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우는 조인이 지키는 번성을 공략하고 있었지만 불안한 점이 있었습니다. 우선 절대적인 병력이 부족하였습니다. 식량과 군수물자의 수송이 원활하지 않았으므로 장기전으로 버티기에는 무리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위나라와 전투를 벌이고 있었지만 오나라를 대비하여 강릉과 공안에 수비병을 배치시켜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야 하다 보니 병력이 양분되었던 것입니다.
관우가 번성에서 조인과 혈투를 벌이자 여몽은 이번 기회가 형주 전체를 오나라가 회복할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몽이 보기에 관우가 강릉과 공안의 수비를 철저하게 하고 있는 것은 관우가 자신을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으므로 관우의 의심을 풀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여몽이 손권에게 상소문을 올렸습니다.
“관우가 번성에서 싸우면서도 수비병을 많이 남겨놓은 것은 반드시 저 여몽이 관우의 배후를 도모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저 여몽은 풍토병에 걸려 자주 몸이 아프므로 병을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병사 일부를 거느리고 건업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관우가 이 소식을 들으면 반드시 남군과 공안의 수비병들을 양양으로 배치시킬 것입니다. 이틈을 노려 우리 동오의 대군이 텅 빈 관우의 배후를 습격하면 즉시 남군을 함락시키고 관우까지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손권은 이를 허락하면서 여몽의 병이 위독하다는 소문을 퍼트렸고 여몽에게 건업으로 돌아오라는 전문을 보냈습니다. 손권은 일부러 이 전문을 노출시켜 관우 측에게 이 정보가 새나가도록 조치하였습니다. 여몽은 건업으로 오는 길에 육손이 주둔하고 있는 무호를 거쳤습니다. 육손은 강동 3개 군의 반란을 진압한 후에 항복한 반란군 중 1만 명의 정예병을 얻어 무호에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여몽이 무호에서 여장을 풀자 육손이 예방 차 방문하였습니다. 육손이 인사를 나누고 난 다음 여몽에게 질문하였습니다.
“관우와 접경하고 계시면서 어찌하여 멀리 내려오셨습니까? 관우가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여몽은 육손에게는 자신의 병이 위독하다는 점만을 말하였습니다. 육손은
“관우는 자신의 용맹과 기세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어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무시합니다. 이번에 큰 공을 세워 마음이 교만해지고 뜻이 안일해졌을 것입니다. 그는 오로지 북진하는 일에만 힘을 쓰고 우리들에게는 의심을 품지 않고 있습니다. 장군이 병에 걸렸다는 소문을 들으면 반드시 더욱 방심하고 대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출기불의(出其不意)로 나아가 습격하면 관우를 사로잡고 제거할 수 있습니다. 내려가서 지존을 뵙게 되면 응당 이 좋은 계책을 건의해야 합니다.”
여몽은 기밀을 지키기 위하여 단지 관우에 대하여 좋은 장수라는 말만 하고 건업으로 돌아와 손권과 관우를 도모할 계책을 의논하였습니다. 손권은 여몽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대가 이곳에 있는 동안 누가 경을 대신하여 임무를 맡을 수 있겠소?”
여몽이 대답하였습니다.
“육손이 뜻과 생각이 깊고 재능이 우수해 중책을 감당할 만합니다. 그가 꾀하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종국에는 대임을 맡기는 것이 가능합니다. 게다가 멀리까지 이름이 나 있지 않아서 관우가 경계하지 않으므로 그보다 더 나은 자가 없습니다. 만약 육손을 임용한다면 밖으로는 우리의 의도를 숨길 수 있고 안으로는 형편을 관찰한 후에 관우를 무찌를 수 있습니다.”
손권은 곧바로 육손을 불러 편장군 우부독에 임명하고 여몽의 일을 대리하도록 하였습니다. 육손은 육구에 도착하자마자 관우에게 매우 공손한 태도로 편지를 보냈습니다.
“장군께서 일전에 조그만 틈을 보아 병력을 동원하신 후, 군율에 따라 절도 있게 행군하여 작은 군대로 큰 적을 이겼으니 위대하시고 뛰어나신 일입니다. 위나라 군대가 패해 무너진 것은 촉오간의 동맹에 경사스러운 일입니다. 저는 이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고 오로지 장군과 함께 천하를 석권해 나라의 질서를 바로잡고 왕권을 제대로 세우는 상상을 해 봅니다. 최근 부족한 제가 임무를 맡아 이곳으로 와서 장군의 빛나는 위업을 보았습니다. 몹시 사모하는 마음으로 장군의 엄숙하고 훌륭한 가르침을 받기를 바랍니다.”
관우는 육손의 편지를 받고 코웃음을 쳤습니다. 동오도 이제 기울어져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유, 노숙, 여몽을 이어받은 장수가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 애송이 육손이었습니다. 게다가 편지를 받아보니 문사가 번드르 한 것이 전형적인 백면서생임에 틀림이 없어 보였습니다. 관우는 마음을 푹 놓았습니다. 이어서 관우가 우금의 칠군을 격파하자 육손은 또다시 편지를 보내 관우를 업적을 경하하였습니다.
“우금 등이 포로로 잡히자 원근 각지의 사람들이 다 기뻐하고 감탄하면서 장군의 공훈이 세상에 제일이라고 놀라워하고 있습니다. 과거 역사상 뛰어난 장수들도 장군에 비하면 오히려 한참 못 미칠 것입니다. 듣자 하니 서황 등이 소수의 기병을 거느리고 머물면서 장군의 깃발이 휘날리는 곳을 엿보고 있다고 합니다. 조조는 교활한 도적놈으로 분함을 못 이겨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고 몰래 병력을 증강시켜 원수를 갚고자 할까 두렵습니다. 비록 위나라의 대장이 늙었다고는 하나 아직 용맹하고 날랜 자들이 남아있습니다. 역대 싸움들을 돌아보면 승전 뒤에 적을 경시하다가 고초를 겪는 경우가 많으니 장군께서는 오직 완전하게 이기시기만을 바랍니다. 불초한 제가 멋대로 장군의 밝으심을 우러러보고자 하오니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관우는 육손의 편지를 읽으며 육손이 진심으로 겸손하게 몸을 낮추며 자신에게 의탁하려는 뜻이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더 이상 육손이 지휘하는 오나라를 경계하고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관우는 이제 마지막까지 남겨두었던 남군의 병사들을 이동시켜 번성에 투입하였습니다. 관우는 우금이 지휘하던 칠군의 포로들을 먹일 식량이 부족하였습니다. 관우는 멋대로 오나라의 상관의 쌀을 취하여 위나라의 포로와 촉의 군대를 먹였습니다. 상관은 손권의 영토였으므로 이러한 관우의 행동은 손권을 격분하게 하였습니다.
손권은 관우에게 쌓인 것이 많았습니다. 촉과 오가 대등한 동맹이라고는 하지만 유비가 익주를 차지하기 전까지는 동오에서는 유비 진영을 떠돌아다니는 객장 정도로 생각하였습니다. 유비는 적벽대전에서 동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고 살아남기 위하여 동오로 귀순하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좋게 보아서 유비가 손권과 대등한 존재라 하여도 유비의 일개 장수에 불과한 관우가 그 위세를 믿고 손권을 우습게 알고 있으니 손권은 내심 불쾌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손권은 오래 참았습니다. 한편으로 관우를 제 편으로 끌어들여 유비와 균열이 생기도록 하여 형주를 되찾고자 하였습니다. 그런 계책으로 제갈근을 시켜 관우의 딸과 손권의 아들을 혼인시키는 혼담을 추진하였습니다. 하지만 관우는 손권의 의도를 꿰뚫어 보았고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손권을 모욕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범의 자식을 개의 자식에게 줄 수 있겠나?” 손권은 이를 갈았습니다.
손권은 217년 조조와 화해를 하고 혼인동맹까지 맺어두었으므로 북방에 대한 부담이 크지 않은 입장이었습니다. 조조가 사자를 보내 관우를 습격하고 형주를 남북으로 분할하자는 제안을 하였습니다. 조조는 촉오동맹을 깨뜨려서 남방의 위협을 제거하려는 의도가 있었고 손권은 이번 기회에 선을 넘는 관우에게 혼을 내주고 형주를 차지하고 싶은 욕심을 채우고 싶어 했습니다.
손권은 기왕에 촉오동맹을 깨면서 대규모로 출병하면서 조조에게 생색을 내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래서 사자를 보내 조조에게 이를 통보하였습니다.
“병사들을 보내 관우의 후방을 엄습해 취하고자 합니다. 강릉과 공안은 형주의 요충지로 매우 중요한 곳이니 관우가 이 두 성을 잃게 되면 반드시 제 발로 달아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면 번성에 있는 군대는 구원하지 않아도 저절로 포위가 풀리게 될 것입니다. 다만 관우가 대비하지 못하게 비밀을 누설하지 말아 주십시오.”
관우는 위나라의 번성과 양양을 공격하면서 손권의 오나라가 측면에서 위나라를 도발하여 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조조와 손권이 동맹을 맺고 관우를 협공하기로 밀약을 맺었다는 것은 관우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소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 현실이 되어 관우에게 다가왔습니다. 관우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반응하였을까요? 유비는 관우의 능력을 얼마나 믿었던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