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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ine 육은주 Oct 04. 2022

시간의 더께

한류 역사성 -2

지금껏 미국 문화와 서구의 혁신정신의 비교우위에 대해서만 얘기한 것 같은데, 우리에게도 미국 문화에 대항해서 비교우위를 갖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우리의 오랜 역사, 그로 인해 파생된 우리 문화와 가치의 역사성이다. 이것은 누구나 미국을 방문해보면 미국 문화에 부족한 역사성, 필자가 '시간의 더께'라 표현한 것의 부재를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다. 

필자가 미국 대학에서 연수하고 있을 당시, 저널리스즘적 글쓰기 수업을 들었다. 필자가 한국에서는 그래도 글쓰기로 밥벌어먹고 살았는데, 미국식 저널리즘의 엄정함과 자료를 챙기는 철저함, 기자들의 철저한 직업정신과 직업 윤리에 대해서는 배울 점이 있었다. 수업 진행 방식은 매주 한 사람씩  자신이 쓴 글을 수업 참가자들과 돌려 읽고 그것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차례가 돌아왔을 때, 필자는 미국 여행과 체류 당시의 주관적인 인상을 바탕삼아 미국 역사와 문화의 부족한 점, 문제점을 나름 신랄하게 비판하는 짧은 글을 써냈다. 영어로 문화비평 글을 써 볼 기회도 없었던 터고, 명문대 학생들, 영어권 학생들, 준영어권 학생들의 눈높이를 감당할 수준 높은 영어 글쓰기에도 딱히 자신도 없었던 터라 조심스럽게 제출했는데, 웬걸, 필자 글에 공감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필자 글의 소재는 미국 문화에 부족한 시간의 더께에 관해서였다. 우리나라와 같이 오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구대륙의 사람이 보기에, '미국은 너무나 산뜻하기만 하고, 너무나 아름답기만 한, '트루만 쇼'의 리얼리티 세트장같고, '슈렉2'의 프린스 차밍이 다스리는 '겁나먼 왕국 (farfaraway kingdom)'같은, 마치 국가 전체가 거대한 디즈니랜드같다'라고 '지극히 주관적으로' 썼다.

미국에서는 몇천년 역사 속에서 단련되고 익숙해진 동아시아 사람에게 본능적으로 낯익었던 꼬질꼬질한 생활과 시간의 자취, 역사의 지층이 보이지 않았다. 역사와 생활의 꼬질함과 비루함이 과학적으로 멸균된 그런 무균의 상태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미국 공공 장소 어디에도 그 인위적인, 소독과 방향 목적의 '미국 냄새'가 떠돌았다. 그런 부족한 시간 때문에 젊고 강력한 나라로서, 미국에서는 철없는 일들, 경솔한 일들이 사회적 인종적으로 특히 취약계층 즉 어린이, 청소년에게 좋지 않은 방향으로 벌어진다는 요지의 글이었다. 노르웨이에서 온 남학생, 멕시코에서 온 학생 등 미국 외의 나라 학생들은 미국에 대한 나의 인상 비평에 자신들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면서 공감을 표했고, 미국 학생들도 미국의 사회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공감을 표했다. 필자로서는 기대치 못했던 긍정적 반응이었다. 


'오래되고 새로운 피'의 수혈


미국은 철없는 틴에이저에서 청년기로 넘어가고 있는 인간으로 치면, 아직도 젊고 '철없는 나라'이다. 자유로운 가치와 법제 하에 총기문제, 마약문제 등의 실질적 위협에 놓여있음에도 그것을 방기하고 있고, 국제문제에 있어서도 큰 가치를 지키기 위해 직접 참여하여 피를 흘리던 순수의 계절을 지나 이제는 자신들의 이익에만 따라 군사개입과 후퇴를 결정하고 경제 실책은 금융과 기축통화의 힘으로 조정하는 손쉬운 방법을 택하고 있다. 

이런 철없는 짓들에 띠끔하게 지적을 해줄 수 있는 나라는 그 전에는 영국이었는데, 이제는 그 역할을 우리가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할 수 있다. 물론 우리가 갖고 있는 문화적인 강점, 문화적인 방법 하에서, 우리 문화가 우위를 가지고 있는 역사성이란 밸류 하에서 말이다. 

미국은 그 부족한 역사성을 문화적으로 주로 '형님 나라' 영국을 통해서 수혈해왔는데, 이제는 영국보다 한층 다르고, 새롭고, 더 오래된, 그들이 늘 목말라 했던 '신비한 동양문화'의 수혈처가 생겼다. 그것이 바로 '오래되고도 새로운' 이율배반적인 가치의 나라, 신구 가치 충돌의 나라, 한국, 대한민국인 것이다. 

우리는 두가지 관점에서 당분간은 미국과 문화적인 공조를 더욱 공고히 해 나갈 필요가 있다. 

첫째, 미국과 한국의 문화적 가치는 상당히 상호보완적이다. 문화 특성을 단순 비교하자면, 미국이 차갑고 이성적 합리적이라면 한국은 뜨겁고 감성적이고, 인간적이다. 미국인들이 오징어게임에 특히 열광한 것은 그들 눈에 익숙하고 인기있는 서바이벌 게임 장르의 형태를 띠면서도 그 안에 자기들이 담지 않았고, 담지 못했던 계급과 무한경쟁이라는 현대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 게임의 충격적이고 미학적인 즐거움, 그러면서도 따뜻한 휴머니즘, 절절한 인간미가 절제된 형태로 흘렀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의 장점은 외부의 다양한 가치를 수용할 수 있는 폭이 상당히 넓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비판에는 기꺼이 귀를 기울이고 즉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시정해나가는 포용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미국 문화와의 접촉을 통해 우리 문화의 오랜 역사성 속에 내재한 봉건적이고 비합리적인 잔재를 현대적 재해석을 통해, 합리화시켜나가고, 정반합의 변증법적 방향으로 혼합해 나가고 있고, 미국의 글로벌 콘텐츠 유통망에 올라타 전세계에 우리의 존재감을 어필해 나가고 있다.

두번째는 우리가 미국에게 중국에 대한 통찰과 경험을 나누어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굉장히 똑똑하고 힘쎈 나라지만, 아직 젊은 나라로서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중국이란 나라에 대해서 매우 낭만적인 시선을 아직도 많이 가지고 있다. 거기에 대해서는 우리 한국인들, 즉 5천년 동안 중국 바로 옆에서 부대끼며, 그들의 압도적인 머릿 수에도 동화되지 않고, 자아와 역사와 전통을 지켜온 우리가 한 수 가르쳐줄 수 있다. 우리 민족의 근성, 강한 적에도 굽히지 않고 지지 않는 본능적 저력,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다. 북한조차도 중국에 친근한 척 하지만 역사 문제나 민족적 자존심, 경제 예속 문제에 대해서는 절대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이 상호 영향을 활발히 주고받는 것이 서로에게도 큰 도움이고, 서로의 혁신적인 가치와 혁신적인 방법을 공유하면서 조화와 균형을 잡아나가는 것(balancing)은 세계사적, 문명사적으로도 매우 바람직한 협업이라고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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