는 위에 있고 그녀는 아래에 있다. 리카는 아직 카야코에게 접신 당하기 전이므로 인간이니까 귀신인 토시오와 다른 위상에 존재한다. 둘 사이를 가로막은 큰 벽은 그들이 어떠한 인간적 교류도 나눌 수 없음을 상징한다. 리카는 인간이고 토시오는 귀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래 토시오는 별로 말이 없다. 리카가 토시오를 무서워하고 경계하는 쪽이므로 상대적으로 열등한 그녀가 우월한 그를 올려다본다. 이 장면 하나에 여러 표현 기법이 담겨 있다.

이즈미 친구들이 사진을 가져다주려고 이즈미 방에 들어갈 때 그들은 부감으로 잡힌다.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즈미의 엄마를 보고 한 번 졸았고, 암울한 집 안 분위기에 또 위축됐기 때문이다. 그들은 겁을 먹은 상태이므로 약하다. 그래서 시청자에게 내려다보이는 구도에 위치하도록 찍힌 것이다.

리카가 집에서 마리코의 전화를 받을 때 전경에 놓인 벽에 노란 바탕의 종이가 붙어 있다. 일그러진 표정의 노란색 얼굴 모양이 보이는데 그것은 리카를 상징하는 그림이다. 리카가 영화에 처음 등장할 때 줄곧 노란색 티를 입고 있고, 병원에 입원했을 때 환자복에 노란색 줄이 있고, 마리코의 전화를 받는 그 장면에서도 노란빛의 블라우스를 입고 있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그 일그러진 표정의 노랑 얼굴과 노란색 옷을 입은 리카를 서로 가까이하도록 찍는다. 노랑 얼굴의 일그러진 표정을 통해 리카의 현재 심정과 미래 운명이 별로 좋지 않을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

마리코가 토시오의 집을 방문하고 리카와 통화할 때 토시오가 소파에 앉아 있는 모습이 잠깐 등장한다. 그 토시오는 귀신이기 때문에 화면 아래쪽에 보이는 가족 그림이 괴상하다. 본래 인간이었을 때 토시오는 착하고 정상적인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그 화면에 보이는 그림 속 가족의 얼굴은 귀신 들린 듯 무섭고 몸도 사람의 몸이 아니라 고양이 몸을 하고 있다. 토시오가 죽어서 고양이의 혼과 섞였기 때문에 가족의 모습을 그렇게 그린 것이다. 그 그림은 마리코가 방문하고 만난 그 집과 토시오가 생전의 상태가 아니라 귀신이 된 사후의 상태라는 것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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