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인식한다.
어떻게 사는 게 정답일까.
묻는 순간, 머릿속이 분기점처럼 갈라진다.
머리를 비우고 살라는 말,
늘 변화에 대비하라는 조언,
하고 싶은 걸 해보라는 위로,
사회적 역할을 잊지 말라는 경고.
모두 익숙하다. 그러나 어느 하나 선명하지 않다.
선택은 흐릿하다.
중간이 맞는 것 같은데, 그 ‘중간’이 어디쯤인지 알 수 없다.
진리가 있다면,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다 문득, 내 반응이 빠르다는 걸 깨닫는다.
무언가 튕기듯 올라오고, 감정이 따라붙는다.
그 모든 건 생각보다 빠르다.
생각은 아직 오지 않았는데, 몸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익숙한 말투, 익숙한 회피,
어떤 상황에서는 말을 삼키고,
어떤 장면에서는 불필요하게 설명한다.
그게 왜 그런지를 생각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반복된다.
그게 하나의 기준처럼 작동하고 있다.
사람은 에너지를 아낀다.
익숙한 길을 따라가는 게 덜 피곤하다.
불편한 질문은 잠시 미루고,
혼란은 ‘나중’으로 미뤄둔다.
그러다 보면 ‘지금’은 언제나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지나간다.
편안함은 늘 정확하지 않다.
익숙하다고 해서 옳은 것도 아니고,
지나온 방식이라고 해서 계속 유효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기준에 의존한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어느새 내 안에서 기준이 만들어졌고,
나는 그 기준대로 반응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 하나씩 되짚는다.
이 반응은 언제부터였을까.
이 판단은 누구의 기준이었을까.
나는 정말, 이 방향을 원하고 있는 걸까.
쉽지 않다.
가끔은 그냥 흐르듯 사는 게 더 부드럽다.
기준을 고치려면 오래된 내 기억과 마주쳐야 한다.
그 중 몇 개는, 꺼내는 것조차 피곤하다.
하지만 피할 수 없다는 걸 안다.
지금의 선택이,
과거의 자동 반응이 아닌
나로부터 시작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건 정말 나의 선택인가?”
“이 기준은 지금의 나를 지키는가, 가두는가?”
삶에 정답은 없다지만, 나는 늘 오답이었다.
이제는 내 기준을 세워, 오답노트만큼은 직접 써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