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는 역변, 연기는 정변
일단 줄거리를 대강 살펴보자. 부부 두 쌍이 있다. 벤과 루이스, 패트릭과 키아라. 그들 밑으로 아그네스와 엔트라는 자식이 각각 있다. 두 가족은 휴양지에서 만나 친해진다. 휴가를 마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오고 어느 날 벤과 루이스에게 엽서 한 장이 도착한다. 패트릭과 키아라가 보낸 것으로서 자기들 집에 한번 놀러 오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런던 도심에서 일과 스트레스 때문에 지쳐 있던 벤과 루이스는 딸 아그네스를 데리고 패트릭과 키아라가 사는, 이웃 하나 없을 것 같은 한적한 시골로 떠난다. 근데 첫날부터 뭔가 심상치 않다. 패트릭과 키아라의 태도가 묘한 불편함을 주고 그들 부부의 정체가 의심스럽다. 엔트는 무설증으로 태어날 때부터 혀가 짧다고 하는데 자꾸 뭘 말하고 싶어 한다.
굳이 스포일러를 하지 않아도 패트릭-키아라 부부가 사이코 살인마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문명을 상징하는 한 부부와 야만을 상징하는 다른 부부의 갈등과 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야만이 나쁜 것이니 당연히 '문명' 부부가 '야만' 부부를 이길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는데 그 결말이 꼭 '문명'을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야만'에 대한 부정적 시각 못지않게 '문명'에 대한 비판 거리를 이 영화는 제시한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야만'을 끌어들여 '문명'의 지나친 점을 공격하는 게 이 영화의 진짜 의도다.
"See no evil, hear no evil, speak no evil."이란 말이 있다. 이 격언으로 'speak no evil'을 해석하면 영화의 내용과 어느 정도 맞아떨어진다. 엔트를 통해 패트릭-키아라 부부가 살인마라는 것을 깨달은 아그네스는 자기 부모인 벤과 루이스에게 그 사실을 몰래 알린다. 이때부터 영화의 긴장감이 절정을 향해 가는데, 벤과 루이스는 패트릭과 키아라가 살인마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 것처럼 행동하느라, 왜냐하면 알아챈 것처럼 행동하면 그 살인마 부부가 당장 공격을 가할 테니까, 그래서 '문명' 부부답게 피해와 불편을 겪으면서도 형식적 매너를 유지하는데 그들 입장에서는 'speak no evil'이 정말 절실한 판단이다. 만약 두려움을 참지 못하고, 즉 이성을 잃고 '야만'의 정체를 발설한 뒤 그것에 맞섰다면 집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두 부부가 시체가 되었을 것이다. 그들의 딸 아그네스는 엔트의 대체재가 되었을 것이고. 똑똑한 벤과 루이스는 패트릭과 키아라의 무례함을 잘 견뎌 내고, 떠나기 위해 차에 탑승하긴 한다. 악한 것을 말하지 말라는 격언처럼 끝까지 문명적 태도를 견지해서 일단은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speak no evil'을 다르게 해석하고 싶다. 성경의 디도서 3장 2절을 이 영화에 적용하고자 한다. "to speak no evil about everyone, to live in peace, and to be gentle and polite to all people."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한마디로,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라는 뜻이다. 여기서 'speak no evil'은 단순히 '악'을 말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내 입에서 '나쁜 게' 나가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즉, 남에 대한 욕이나 남에게 실례가 될 말을 경계하라는 뜻.
'speak no evil'로 시작되는 이 문구를 영화에 적용하면 벤-루이스 부부와 패트릭-키아라 부부의 입장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앞서 말했듯이 한쪽은 '문명'을, 다른 쪽은 '야만'을 상징한다. 벤-루이스는 런던 아파트에 살고 번듯한 직업이 있고(벤은 구직 중이지만) 테슬라 전기차를 몬다. 반면에 패트릭-키아라는 시골에 살고 뚜렷한 직업이 없고(패트릭은 자신을 의사라고 소개하지만 그건 거짓이다.) 가축을 키운다. 게다가 루이스는 채식주의자고 패트릭은 육식과 사냥을 즐긴다. 영화는 두 쌍의 부부를 그렇게 노골적으로 비교하며 '문명'과 '야만'의 갈등을 고조한다. 재밌는 점은 그들의 차이 중에 남녀의 몸집 크기도 있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벤-루이스 부부는 여자가 키가 크고 패트릭-키아라 부부는 남자가 크다. 근데 패트릭이 키아라보다 단순히 큰 게 아니라 작은 남자이지만 작은 여자를 차지해서('야만'의 세계에서는 수컷이 암컷을 소유한다.) 상대적으로 큰 것이다. 나는 감독이 일부러 키 큰 여배우와 키 작은 남배우를 섭외한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문명'과 '야만'의 차이를 남녀 몸집 크기로도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야만'에서는 본능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여자들이 자기보다 큰 남자를 좋아한다. 패트릭은 남자 중에 작은 편에 속해서 자기보다 작은 여자를 선택하고 둘이 짝이 된 것이다. 여자인 키아라 입장에서 패트릭은 어쨌든 자신보다 크므로 그를 남자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문명'에서는 이성과 자본이 지배적 영향을 끼치므로 여자들이 자기보다 작은 남자와 결혼할 수 있다. 남자 입장에서 보면 경제적 능력과 사회적 신분으로 부족한 성적 매력을 극복한 것. 벤과 루이스가 그 경우다. 확연히 차이가 날 정도로 여자 쪽이 크다. 벤은 인간 사회에서 돈은 많이 벌 수 있을지언정 숫기가 없고 패트릭보다 남성성도 부족하다. 두 쌍의 부부를 보면 패트릭-키아라는 남성이 주도하는 가부장적인 느낌이 들고 벤-루이스는 여성이 남성과 평등하거나 조금 우월한 페미니즘적 느낌이 든다. 영화 클라이맥스에서 활약하는 쪽도 전자의 부부는 패트릭이고 후자의 부부는 루이스다. 흥미롭게도 루이스는 이전에 다른 남자와 바람피운 적 있고(아마 상대 남자는 벤과 다르게 키가 크고 남성적 매력이 있었을 것이다. 벤이 루이스의 핸드폰에서 남자 성기 사진을 발견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남근은 상대적으로 빈약한 벤의 남성성을 떠올리게 한다.) 도망을 위해 차에 탑승하기 전에, 집에 돌아가자마자 벤과 이혼할 것을 여행 중에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문명'의 세계에서는 외도를 통해 본능을 몰래 충족하며 벤과 가정을 꾸렸지만 '야만'의 세계에서는 벤의 우유부단함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테슬라 전기차(경제력) 또한 그다지 쓸모가 없기에(결국 그것은 패트릭 농장의 울타리에 가로막힌다.) 루이스는 그를 남편으로서 더는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견인데, 벤과 루이스는 이혼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결투에서 벤이 충분한 남성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가 망치를 들고 캐비닛에 숨어 있다가 마이크에게 달려드는 장면은 내면의 두려움을 깨고 나와 세상에 야성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알에서 나왔으니 그는 성장한 것이다.
'문명' 부부인 벤과 루이스는 '야만' 부부인 패트릭과 키아라에게 'speak no evil', 즉 친절과 관용을 베푼다. '야만'이 선을 넘으면 아무리 '문명'이라 해도 이빨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하는데 앞서 말한 성경 구절처럼 'speak no evil'의 태도를 견지한다. 그래서 그러다, 모르는 사람의 초대에 당연히 응하지 않아야 함에도 안일하게 생각해 살인마의 구렁텅이로 제 발로 들어간다. 사실 벤과 루이스가 죽음의 대결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그들에겐 도망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문명'이 교육한 친절과 관용이 그들을 점점 죽음으로 몬 것이다.
이 영화는 단순히 '문명'이 '야만'을 이김으로써 그것의 우월함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고 전술했다. '문명'이 우연한 기회에 '야만'을 접하고 자기반성을 하는 게 이 영화의 주제다. 그래서 패트릭-키아라 부부의 무례함과 그로 인한 긴장감이, 공포 영화이기에 작품의 기조를 이루지만 벤-루이스 부부의 문제점이 틈틈이 드러난다. 도시의 아파트에 살지만 취업과 실업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벤, 한 달에 한 번 정도 하는 부부 관계, 루이스의 외도 경험, 아직까지도 애착 인형을 달고 사는 딸 아그네스. 겉으로는 가족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세 식구 모두 인생의 본질적인 부분에서 서로에게 위로받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명'의 맹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야만(a)'을 만나 그 '야만(a)'에 맞서 자신의 '야만(b)'을 드러냄으로써 해결된다. 패트릭-키아라의 살인 행각에서 살아나는 방법은 벤-루이스도 그들에게 살인을 하는 것이다. '문명'이 아무리 우월해도 '야만(a)'의 세상에서는 '야만(b)'으로 맞서지 않으면 먹잇감이 될 뿐이다. 벤이 패트릭을 따라 산 정상에서 포효한 것과 엔트가 나름의 복수를 마치고 포효한 것은 이 영화에서 부정적인 게 아니라 긍정적인 의미로 작용한다. '문명'이 아무리 점잖아도 안에 있는 이빨(야만)을 드러낼 줄 알아야 제대로 된 '문명'인 것이다. 그래서 조준경의 여우를 쏘지 못했던 벤이 망치를 들고, 채식주의자라 동물 사냥에 반대했던 루이스가 포크를 든다. 패트릭-키아라의 야만(a)에 자신들의 야만(b)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끝내고 승리한 그들 부부는 딸 아그네스와 더는 패트릭-키아라 부부의 아들이 아닌 엔트를 데리고 집에 돌아간다. 아그네스가 엔트에게 준 애착 인형은 위로이자 동시에 '문명'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아그네스는 '야만(b)'의 부모를 통해 그들이 자신을 정말 사랑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자신을 지켜줬으니 그만한 사랑 경험이 없다. 이제 애정 결핍이 사라졌으므로 아그네스는 애착 인형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여행 마치고 집에 가면 벤과 이혼할 거라고 했던 루이스. 과연 두 사람이 이혼할까? 영화를 보면, 야만(b)을 통해 야만(a)을 극복한 그들의 사투를 보면 이혼하지 않을 것임을 충분히 예감할 수 있다. '문명' 부부는 '야만'을 통해 개선됐으므로 해피엔딩일 수밖에 없다. 그들이 깨달은 건 가끔 남을 비방해도 되고 가끔 다퉈도 되고 모든 사람에게 잘해줄 필요가 없다는 것일 테다. 'speak no evil'이란 격언을 제목으로 한 이 영화, 그래서 주제는 'speak evil'이다. 문명을 사는 우리 현대인은 때로 악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