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을 느끼지 못하면, 미래에도 느낄 수 없는 것
목표를 향해 달려가다 보면
어느 순간 모든 게 부질없게 느껴진다.
지금 내가 하는 게 과연 최선일까.
이것보다 나은 선택이 있지 않았을까.
이 길의 끝엔 뭐가 남아 있을까.
혼자 일하는 내가 초라하게 느껴지고,
내가 쏟아부은 시간과 에너지에 비하면
내 통장 잔고는 턱없이 작게만 느껴진다.
이 어둠은 생각보다 빠르게 커진다.
내 하루, 내 리듬, 내 말투,
심지어 내 표정까지 잠식해버린다.
그리고 문득, 질문하게 된다.
“난 왜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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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질문에 대답하려 했다.
행동의 목적을 찾고,
내 행복을 정의하고,
나의 이상향이 만들어놓은 기준에
나를 끼워 맞추려 했다.
그게 능동적인 삶이라 믿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오히려
정해진 의미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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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행복한지도, 불행한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감정보다 앞선 건
내 행동의 ‘의미’를 끊임없이 체크하는 습관이었다.
의미를 찾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의미의 노예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의미에 붙잡힌 채
나는 점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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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나는 그냥 라면을 끓여 먹었다.
아무 생각 없이 물을 올리고, 스프를 넣고, 면을 풀었다.
창문 틈으로 바람이 스쳤고,
햇빛이 조용히 내 얼굴을 건드렸다.
어느 하나 특별하지 않은 날이었다.
근데 이상하게,
그날 바람은 유독 시원했고,
햇살은 따뜻했다.
라면 면발도 쫄깃하게 맛있었다.
그 순간,
나는 오랜만에 ‘감각’이라는 걸 인지한 것 같았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내 안에 살아 있는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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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거창한 인생의 이유도 아니고,
삶을 바꾸는 깨달음도 아니었다.
그건 단지,
지워지지 않는 감각 하나였다.
그 감각을
나는 ‘의미감각’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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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삶의 의미를 ‘증명’에서만 찾았다.
물론 그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증명만 좇다 보면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 있다는 감각을 흘려보내게 된다.
내가 지금 여기 존재하고 있다는 것,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는 것,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다는 것.
그 모든 것이
이미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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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그 감각을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
그 감각이
세상을 바꾸진 못하겠지만,
그걸 무시하는 순간
나는 내 존재의 한 조각을
스스로 지워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존재는,
아무리 무너져도
감응할 수 있는 리듬만큼은 꺼지지 않는다.
그 감각을
살아내기로 했다.
그게 내 철학이고,
지금의 나를 버티게 해주는
가장 조용한 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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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지금 이 감각은
쓸모 없을지도 모른다.
삶을 바꾸지 못하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며,
인생을 명확하게 만들지도 못한다.
하지만 그 감각이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
그 감각이 스스로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
그것 하나는,
내 존재가 아직 꺼지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걸 무시하지 않는 태도.
그게 지금의 나를 살리고 있는
작고 조용한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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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하게 암울한 날에도,
햇빛은 뜨고
바람은 분다.
그 감각 하나를
지워버리지 말자.
그게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