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1 국제관계적 관점에서 본 한류
새로운 지정학의 등장
한반도에 살아오면서, 우리는 북한의 끊임없는 위협을 포함, 세계4강 초강대국 사이에 낀 '지정학적 리스크'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으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 지정학의 개념은 현대, 특히 21세기 들어서는 새롭게 달라지고 다층 다변화되고 있다. 필자는 그것을 3 circle 지정학- 세 개의 동심원이 겹치는 PPT장을 생각하면 될 것-이라 부르고 싶다. 첫째 서클은 기존의 지정학 개념, 지리적 영향이 미치는 정치적 측면만 강조된 지리적 영토의 지정학(地政學, geopolitics), 두번째 서클은 지리적 영향의 경제적 측면이 보다 강조되고 확장된 경제 영토의 지경학(地經濟學, geoeconomics) 마지막으로 이 두개를 가장 넓고 얇게 싸안고 있지만, 21세기들어 가장 강조되는 마음의 영토, 즉 정서적 측면이 강조된 또다른 지정학(地情學-한자 발음이 같으므로 구별하기 위해 alternative 지정학 또는 geocultural context)이다.
사회적, 국제적 문화 통합의 가능성이 가장 큰 것이 바로 마지막의 새로운 지정학, 지오 컬추럴 파워Geo cultural power이다. Geo cultural 은 기존의 지정학 Geo politics, 지경학 geoeconomics에 이어 새롭게 등장하게 된 중요 개념으로, 마음의 영토전쟁, 매력 비즈니스, 마인드 비지니스(Mind business)를 의미한다. 이미 우리는 한류라는 문화적 영향력의 형태로 급속도로 문화의 영토, 매력의 영토, 마음의 영토를 넓혀가고 있다. 대한민국은 뜻하지 않았으나,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부터 아시아를 중심으로 매력의 영토, 마음의 영토가 넓어져 나갔고, 이제는 무서운 기세로 그 영토를 세계로 확장해 나가고 있으며, 앞으로 그것을 여하히 활용, 발전시켜나가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은 향후 국제리더십과 미래 경영에 크나큰 이점이 될 무한한 무형의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위 세 가지 지정학 지경학적 분석틀을 우리 역사에 대입해 살펴보자면, 조선의 지정학적 고려가 전혀없는 국가 경영 실패와, 김영삼 정권의 섣부른 세계화가 부른 외환위기 사태, 그리고 현재 우리 세대가 한류의 융성으로 경험하고 있는 또다른 지정학적 성공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지정학적 분석으로 보면 조선의 국가 경영은 정해진 실패였고, 지경학적인 분석으로 보아 김영삼 정권의 대한민국은 설익은 세계화로 실패를 경험했고, 또다른 21세기 지정학 즉, Geocultural 관점에서야 대한민국은 성공과 영광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조선의 잘못된 선택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배워오길 우리는 기마민족의 후손이다. 만주벌판을 말달리던 호방한 유목기마민족이 한반도 일원에 정착하여 문화를 일으켰다라고 들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지정학적인 위치에 맞추어 우리 자신을 자리매김하는데에 큰 잘못을 저질렀다.
문명간 불평등을 환경적 차이로 분석해 전 세계 500만부 넘게 팔려나간 '총균쇠'의 저자로 1998년 퓰리처 상을 받은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몇해전, 한국 방문 후 가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떤 국가는 부유하고, 어떤 국가는 가난한가를 연구해온 결과, 지리적 요인이 컸다고 했다.
"대체로 온대 국가의 반도국이 열대국가나 내륙국가보다 부유합니다. ...문명사회 이후 제도라는 변수를 무시할 수 없더군요. 한국과 북한은 같은 나라지만 분단 이후 경제 발전에서 극적인 차이를 드러냈어요. 그건 다른 제도 때문이었어요."라고 그는 말한다.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말하는 반도국은 문명이전의 온대의 반도 국가들 그리스 로마 반도, 고대 페르시아제국이 자리잡던 아라비아반도 등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에 자리잡고 있는 우리는 왜 역사적으로 그들만큼 번영하지 못했나. 온대의 반도국가라는 조건을 갖고 있는데 말이다.
이 프레임에 넣으면 해석이 잘 안 되는 곳이 대륙과 해양세력이 충돌하는 미묘한 지점에 있는 반도의 나라들 오늘날의 발칸, 중동, 조선시대의 한반도이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인터뷰에 답이 있다. 제도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제도를 만들어내는 기반인 가치체계 때문이다. 지리적 조건에 더해 어떤 가치와 제도로 어떤 실력으로 어떻게 경영하느냐가 국가의 명운을 가른다.
우리나라는 국사 및 지리 시간에 지겹에 들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 국가"이면서도 조선시대 이후 바다를 버렸다. 우리나라는 반도국가이므로 지정학적인 이점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최근 대한민국의 경제적 성공은 반도국가의 이점이라기보다는 분단으로 섬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었고, 바다- 즉 무역, 수출을 선택할 수 밖에 없고, 미국에 의해 강제 해양국가로 편입되어 해양성을 새롭게 이식받은 덕이 크다.
그렇다. 대한민국 직전 우리들 아버지 조선의 치명적인 실패는 지정학적인 장점을 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번영의 우위 조건인 반도에 자리잡고 있으면서도 그 장점, 대륙과 해양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그 중간자로 교역의 이점을 누릴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포기 또는 무시, 천대했다는 것! 고구려 백제 신라는 물론 고려시대까지도 한반도는 서역, 아라비아, 유럽까지 이르는 실크로드를 통한 육지교역은 물론, 중국, 일본을 넘어 동남아, 멀리 인도까지 바다를 통한 교류에 활발히 나섰다. 그랬을 때는 나라가 부강하고 번영을 했고 진취적인 기상이 넘쳤다.
그런데, 이것을 경제적 논리가 아니라 정치논리로 가로막은 체제가 바로 조선시대였다. 농자천하지대본, 철저한 농업기반사회, 이 잘못된 제도가 500년이란 긴 세월, 변화와 발전을 가로막은 것이다.
한국의 지형과 날씨, 기후에 맞지 않는 농업을 억지 기반 사업으로, 더구나 국가 경영의 최소한의 기본인 도로, 항만, 건설 등의 인프라도 전혀 정비하지 않았으므로 조선 초기의 국가 셋업과 정비 이후에는 발전은 커녕 서서히 퇴보의 길을 걸은 것이다.
잃어버린 바다
지경학적 분석으로도 조선이 바다를 버리고 상업을 버린 댓가는 참혹했다. 고려말 조선초까지 선진문화국가를 자처했던 국가가 서양에 뒤처진 것은 물론, 역사적으로 항상 한수 아래로 보았던 일본에게 강점 상태까지 되었다는 것은 처참한 실패임에 분명하다.
필자는 우리나라 여러 부문 중에서도 관심을 받아야 하는데도 받지 못하는 분야가 해양 관련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역사적 연유가 깊다. 우리는 이상하리만치 바다를 천시해왔는데. 그것은 내륙 대륙국가인 중국의 영향이 크다고 하겠다. 중국은 대륙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바다 영토에 대한 니즈(needs)가 크지 않았다. 실례로 명나라때 귀화한 서역인인 정화가 이끄는 명나라 함대가 중동,아프리카는 물론 당시 알려지지 않았던 아메리카대륙까지도 컬럼버스보다 먼저 상륙했다는 증거가 나오면서 이를 바탕으로 미 대륙 발견이 다시 씌여져야 한다는 사학계의 도발적 주장이 있을 정도로 시대를 앞선 대항해를 벌였지만, 이는 그저 중국 제일을 과시하는 일회성 이벤트로 끝내고 말았다.
반면 섬나라인 일본은 철저하게 바다가 영토요, 자원이란 입장에서 해양국가를 추구해왔다. 이같은 포지션은 동양에서는 매우 특이한 경우인데, 일본이 근대화에 일찍 성공한것은 그들이 해양세력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이후 한결같은 '중국 바라기'였기 때문에 반도국가면서도 바다를 활용하지 않았다. 신라시대 바다를 장악하고 청해진을 경영한 장보고 등이 있지만 그후 우리의 포지션은 해양세력이기보다는 내륙국가에 가까웠다.
역사적으로 강성한 나라들은 해양국가였다. 고대 아테네가 그렇고, 네델란드,스페인,영국,미국 모두 강력한 해양세력이다. 그러나 바다를 입지로 하고 있으면서도 바다를 포기한 우리는 쇠퇴의 길을 걸을수밖에 없었다. 삼국시대부터도 늘 왜구의 침탈로 골머리를 앓으면서도 해군력을 키우지 않았고, 이순신 장군도 함경도 지방을 지키던 육군이지, 본래 수군 출신이 아니다. 또 우리는 이순신 장군이라고 부르지, 해군의 장군을 의미하는 제독이라고 부르지 않는데. 이순신을 제독이라 부르며 극한의 존경을 바친 이는 일본의 근대화 시기 일본제국 해군 제독들이었다.
바다의 중요성을 일본인만큼 잘 알고 있는 민족도 없을 것이다. 독도에 대한 영토 문제제기를 가장 먼저 한 사람이 일본 정부가 아니라 독도에서 강치잡이를 하겠다고 허가를 구하던 일개 일본 어부였다는 사실에서 짐작하듯, 바다 영토에 대해서는 결코 물러서지 않는 일본인들이다. 그래서 지도를 잘 살펴보면 일본의 해양 영토가 어마어마하게 넓으며, 하와이는 물론 호주까지도 일본 경제의 실질적 영향력이 크게 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의 해양 무시는 지금도 이어진다. 안타까운 세월호 사고는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2014년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후진적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다. 세월호가 가라앉으면서 떠오른 문제들, 선원들의 목숨 경시, 관료들의 의전 중시, 감독기관과 집행기관간 유착, 해양 무시 등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전통이다.
사고 배후를 보면서 이런 류의 해양참사는 언제가 되었든 반드시 일어날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양 종사자들의 낮은 적업의식과 의식수준, 감독 행정기관의 무능, 해운업계의 고질적 비리와 나쁜 관행 등이 구조적으로 참사의 싹을 틔우고 있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세월호 사고 때 대한민국이 가라앉고 있다는 (근거는 없지만 지극히 내 개인적인) 인상을 받았다. "대한민국은 가라앉아서는 안 된다. 가라앉는 (Sinking)세월호와 함께 old Korea를 수장시켜야 한다. 고통스런 세례의식 후 새로운 Korea로 거듭나야 한다." 이런 마음으로, 잃어버린 해양성을 회복하는 것이 우리의 미래라고 생각한 것이 이 책을 시작하게 된 직접적 계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책의 제목을, 'Thinking sinking Korea', 한글 제목으로는 앞글자만 줄여서 영문 제목과는 역설적으로 대한민국이 '씽씽 잘 나갔으면 하는' 마음에서 '씽씽 코리아'로 정한 것이다.
필자는 세월호가 바다와 해양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고 해양산업 전반이 업그레이드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랐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해경해체와 부활, 한진해운 사태, 대우조선 부실을 안고 있는 조선산업, 최근의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들의 파업사태까지 우리가 받아든 바다 영토 경영 성적표는 그닥 좋지는 못하다.
둘째는 바다와 관련한 신화 만들기와 그것의 커뮤니케이션이다. 당시 세월호 참사를 보며 타이타닉 호와 비교들을 했는데, 필자는 타이타닉호 침몰시에 선장이 선원들과 승객들을 독려하며 했다는 '영국인답게 행동하라'는 말이 그닥 신뢰가 가지 않는다. 각색되거나 만들어진듯한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설령 그런 말을 했다 쳐도 영화처럼 멋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도 우왕좌왕했을것이고 실제로 '여자와 어린이 노약자 우선'이라는 구명보트 원칙을 어기고 완력으로 가로챈 신사들도 다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영국인들은 위기상황을 극복한 영웅적 신화를 그럴듯하게 만들고, 이를 찬양하고, 전승한다. 그래야 다음에도 이를 롤 모델(role model)로 해서 또다른 영웅이 탄생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영웅'이란 말이 너무 미국적, 또는 서양적 감성이라 좋아하지는 않는데, 절대절명의 위기상황에서 더 빛을 발하는 이런 '의인들'의 인간의 품격과 '의(義)가치에 우리는 아낌없이 찬양을 바쳐야했다. 더욱이 그것이 우리가 소홀히 하던 해양 분야임에야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슬픔을 딛고, 힘과 뜻을 모아 뼈아프게 반성하고, 잘못을 차근하면서도 철저히 고쳐나갈때, 그래야 아무 잘못없는 우리 어린 영혼들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사이버 지평의 확대와 문화영토의 확장
20세기 이후 지정학 뿐만 아니라 지경학의 조건도 확장되었다. 보이지 않는 인터넷상 사이버 지평까지도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지정학이란 것이 한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 절대적인 환경조건이었으나 현재는 지정학의 중요성이 줄어들지는 않았으나 절대적인 운명은 아닌 시대가 되고 있다. 왜냐하면 사이버 세상이 진짜 세상에 못지 않은 크기로 전세계를 전파로 뒤덮고 연결한 결과, 지구가 좁아지면서 전통적인 지정학은 조금씩 그 차지하는 의미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를 대신하여 지경학, 경제 영토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땅과 인구 등등 물리적인 지정학적 나라 크기에 더해 경제규모, 산업발전 인프라, 특허 및 지식재산권, 기술개발 투자비 등 지적 능력의 총합 등을 포함하는 지경학적 나라 크기는 점점 그 비중이 커지고 있다.
김영삼 정권의 실패는 1990년대 초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된 국제상황과 그 동안의 가파른 경제 영토 성장에 취해 우리의 내재적 역량에 비해 너무 빠른 속도로 글로벌화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90년대초 당시 한국화가로는 드물게 뉴욕으로 진출, 맨해튼의 화실겸 아파트에서 작업하고 있던 화가 황주리 씨의 증언에 따르면, 한국인들이 갑자기 너무나 많이 너무나 맹렬한 속도로 미국, 특히 뉴욕으로 들어와 주변 미국 친구들이 ‘너희 나라 무슨 일 있니? 전쟁났니? 아니면 왜 이렇게 갑자기 많이 와?’라고 물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외국 언론들이 '한국은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뜨렸다'고 거듭 우려를 표해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김영삼의 세계화와, 보호무역주의의 빗장풀기는 소규모 개방경제로의 가속화 , 위험한 상황을 만들어놓았고, 그 결과 우리가 IMF사태라고 부르는 아시안 외환위기를 정통으로 맞닥뜨렸던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는 그 위험한 파고를 또다른 높은 물결, 즉 정보화를 재빨리 탐으로써 넘었고, 지경학을 넘어 이제는 또다른 지정학 (지역 및 정서를 다루는 매력 비즈니스, 문화 비지니스) 단계로 성공적으로 접어들었다. 한류라는 문화상품과 트렌드의 성공은 그 성공의 증거이자 결과물이다. 한류의 확장세에서 보듯 현재 우리의 문화영토는 좁지 않다. 아니 우리의 실질 경제 영토보다 많이 넓다고도 볼 수 있다. 그것에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세계를 경영하는 식견과 거시적 전략, 표준을 만들어내는 능력에서 주변 경쟁국에 뒤진다는 점이다.
김대중 정권하에서 닷컴붐이 크게 일어났을 2000년대 초반 무렵, 그 시대를 지난 세대들은 싸이월드 Cyworld를 기억할 것이다. 오늘날의 facebook 을 크게 앞서간 이 인맥기반 사회관계망 서비스는 '현금화하지 못한 도토리의 추억'으로 X세대들의 아픈 손가락으로 남아 있는데, 이처럼 싸이월드가 시대를 앞서갔음에도 미국에 뒤진 오늘날의 결과를 맞고 만 것은, 아이디어는 앞섰지만, 그 후 미국과의 그 차이를 가른 결정적 실력차, 즉 지경학에서 또다른 지정학 geo culture로 넘어가는 중요한 지점에서 세계를 경영하는 능력과 표준을 만들어내는 능력에서 뒤졌기 - 냉정하게는 미약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