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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영화 비평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

이 정도면 괜찮지

by 심윈터
쥬라기월드 포스터.png

쥬라기 영화가 개봉된지도 몰랐다. 영화관 갈 일이 생겨서 예매 어플을 켰는데 거기 떠 있어서 알게 되었다. 평점 확인 안 하고 급하게 영화관 가서 봤는데 꽤 재밌어서 돈이 아깝지 않았다. 그 전에 본 <28년 후>에 많이 실망했던 터라 이번 <쥬라기 월드> 정도라면 나에겐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공룡 충분히 나오고 액션 영화가 할 수 있는 거 할리우드답게 다 보여주니까 범작 이상은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집에 와서 사람들 평가를 봤는데 내가 예상했던 것과 너무 달라서 악플 알바가 동원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10점 만점으로 치면, 나는 이 영화에 7.5점을 줄 수 있다. 후하게 하면 8점까지도 가능하다. 일단 가족을 타겟으로 한 상업 영화고 공룡 구경도 실컷 할 수 있고 무엇보다 기술적으로 절대 못 만든 영화가 아니니까 좋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까다로운 평론가나 스필버그의 쥬라기를 기대한 영화광이나 개연성에 집착하는 관객이라면 혹평하겠지만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영화 없으므로 나는 이 영화에 관대해지고 싶다. 그래서 이 글은 이 영화에 대한 변호가 될 것이다. 사람들이 문제 삼은 부분을 그건 이럴 수 있지 않으냐고 해명할 것이고 너무 두둔하면 객관성이 떨어지니까 아쉬운 점도 솔직하게 밝힐 것이다.


rebirth. 제목이 '부활' '거듭남'을 뜻하기 때문에 세계관 설정을 안 할 수가 없다. 인물과 배경이 소개되어야 공룡 찾으러 가는 사건이 관객에게 납득된다. 영화 속 이야기가 어떤 시대이고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는데 무턱대고 공룡을 날뛰게 할 순 없다. 초반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근데 초반에 공룡이 아예 안 나오는 것도 아니다. 오프닝에 디스토르투스 렉스가 어렴풋이 등장하고, 도로 위의 아파토사우루스가 교통 체증을 일으키고, 작은 크기의 프테라노돈이 새장에 갇혀 있다. 이들의 존재는 본격적으로 나올 공룡(모사사우루스, 티타노사우루스, 케찰코아틀루스)에 대한 기대감을 예열하고, 세계관 설명 때문에 대사를 무진장 늘어놓는 인물들 속에서 깨알 같은 흥미를 선사한다.

공룡보다 인간이 많이 나온다는 불만이 있는데 그건 스필버그의 <쥬라기 공원>도 마찬가지다. 만약 공룡이 인간보다 많이 나온다면 관객은 금세 질릴 것이고, 이 영화의 단점으로 꼽히는 각본의 단순함이 더 심해져 ― 왜냐하면 공룡은 인간처럼 사건(이야기)을 만들어 갈 수 없으니까 ― 본래보다 못한 작품이 될 것이다. '에이리언'에서 에이리언이 주야장천 나온다고 생각해보라. 또 그것을 주인공처럼 설정해 그것의 시점으로 인간 사냥을 하는 전개라면? '고립'과 '미지'의 공포를 훌륭하게 표현한 <에이리언>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영화는 인간이 주인공이고 공포의 대상인 에이리언이 조금 나왔기 때문에 무서울 수 있었다. 후속작인 <에이리언들(Aliens)>이 공포보다 액션 장르에 가까운 것은 꽤 의미심장한 일이다. 지금 소개하는 <쥬라기 월드>도 액션 영화니까 공룡이 많이 나와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할 수 있는데 내 말은 영화 스토리상 공룡이 주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에이리언들>에서도 개떼 같은 에이리언이 등장하지만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건 인간이었듯이. 그리고 모사사우루스 이후부터 공룡은 충분히 많이 나온다. 최근의 고증을 반영해 물속을 헤엄치는 스피노사우루스(<쥬라기 공원 3>에서는 육지에서 티라노사우루스를 이기는 스피노사우루스가 나온다.), 애완동물처럼 인간을 졸졸 쫓아다니는 아퀼롭스, 등장하자마자 뮤타돈에게 어처구니없게 사냥당하는 벨로시랩터, 시체 뜯어 먹다 목도리를 펼치고 위협하는 딜로포사우루스를 금방 도망치게 만드는 티라노사우루스(낮잠 자는 모습이 매우 귀엽고 강에서 수영 실력도 뽐낸다.), <쥬라기 공원>의 브라키오사우루스만큼 생명의 경이로움을 잘 드러내는 티타노사우루스, 거대 익룡 케찰코아틀루스. 이 밖에도 다종다양한 공룡들이 짧게라도 등장해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돈으로 위시되는 개인의 탐욕보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 중요하다는 주제를 위하여, 주요 인물 셋에게 양면적(각본이 단순하다는 것을 반박하기 위해 '입체적'이라 말할 수 있는) 성격이 부여된다. 우선 권선징악 테마의 선과 악을 히스패닉 가족의 루벤과 제약 회사의 대리인 마틴이 각각 대변한다. 루벤 가족은 서로를 아끼고 위급 상황에서도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모사사우루스에 의해 배가 뒤집혔을 때 루벤은 자기 딸(테레사)의 남자 친구인 제비어를 도와주고(물이 차오르는 선실에서 빠져나가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 선행에 보답하듯 제비어는 테레사가 바다에 빠졌을 때 그녀를 구하려고 배에서 뛰어내린다. 이러한 선한 업보의 과정은 던컨이 구조 신호 때문에 배를 돌려 루벤 가족을 구해주고 그가 마지막에 목숨 걸고 디스토르투스 렉스를 유인했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구조되는 것으로 반복된다. (생존자 일행은 조명탄 신호를 보고 보트(배)를 돌려 던컨을 구조한다.) 그래서 루벤 가족은 이 영화가 주제로서 긍정하는 공존과 연대를 상징하고 그렇기 때문에 한 명도 죽지 않는다. (상업 영화에서 죽음은 그 인물이 주제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반면에 영화가 부정하는 이기와 탐욕은 마틴이 상징하는데 그는 배에서 떨어질 위기의 테레사를 일부러 도와주지 않고 오직 돈이 되는 공룡 혈액 샘플에 집착하다가, 그리고 혼자 도망치다가 개죽음 당한다. 공존과 연대를 무시한 죗값을 치른 것이다. 앞서 양면적이라 말한 조라, 던컨, 헨리는 선의 루벤과 악의 마틴 사이에서 존재하다 ― 큰돈을 벌 목적으로 마틴을 따라 공룡 섬에 갔고(돈) 혈액 샘플을 제약 회사에 넘길지, 아니면 인류 전체와 공유할지 살짝 고민하지만 대체로 전자 쪽에 기울어 있었으므로(이기) 마틴과 같은 부류라 할 수 있고, 그 와중에 공룡으로부터 우여곡절을 겪으며 동료애의 중요성을 깨닫고(연대) 각자의 트라우마(조라와 던컨은 인간관계에 슬픈 사정을 가지고 있다.)를 치유해 가므로(이타적 행위를 통해) 루벤과 같은 부류라 할 수도 있다 ― 인젠이 남기고 떠난 연구 실험실에서 마지막 위험을 헤쳐 나가며 권선징악의 주제에 맞게 루벤 쪽으로 귀결한다. 마틴 일행과 루벤 가족이 연구 실험실에서 재회했을 때 갑자기 전력이 가동되며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이는 그들이 함께해야 함을 전언처럼 노래한다.


And the moon is the only light we'll see

(빛이라고는 달빛뿐일 때)

No, I won't be afraid

(난 두려워하지 않을 거예요)

Oh, I won't be afraid

(난 두려워하지 않을 거예요)

Just as long as you stand

(당신이 있어주는 한)

Stand by me

(내 곁에 있어주는 한)


혈액 샘플에 대한 고민도 결국 어떻게 되는가. 조라는 섬을 떠나는 보트에서 빈부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약을 얻을 수 있도록 혈액 샘플을 공유하자고(공존) 헨리에게 말한다. 돌로레스라는 이름을 얻어 이사벨라와 함께 떠나는 아퀼롭스, 바다 위로 헤엄치며 보트의 인간들과 함께하는 돌고래들. 이들은 자연의 모든 생명이 공생하는 이상적 결말을 장식하고, 할리우드 가족 영화가 그렇듯이 이 영화도 착하게(?) 막을 내린다.

그러니까 루벤 가족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은, 그들이 주제 구성의 한 축(공존과 연대를 상징하는 착한 세력)을 담당한다는 것으로 답이 가능하다. 조라, 던컨, 헨리의 일행만 존재했다면 그들을 선(반대로 악은 마틴)으로 이끄는 동력이 부족해 각본이 지금보다 더 뻔해졌을 것이다. 명심하자. 조라, 던컨, 헨리는 돈을 꽤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마틴과 원래 계약했던 것을 어기고 조라와 던컨이 미리 말을 맞춰 보수를 2배 올린 것을 생각해보라. 돈의 화신 마틴이 죽음의 과보를 받는다고 해서 정신 차리고 가치관을 바꿀 그들이 아니다. 그리고 후반의 연구 실험실에서 루벤 가족과 마틴 일당이 재회하는 것은, 오웬-클레어-메이지의 신세력과 앨런-엘리-이안의 구세력이 만나 힘을 합치는 <도미니언>(Jurassic World: Dominion)에 대한 오마주다.


<데스티네이션>에 버금가는, 스니커즈 봉지로 인해 잠금 시스템에 오류가 생겨 디스토르투스 렉스가 밖으로 나오게 되는 황당한 사건이 발생한다. 최첨단 연구소에서 쓰레기 하나로 보안에 문제가 생긴다? 억지스러운 설정 같지만 쥬라기 시리즈의 세계관으로 보면 납득과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첫 번째 작품인 <쥬라기 공원>에서 이안 말콤 박사는 혼돈 이론에 대해 설명한다. 북경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센트럴 파크에 비를 내리게 한다. 그는 여자 손 한번 잡아볼 목적으로 엘리의 손등에 물방울을 떨어뜨려 물이 흐르는 결과가 매번 다르다는 것을 보인다. 자연의 미세한 조건들이 항시 변하기 때문에 인간은 과학으로 예측·통제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주장.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서와 패턴을 찾을 수 있다는 게 진짜 혼돈 이론이지만.) 작은 변화가 큰 결과를 낳는다. 스니커즈 초콜릿이 디스토르투스 렉스를 불러온다. 똑똑한 과학자들로 이뤄진 최첨단 연구실도 무심코 버려진 봉지 하나가 그런 재앙을 일으킬 줄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왜 스니커즈냐 하면 <쥬라기 공원>에서 스파이 짓을 하는 데니스 네드리가 면도 크림으로 위장된 냉각통에 공룡 배아를 훔쳐 담기 때문이다. 그 면도 크림이 'Barbasol'이고 빨간색, 파란색, 흰색의 디자인으로 되어 있다. 스니커즈 상표도 동일한 색으로 구성돼 있음.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Barbasol 크림 통으로 데니스가 배아를 훔치고 공원 시스템의 전원을 꺼 담장 안에 갇혀 있던 공룡들이 풀려난다. 역시 별거 아닌 것 같은 스니커즈 봉지가 잠금 시스템에 문제를 일으켜 디스토르투스 렉스가 밖으로 나오게 된다.)


쥬라기 시리즈의 백미는 마지막 공룡 간의 싸움이다. 이게 없으면 쥬라기 영화라 할 수 없지. 근데 이번 영화에서는 마지막 결투가 없다. 새로운 빌런인 디스토르투스 렉스가 헬기를 물고 등장하지만(<도미니언>에서 기가노토사우루스가 불타는 메뚜기를 집어삼킨 것의 오마주) 괴상한 모양새만 눈에 띌 뿐 공룡다운 야생성과 공격성은 보여주지 않는다. <쥬라기 공원>에서 티라노사우루스가 벨로시랩터를 물리쳤던 것처럼 뮤타돈이라도 몇 마리 잡아먹었다면 흥미로웠을 텐데 같은 유전자 조작 공룡이라서 그런지 서로 부딪히지 않는다. <쥬라기 공원 3>의 스피노사우루스와 티라노사우루스의 대결, <쥬라기 월드>의 인도미누스 렉스와 티라노사우루스의 대결, <폴른 킹덤>의 인도랩터와 벨로시랩터의 대결, <도미니언>의 기가노토사우루스와 티라노사우루스의 대결. 관객은 마지막에 그런 걸 기대했는데, 그래서 낮잠 자다 루벤 가족을 쫓은 티라노사우루스가 마지막에 나타나 디스토르투스 렉스와 한판 벌일 줄 알았는데 녀석은 그때 낮잠 자다 일어나는 게 처음이자 마지막 출연이고 에이리언을 닮은 유전자 조작 공룡은 던컨의 조명탄만 졸졸 쫓아간다. 그렇다 하더라도 던컨과 추격전을 벌이거나 죽일 만큼의 공격을 시도했다면 좋게 봐줄 수 있을 텐데 영화는 그 둘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지 않고 그냥 던컨이 살아 돌아오는 것으로 끝을 낸다. 참 쥬라기 영화답지 않은 결말이라 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이 있지만 만족스러운 점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영화관에서 팔짱 끼고 도도한 표정으로 스토리를 비판하거나 개연성을 지적한 관객은 없었을 거라 본다. 영화 끝나고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까 별로 맘에 안 들었던 거지 영화관에서 보고 있을 때는 모두 즐겁게 감상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영화는 절대 못 만든 게 아니다. 기존의 쥬라기 팬들이 실망할 부분이 있는 거지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높다. 혹평이 주류인데 너무 그것만 믿지 말고 직접 가서 한번 보시라. 돈이 아깝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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