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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검은 배경 속 하얀 화면 하나

꿈에서 깨어나 쓴 글

10살이었나. 11살이었나. 크게 다친 적이 있다.


누군가의 실수로, 혹은 고의로 찰나의 시간 동안 나는 띄워지고 부딪혔다. 정신이 들었을 때 내 망막 속 기억엔 쭉 뻗은 채로 흔들리던 두 다리, 그리고 종이인간들처럼 긴 지평선을 이루고 있던 아이들의 그림자가 알알히 맺혔다.


급하게 달려온 부모님은 떨리는 손으로 내 손을 잡아주었고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눈과 눈 사이가 찢어져 뼈가 보일 정도로 깊었던 상처를 꿰매고자 의사는 나의 입에 마취호스를 연결했고 어머니의 젖을 먹는 아이처럼 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세 모금째였나..? 입체로 이루어졌던 나의 세상은 평면의 세계로 접어들었고 검은 배경 위 작은 화면 위로 익숙한 얼굴들이 떠올랐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의 크고 작은 얼굴들에게 소리치고 울부짖었다. 나 여기 있다고. 나 두렵다고.


얼굴들은 같은 말을 반복했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나는 평면의 세계에서, 그들은 입체의 세계에서 서로 끊임없이 메아리쳤다.


시간이 흘러 상처의 흉터는 만조 때의 모래알처럼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그때의 기억만큼은 더욱더 선명해진다.


밤이면 밤마다 얼굴들이 떠오른다.


검은 배경 속 하얀 화면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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