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멸종을 넘어: 기술 시대, 우리가 지켜야 할 것

기술이 경험의 가치를 위협하는가?

by 새늘

아이폰이 한국에 정식 출시된 해는 2009년이다. 필자는 2011년 고등학생 시절에 스마트폰을 처음 알게 되었다. 직접 사용한 것은 아니었고, 친구가 자랑삼아 보여준 덕분에 실물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이다. LTE와 와이파이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우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 무렵부터 메시지는 더 이상 문자(SMS)가 아니라 카카오톡이 주를 이루는 사회로 급속히 변화하였다.


현재는 생성형 AI가 일상에 깊이 자리 잡으면서 스마트폰에 AI 기능이 기본적으로 탑재되고 있다. 이제 궁금한 사항을 검색 엔진에 의지하기보다 생성형 AI에게 직접 질문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으며, 카카오톡 역시 단순한 메신저를 넘어 챗GPT와 같은 AI를 통합하여 접근성을 크게 향상했다.


이처럼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생활 방식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경험”의 의미와 가치 역시 끊임없이 재정의되고 있다.


기술 고도화로 인한 경험 가치의 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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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기술의 발전이 대면 경험을 위협하고 있다는 우려를 핵심 주제로 삼고 있다. 메타버스, 키오스크, 비대면 서비스 등이 확산되면서 직접적인 경험보다는 기술을 매개로 한 간접 경험이 급증하였다. 이로 인해 비대면 문화가 더욱 심화되었고, 구체적인 “장소”라는 개념보다는 추상적인 “공간”이라는 용어가 더 빈번히 사용되며, 공적 영역에 비해 사적 영역이 확대되는 추세가 뚜렷하다. 그 결과 사회 통념상 당연시되던 대면 기술예를 들면 예의, 공공 에티켓 등이 퇴화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점점 극단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을 보이게 되었다는 지적이다. 기술 이전에 소중하게 여겨지던 경험이 사라지고 있다는 경고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경제 성장을 위해 기술 발전을 중단할 수 없는 현실에 놓여 있다. 기술 고도화는 불가피한 흐름이다.


기술이 기다림의 미학을 빼앗는다고?


기술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유원지나 테마파크에서 놀이기구 하나를 타기 위해 몇 시간씩 대기하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었다. 책에서 디즈니랜드를 대표 사례로 들었는데, 디즈니는 그 기다림을 단순한 지루함의 시간이 아니라 스토리텔링의 시작으로 재구성하려 하였다. 대기 줄 자체를 놀이기구의 세계관 일부로 설계한 것이다. 예를 들어 귀신의 집(Haunted Mansion)의 경우 음악이 흐르는 영묘, 살아 움직이는 듯한 비석, 초자연적인 분위기의 복도와 방을 통해 이미 유령의 저택에 들어온 듯한 몰입감을 제공하였고, 탑승 직전 공간에서는 애니메이션, 오디오, 오디오-애니매트로닉스 인형을 활용해 이야기를 미리 전달함으로써 방문객을 단순한 탑승자가 아닌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었다.


현재는 어떠한가. 대부분의 경우 앱을 통해 실시간 대기 시간을 확인하고, Standby Pass를 발급받거나 유료 Lightning Lane을 이용하여 빠르게 입장한다. 저자는 이러한 기술이 참을성과 인내심을 기르는 ‘기다림의 미학’을 빼앗아간다고 비판하며, 유료 패스가 형평성을 해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용자 입장에서는 기다림이 명백한 비효율로 인식된다. 본질은 어트랙션을 경험하는 데 있으며, 제한된 개장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어트랙션을 즐기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대기 줄은 이러한 소비자 심리와 상충되는 요소였다. 기술은 그 비효율을 제거함으로써 대기 시간 동안 쇼핑, 식사, 사진 촬영 등 다른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유료 패스 역시 자본주의 시장 논리에서는 프리미엄 서비스에 대한 정당한 대가로 볼 수 있으며, 공급자인 디즈니 입장에서도 수익 모델의 다각화가 필수적이었다.


기술이 우리를 위협한다?


기술의 발달로 낯선 환경에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여행 계획 수립이 간편해졌고, 낯선 장소에서도 가까운 이들과 실시간 연락이 가능해지면서 혼자 여행하는 일이 훨씬 수월해졌다. 저자는 여행의 목적이 추억과 경험에서 SNS에 올릴 콘텐츠 생산으로 변질되었다고 지적하며, 혼자 여행 중 낯선 이로 인해 사망한 사례를 들어 위험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SNS 업로드를 위한 여행은 극단적인 사례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여행은 여전히 추억과 경험을 목적으로 이루어진다. 오히려 기술 (지도 애플리케이션, 실시간 위치 공유, 긴급 연락 수단 등) 은 안전성을 크게 높여 주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기술과 해당 사망 사례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술이 발달하여 우리는 낯선 환경에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기술을 이용해 여행 계획을 세우기 쉬워졌으며, 낯선 곳에서도 가까운 사람들과 연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에 기술 이전보다 우리는 쉽게 혼자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사라져 가는 경험의 가치


컴퓨터의 등장 이후 손글씨의 필요성은 급격히 감소하였고, CAD, Illustrator, 생성형 AI의 확산으로 손그림의 필요성 역시 줄어들고 있다. 손글씨와 손그림이 뇌 건강, 인지 발달, 기억력, 언어 처리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고려할 때 이는 안타까운 변화이다.


교육 분야에서도 원격 수업과 홈스쿨링의 증가, 고등학교 중퇴 후 검정고시와 수능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사례가 늘면서 입시 중심의 교육 방식이 강화되고 있다. 학교는 단순히 대학 입학을 위한 통로가 아니라, 어른과의 예의 배우기, 또래와의 사회성 형성이라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공간이다. 이러한 변화는 개인주의를 더욱 심화시키고 공공 에티켓을 배울 기회를 축소시킬 수 있다.


알고리즘의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관심사에 맞춘 콘텐츠 추천으로 인해 우연한 만남이나 뜻밖의 경험이 줄어들고 있으며, 이는 개인의 세계관을 좁히는 ‘우물 안 개구리’ 현상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돌이킬 수 없으나 경각심은 필요하다


경제 발전을 위해 기술은 계속해서 진화할 것이며, 과거의 경험을 그대로 재현하기는 이제 거의 불가능한 환경이 되었다. 그러나 기술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불이익과 위험성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데 의의가 있다.


다만 책의 아쉬운 점은 기술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이나 마음가짐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술을 폄하하기보다는 공생의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기술을 도구로 인식하고,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경험의 가치는 사라질 수도 있고 새롭게 창조될 수도 있다.


최근 사업가 모임에 갔을 때 요즘 원데이 쿠킹 클래스가 유행하는 이유를 들었다. 소비자들은 맛이 없어도 내가 음식을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도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으며 그 음식을 애인이나 가족 등 가까운 사람에게 선물함으로써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게 해 주고 그 선물의 경험 또한 소비자를 만족시킨다고 한다. (또한 수익성도 매우 좋다고 한다.)


원데이 쿠킹 클래스가 인기를 끄는 이유를 보면 알 수 있듯, 소비자들은 맛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내가 직접 만든”이라는 경험 자체에 가치를 두고 있으며, 그 결과물을 가족이나 연인에게 선물함으로써 관계를 강화하고 추가적인 만족을 얻는다. 이는 여전히 우리 사회가 경험의 본질적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결국 기술은 새로운 경험의 지평을 열어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기존의 소중한 경험의 본질을 유지하려는 노력과 함께, 기술을 통해 어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느낄 것인지 고민하는 자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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