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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ine 육은주 Sep 25. 2022

한류 가치 커뮤니케이션

III-8 한류 활용 전략 

우리의 문화적인 잠재력이 폭발되어 나온 한류라는 상품과 문화력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첫째  한류의 전략적 무기화이다. 한류는 북한과의 통일에 무기로 쓰일 수 있다. 여기에는 미국의 대중국 문화 전략을 벤치 마킹할 수 있다

둘쨰, 한류를 한국적 가치, 밸류의 국제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 우선 국내적으로는 한류 속에 내재해 있는 우리 문화의 근본 가치를 명확하게 가려내는 작업을 한 후 그를 활발히 커뮤니케이션 하여 세대간 계층간 동서간 남녀간 반목으로 갈갈이 찢어발겨진 우리 내부 구성원들을 하나의 큰 가치 아래 통합하는데 이바지한다. 그리고 한류 속에 세계 속에 내세울 가치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가치의 성공 요소를 분석한 후 이를 현대화하며, 이를 세계에 지속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한다. 

필자는 이 작업을 '가치 커뮤니케이션(value communication)'이라고 부르고 싶다. 

셋째, 한류 가치 커뮤니케이션이 국가 전략 아젠다에 들어가야 한다. 이제는 한류 문화 상품 생산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국제 경영 시각과 실행력, 실행 인력을 전략적으로 키우고 우리도 한류라는 어마어마한 자원을 활용해서 국제 경영, 세계 경영을 어떻게 할 것인지, 전략을 세우고 실천해야 한다.      

한류가 어마어마한 전략 무기라는 것을 우리가 자각이라도 해야 전략적 정치적 활용방안이 나온다. 그저 "우리 보이그룹, 걸그룹이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네, 우리 영화감독이 아카데미 상을 받고, 우리 영화배우가 에미상을 받았네, 국뽕 차오르네"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높은 문화력으로 타국을 감탄시키고, 그들에게 문화적 리더십 뿐만 아니라 종내에는 정치 경제적 리더십까지 가진다는 것은 군사적 힘, 무력적 시위로 굴복시키기보다 힘들고 오래 걸리지만 결국 그렇게 될 것이다. 


한류를 어떻게 국제리더십으로 연결시킬 것인가 


한류에는 너무나 어머어마한 함의가 담겨있고, 그 일이 우리 손에서 '롸잇 나우' 만들어지고 있는데도, 이것의 함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안타깝게도 우리 자신도, 일본도 아니고, 서구 그 어느 나라도 아니고 중국이라는 점이다. 역사를 따져보면 한류라는 용어도 중국 언론에 의해 생성되었고, 중국은 한류의 가치와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공산당 정부가 사드 배치 핑계로 이후 한한령을 발동하고, 철저히 한국 문화 유입을 막고 있는 것이다. 

한류가 중국 입장에서 위험한 것은 한류가 중국은 물론, 북한까지 한큐에 무너뜨릴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 핵 폭탄급 문화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잠재력을 거의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우리 문화 컨텐츠를 유입할 수 있는 공식적인 거의 유일한 창구가 중국과의 무역을 통한 장마당에서의 한국 컨텐츠 불법 유통인데, 중국이 한류의 체제전복 위험성을 알고 철저히 막고 있기 때문에 광범위한 북한내 한류 확산 및 심리전 등은 불가능한 상태이다. 

가치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만 국한하여 보면, 분단 이후 수십년 동안 우리는 북한에 대해 실패 중이다. 북한은 '주체, 우리 민족끼리'와 '외세배격'- 자신들은 미제국주의와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라는 그들의 가치를 얼핏 젊은 피를 끓게 하는 논리로 무장한 후 한결같이 흔들림 없게 전개해 오고 있다. 북한은 이 논리의 진실성과는 별개로 이런 이념적 가치를 우리보다 선점하고, 이를 교묘하게 이용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 내부에 이념 가치 투쟁과 분열을 끊임없이 조장해왔고, 북한의 논리가 무비판적으로 우리나라 민주화세력과 학생운동권에 침투하여 그들의 순수함을 미혹시키고 변질, 퇴행시켜왔다. 그 결과 그나마 북한과 체제 대결, 사상 대결, 가치 커뮤니케이션 대결을 벌였던 박정희 대통령 사후에는 북한과의 가치 커뮤니케이션과 이념전에서 세계 10대 무역강국, 문화강대국으로 떠오르는 대한민국이 어이없게도 남북관계에서만은 줄곧 북한에 리드를 당해오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북한과의 가치 커뮤니케이션에서 '실패 중' 이라고 말한 이유는 아직 한류라는 카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대한민국의 한류를 바탕으로 한 한국의 호감도와 지지기반을 지속적으로 넓혀, 이 지지기반을 외교적, 전략적으로 잘 이용할 수 있다면, 우리의 문화력과 호감, 매력이 정치경제적 영향력, 국제 리더십으로도 확대될 수 있고, 중국과 그 뒤에 숨어 연명하고 있으면서 지금도 '남한 접수'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는 불량국가 북한을 강력하게 압박해 들어갈 수 있다. 

우리는 현재 한류를 문화산업적 측면, 국가 브랜드 가치 측면에서만 그 성과를 측정하고 그 미래 가능성을 이야기 하는데, 그게 다가 아니다. 국가 전략적 측면, 공작적 측면에서도 한류는 우리가 활용하기에 따라 무한한 전략자원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공작적 측면은 우리 보다도 공산주의 국가 중국이 명확히 이해하고 있다. 

한류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은 우리지만, 그것의 세계적 확산이 과연 우리만의 힘일까. 그것의 세계적인 확산에는 미국이 제공하는 콘텐츠 플랫폼 시장의 글로벌라이제이션과 그 어마어마한 확장세, 영미 언론의 힘이 있다. 

미국은 한류의 의미와 가능성, 쓰임새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고, 정치와 세계경영세력과 할리우드 연예산업이 암묵적인 합의 하에 그 의미를 확장하고, 명확한 의도 하에 한류 글로발라이제이션으로 정확하게 중국을 겨냥, 중국 고립 및 문화 우위 전략을 실행해 나가고 있다. 지금 한류를 세계경영적으로 200% 잘 활용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고, 그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은 중국이다. 

몇달 전 CNN 뉴스를 보다가 미국의 외교위원회와 미국 연예산업의 핵심 브레인 사이에 '회전문 인사(Revoling doors)-공직과 민간을 돌고도는 정부 인사 관행'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고 놀랐다. 미국 재계의 회전문 인사는 유명하지만 외교가에도 있는 줄은 몰랐는데, 재계보다 더 은밀하게 물밑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미국 외교가는 가업으로 대를 이어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이런 관행은 몇 세대 전부터 이어진 것일 수 있다. 우리도 이렇게 외교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연예산업 거물, 국제적 안목을 지닌 연예산업 인재, 인력을 충분히 발굴할 수 있고, 이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가치 커뮤니케이션으로 만들어진 나라


올바른 가치, 올바른 정신문화를 가진 자가 리더십을 갖는다.

흔히들 미국을 물질문명이라 비판하는데, 미국은 100% 이념에 바탕을 둔 나라다. 자유, 기회의 평등, 능력에 따른 자본 취득, 메리트시스템 인정이라는 철저한 이념에 바탕을 둔 '이데올로기 국가'다. 미국의 힘은 건국당시의 혁신적 이념에서 나온다. 미국은 '0 to 100"- 제로(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끝없이 확장, 혁신하여 100을 만들어내는- 기질을 바탕에 둔, 무서운 장점을 갖고 있는 나라이다. 아무것도 없던 땅에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 매우 혁신적인 나라이다. 동서고금에 미국같이 이념에 철저한 나라가 없으며, 만일 혹자가 미국의 물질문명을 문제삼는다면 이는 한면만 본 것이다. 미국 문화에 엄청난 소비경제( consumerism )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의 바탕 축에는 이런 견고한 건국 이념, 기반 이념이 있고, 그것이 국민들 사이에 아직도 견고히 작동하기 떄문에, 그렇기 때문에 국제 리더십이 생기고, 동맹과 따르는 나라들이 생기는 것이다. 

미국은 가치와 밸류를 담은 커뮤니케이션을 엄청나게 잘 하는 나라다, 대통령부터 일반 시민까지 '자유(liberty) '나 '기회에의 평등 -created equal"등 미국적인 가치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다. 독립선언서 등 나라의 근간이 되는 정신을 담은 문서가 죽은 문서가 아니라 미국인들의 생활과 의식을 항시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동양권에서는 싱가포르가 이런 밸류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한 바 있다. 서구문화에 대항하여 유교적 가부장적 리더십을 선언한 바 있는 이 나라는 어째됐건 서구문화에 동양문화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역할을 해주고 있다. 

필자는 싱가포르의 리콴유 수상이 주장했던 아시아적 가치, 유교적 가치관을 발전적으로 계승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낼 수 있는 토대와 자질을 갖춘 나라가 바로 우리 나라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려면 먼저 우리 내부의 문화적인 이념적인 가치를 통합해내야 하고, 유교 문화의 퇴행성을 극복하는 한편, 인류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좋은 가치는 발전적으로, 현대적인 옷을 입혀 문화 콘텐츠로 생산해내고, 세계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이전에 지금 한국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아젠다는 가치 통합이라고 생각한다. 차별과 분열을 극복한 사회통합의 아젠다 세팅과 메시지 발산이 매우 시급하다. 북한과의 경제적 통합이나 통일보다 우리 내부의 진보와 보수 등 정치적 갈등 뿐 아니라, 세대간의 갈등, 남녀간의 갈등, 계층 간의 갈등 등 찢어진 우리 내부 통합이 더 급하다. 그리고 이 과정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 바로 이 대중문화이다. 

문화의 한 특성이 바로 공감과 통합 능력, 우리의 정서를 환기시키는 능력이다.  가치있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콘텐츠가 등장할 때 우리도 경험하지 않는가, 우리가 공감하고 즐겨보는 드라마, 영화 등 콘텐츠가 피부색과 문화적 바탕 역사가 다른 나라 사람들도 감동시키는데, 우리 내부를 통합하지 못할 이유가 있는가. 

한때 문학과 비평이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하고, 사회 비평의 소금 역할을 하는 시기가 있었지만, 현재 문학의 사회적인 역할은 그 수명을 다하였고, 그 자리를  대중문화와 스타들이 대신하고  있는 시대다. 대중문화의 역할과 영향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커졌다. 이 문화적인 value를 어떻게 갈등 통합 방향으로 커뮤니케이션할 것인가를 계속 고민해야 한다.  


세월호 트라우마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가라앉던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아이를 셋 키워낸 엄마로서 그 부모들의 마음에 감정이 이입되어 매우 마음이 아팠다. 자식을 키워본 엄마들이라면 공감하리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저만큼 키워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공이 드는지, 얼마나 많은 날들의 정성이 필요한지, 그걸 알기에 부모로서 남의 자식도 나의 자식만큼 소중하기에 그 어린 목숨들이 안타깝고, 가여웠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감성적인 공감과는 별개로,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침몰 직후 이미 골든 타임을 놓쳤고, 그 생떼 같은 아이들은 이미 잃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밤에 가위 눌린 듯 마음이 무겁고,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나는 우왕좌왕 어수선한 대학 동창들의 SNS에 "타이타닉 호의 빙산 충돌 침몰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 속에서도 차분하게 대처한 영국인 선장과 선원들을 상기하며 이성적으로 대처하자, 이것은 그 동안의 대한민국 감성적, 시스템적 내부 모순이 누적되어 곪아터져 벌어진 상징적인 사건이다. 이런 일을 다시 겪지 않도록 차분하고 냉정하게 내적 외적 국가 시스템 개혁을 이루어가야 한다"는 요지의 글을 올렸다. 

그런데 나의 이런 이성적 바람과는 달리 그 다음부터 벌어지는 일은 온 대한민국이 이미 온몸으로 겪어내어 익히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이성보다는 극단의 광장정치와 극단적인 분열과 반대세력 척결의 광기로 점철된, 영원히 맴돌 것만 같은 '세월호에 발목 잡힌 세월'이었다. 

세월호 이후 벌어진 한국적 특수 상황에는 한국인의 밑바닥 정서에 흐르는 한(恨), 피해의식. 뛰어난 공감 능력, 그 중에서도 특히 불행에 뛰어나게 공감하는 능력이 여지없이 발휘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가운데, 이 감성적 국민성을 정치적으로 부추기고, 정치적으로 극대화하고, 정치 이익화한 집단이 있었다. 

우리는 세월호와 그 이후의 촛불 시위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잊곤 한다. 진정한 촛불의 의미는 변화와 혁신에 대한 국민들의 갈망, 의지였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한 정치세력들만의 독점적인 것이 아니다. 어느 특정 개인과 특정세력만이 국민들의 변화 혁신 욕구를 대표한다는 것은 오만이자 착각이다. 그것은 굳이 광화문 광장에 나가지 않았더라도 심지어 그와 반대되는 정견를 가진 사람들이라도 심정적으로는 갖고 있을, "이제까지와는 안 된다" "달라져야 한다"는 욕구이자 변화에의 갈망이었다. 

세월호는 감성이 아닌 이성으로 말하자면 많은 어린 생명이 한꺼번에 희생된 해양 교통사고이다. 그리고 그들을 눈뜨고도 뻔히 구하지 못한 판단체계와 위기관리체계의 미비, 시스템적 오류와 위에서 찍어누르기만하는 커뮤니케이션 관습과 문화적인 관습의 비극적 결과의 상징적 사례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세월호는 단순 교통사고가 아니다. 문명사적으로 보아 해양과 대륙의 전쟁, 정신 문명 전쟁의 편린, 가치전쟁, 조선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낡은 가치의 기한 만료와 상징적 침몰을 의미한다고 본다. 


진정한 트라우마 극복법


세월호 상처는 미국인들의 911 테러 트라우마와 비슷할 정도의 큰 상처였다. 그러나 우리는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정권을 잡는 것 이외에 이 국민적 상처를 상징적으로 치유하는 데는 무심하고 서툴렀다. 911 이후 미국인들의 행보를 보면 뚜렷하게 우리와 대비된다. 미국인들은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월드 트레이드 센터 자리, 그 금싸라기 땅에 성급하거나 서두르지 않고 10년에 걸쳐 차근차근 끊임없이 작업을 하여 거대한 사각형 모양의, 끊임없이 상처를 씻어내리는 듯한, 내부로 수렴하는 폭포 모양의 치유의 호수를 만들어 놓았다. 이 911 메모리얼 옆에는 오쿨루스(occulus) 라는 고래 뱃속 같기도 하고, 우주선 내부 같기도 한, 미래를 위한 비상을 상징하는 듯한 건물을 만들어놓았다. 

미국인들은 상징 커뮤니케이션에 매우 강하다. 수도 워싱턴은 도시 전체가 미국 독립정신과 건국 정신을 기리고 역대 위대한 대통령들의 사원( shrine) 과 호국영령들의 묘지 (알링턴 묘지) 등이 조화롭고 계산적으로 배치된 거대한 상징 기념물이다. 미국은 상징 커뮤니케이션으로 국민들을 하나로 결속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 군사적 응징도 철저하게 했다.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뀌고 부시에서 오바마, 트럼프로 대통령이 바뀌고, 행정부가 바뀌어도 군사작전을 일관성 있게 펼쳐 이 테러를 일으킨 집단의 수괴를 두 차례에 걸쳐 전세계에 생중계하다시피 참수 처형했다.

미국인들은 911 이후 하나로 단합했지만 우리는 세월호 이후 극심하게 분열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부추기고 이용하고 그리고 이것으로 정권을 잡은 '어떤 세력들'이 있다. 

근대사를 돌이켜볼때 우리 대한민국은 사람으로 치면 여간 팔자가 센 사람이 아니다. 역경지수( high adversity quotient)가 매우 높은 역경 생존자이다. 우리는 압축 성장만 한 것이 아니다. 압축적인 고통도 셀수없이 많이 겪었다. 대충만 꼽아봐도 일제강점, 6.25 전쟁과 분단, 5.16 군사혁명과 젊은이들의 피로 점철된 4.19혁명, 87년 서울의 봄을 불러온 민주화 운동,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등 부실 급속성장의 뒤안, IMF 외환위기, 김신조 등 청와대 공비 습격 사건,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아웅산 테러로 국가 초고위급 인재 대량 상실, 서해 상에서의 천안함 교전 등등 현대사 내내 끊이지 않은 북한의 각종 도발까지 이루 헤아릴 수도 없다. 그런데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 개개인 마음 속의 상처로만 희미하게 남았을 뿐 이 상처를 위무하는 상징적인 기념물 하나, 눈에 띄는 건조물 하나 흔치 않다. 

그 동안 트라우마라면 PTSD (외상후 증후군) 등 그 역기능에만 초점이 많이 맞추어져 있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역기능을 연구하면서 뜻밖의 사실을 알아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성장과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외상 후 성장(post traumatic growth’ 이라고 부르는, 놀랍고도 비상식적인 현상을 발견한 것이다. 미국 실제 아동 대상 연구에서 극한의 고통을 겪었던 698명의 아이들 중 1/3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경을 뚫고 건강하고 성공적인 생산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연구결과에서 우리 민족의 비밀이 하나 풀린다. 바로 5천년 동안 위기 속에 담금질되어 왔고, 그러면서도 굴하지 않고 온 국민이 똘똘 뭉쳐 위기를 이겨내고, 번영을 일구어낸 우리만의 근성의 비밀이... 


한류의 미래 변화


우리는 현재 한류의 경제적인 가치에만 몰입 그 정치 경제적 가치는 간과하고 있다. 이는 역사적인 경험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탓도 있다. 우리는 위대한 가치와 문화를 지니고 있었으나 그것을 우리 스스로 천대하고 천시한 결과 우리의 소중한 정신 가치와 문화를 이웃나라 중국, 일본에 빼앗겼다. 

뼈아픈 역사를 다시 상기하자면, 문화가 전쟁이고 문화상품이 전략적 무기라는 사실을 간과한 결과, 도자 기술을 일본에 빼앗겼고, 퇴계의 생활철학을 잃어버리고 빼앗겼으며, 현재는 중국의 치밀한 동북공정으로 고구려 백제 역사를, 김치공정, 한복공정 등으로 한류의 바탕이 되는 문화력을 빼앗길 지도 모를 잠재적 위기에 처해 있다.  

우리는 이런 역사에서 뼈아픈 교훈을 얻어 단순한 문화 생산 주체에서 문화 활용 전략 주체로의 변화를 꾀해야 한다. 큰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고, 인접국들과의 가치경쟁에서의 패배로 인해 이식되고 심화된 피해의식, 약소국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류가 성공한 것은 우리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 속에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인류 보편적인 가치 (universal value)가 있다는 증거이다. 문화는 또한 일방적으로 주입할 수는 없는 것이고, 수용자에 의해 받아들여지는 것이기 때문에 한류가 세계에 어필하는 것은 우리가 만든 드라마, 게임, 대중가요 속에 깔려 있는, 우리 대중문화가 기반하고 있는 우리 문화의 가치가 매력도가 매우 높고 그 소구 대상이 광범위하다는 증거이다. 

다만 한류의 문제점을 한가지 지적하자면, 그 안에 담긴 로맨틱함, 순정성 때문에 강하고 역동적이기보다는 여성성이 부각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내부에 우리 스스로를 '타자적 시선'으로 보는 요소, 에드워드 사아드가 말한 오리엔탈리즘적인 요소가 아직도 조금 남아 있다는 점이다. 맨해튼의 42번가 타임스 스퀘어 대형 광고판에 한국을 알리는 캠페인 광고가 종종 실렸던 것을 기억한다. 그런데 한국을 상징하는 한복을 입은 여성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서양 남성이 양복을 입고 서 있는 비주얼이 한동안 걸려 있던 것을 본 적이 있다. 

우리가 스스로 내세운 국가 이미지 캠페인 광고인데,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여성으로 대상화하고 서양남자의 시선을 끌려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은 오리엔탈리즘적인 시선이다. 적극적이고 역동적이기보다는 수동적인 이미지를 주는 광고다. 한류 상품에 어떤 메시지를 담을까 하는 것은 국가 정책으로 의도적으로 되는 것은 아니고, 가능하지도 않다. 하지만 국가가 주도하는 국가 이미지 캠페인은 얘기가 다르다.  문화 콘텐츠 제작과 전파, 이미지 정립이라는 문제는 하루 아침에 되는 것도 아니고, 민간주도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되어야하지만,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인식하고 있는 것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의 차이는 크다. 우리 문화가 유약하고 여성적인 이미지로 어필되는 부분을 인식하고 자연스럽게 다른 긍정적인 부분을 강조해나가는 노력은 분명 필요하다고 본다.

또 한류가 세계화되는 과정에서 인종적 감수성, 타문화 이해의 감수성을 요청받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이에 대한 인식과 수용도 필요하다고 느껴진다. 

우리는 식민지 경영이나 제국주의 침략의 경험이 없는 유일한 선진 경제국가이다. 이것은 세계에 존경을 얻고 귀감이 될 수 있는 포인트이다. 우리의 고대 건국 이념과 이를 계승한 현대의 대한민국이 위기를 극복해온 경험, 함께 같이 사는 공동체정신에 방점을 찍어 인종과 상관없는 한국의 정신적 지평과 문화영토를 더욱 세계로 확대해나갈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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