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기다림

모두의 고도

by 시오




1.

재작년 겨울에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었다. 이 책은 학교 독서 시간에 읽었는데 그 당시 나는 고전소설만 선택했었다. 청소년 소설 같은 경우 깨달음을 제법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생각해 볼 주제도 눈에 띄게 나타나있다. 아몬드는 청소년기의 우정과 사랑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성장의 아픔에 대한 깨달음, 페인트는 진정한 가족에 대한 고민을 하게끔 만든다. 하지만 고전소설은 책 내부에서 난해한 부분이 몇 개씩 등장하고 그것을 해석해야 주제가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귄터 그라스의 넙치는 편하게 읽었을 때 물고기 한 마리가 사람들과 법정 다툼을 하는 이상한 판타지 소설로 느껴진다. 하지만 넙치가 이야기하는 신화의 내용을 세심하게 읽어본다면 이 책이 페미니즘적인 요소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이런 면 때문에 고전소설이나 시를 좋아한다. 책 속에서 말하고 있는 요소를 해석하여 연결 짓고 그것을 통해 주제가 무엇인지에 이르는 과정이 흥미롭고 즐겁다. 시 또한 소재들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음이 재미있다. 그리고 내 해석이 왕도의 것과 같지 않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한 명의 생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서 문학이 좋다. 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항상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따라서 나는 나에게 "고도를 기다리며"가 상당히 즐거운 작품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난해하다고 하고, 무엇보다 연극 대본이니 (세일즈 맨의 죽음을 읽은 후여서 연극 대본에 대해 큰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해석할 여지도 많고 글의 구조 또한 다른 일반 소설들과 다르게 참신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내 생각은 맞았다. 다만 해석할 여지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해석이 힘들었고 글의 구조는 상당히 독특했다. (특히 럭키의 두 장 분량의 한 문장 짜리 독백이 인상 깊었다.) 책 내용이 아닌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가득해졌다. 하지만 이 책은 내가 직접 선택했고 이것으로 독서록까지 써야 했기 때문에 내 나름대로 해석을 하긴 했다. 하지만 책 속의 거의 모든 대화들이 동문서답 형식이었고 못 참고 읽은 책 뒷면 해설에서도 딱히 정확한 해석을 없다고 하니 답답해졌다. 내 해석도 마음에 안 들었다. 이때의 경험은 내가 "고도를 기다리며"에 대한 미련을 가지게 만들었다. 따라서 외대부고 입시가 끝난 후 완벽한 타이밍에 올라온 고도를 기다리며 연극 공지를 보게 되었고, 2024년 2월 24일 연극을 관람하고 왔다. 책도 읽고 연극까지 본 김에 "고도를 기다리며"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해석을 써보고자 한다.

짧은 연극 후기: 신구님의 고고 연기가 좋았다. 대사들이 부드럽게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럭키의 "그 부분"이나 포조 대사를 제외한다면 고고와 디디의 대사들은 토막 나 있는데 굉장히 세심하게 연기하시는 게 느껴져서 좋았다. 일부분의 대사는 책에 있는 부분들이 몇 개 생략되어 있어서 아쉬웠다. 책의 종교적인 부분들과 내가 생각했을 때 중요한 대사들이 몇 개 빠져있었다. 생각보다 유머 포인트가 많았고 책으로 읽었을 때는 알 수 없었던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책으로 읽었을 때는 고고가 디디를 보며 말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관객을 보며 읊는 대사였다 etc) 그리고 청소년이 나밖에 없었다. 나이 드신 분들과 장년층 분들이 가장 많았고, 대학생으로 보이시는 분들도 있으셨다. 어딜 둘러봐도 또래가 없었다.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자신이 어른이 되기 전에 청소년 혜택을 빨리 알고 누리길... 그리고 관람 매너가 없었다. 왜 극장에서 전화를 하시고 카톡을 보시고 진동을 울리게 두시나요. 그 정도 예의는 아실만한 성숙한 어른분들인데 ... 조금 방해됐지만 그럼에도 연극은 좋았다. 앞에서 기립박수 치는 걸 보고 나도 해보고 싶었는데 용기가 없어서 실패했다. 앞으로 이 연극은 몇 번 더 볼 거 같다.

벌써 시간이 흐르는 게 다르지 않냐 말이다.

이제 곧 해가 지면 달이 뜰 테고, 그러면 우리도 떠날 수 있다. 여기서 말이야.

아니다.


2.

위에 있는 인용구와 밑에 내가 써놓은 짧은 반박은 이 책의 표면적인 내용을 완벽하게 요약한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책의 제목처럼 두 명의 에스트라공(고고), 블라디미르(디디)가 고도라는 미지의 인물을 기다리는 과정을 담은 책이다. 이 기다리는 과정은 모두 똑같은 장소, 나무 아래에서 진행되는 의미 없는 대화와 행동 (모자를 연속적으로 쓰고 벗고 한다든지)을 보여준다. 재밌는 점은 두 주인공이 기다림을 지겨워하지만 기다리는 행동 자체를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고도가 누구인지, 자신들이 그를 왜 기다리는지조차 모른 채 오직 그를 기다린다.

3.

고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해석이 있다. 우선 고도의 특징은 "우리가 백날 천날 기다려봐도 오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따라서 고도는 행복이나 자유 등으로 해석되곤 한다. 나의 어머니께서는 고도를 죽음이나 희망으로 해석하셨다. (어머니께서도 자신의 해석 두 개가 모순적이라는 것이 재밌다고 하셨다. 근데 나는 죽음과 희망이 모순되는 소재는 아니라고 생각하긴 한다.) 이런 해석들 모두 가능성이 있다. 사실 사무엘 베케트 작가 본인도 고도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했으니까 말이다.

4.

나는 고도가 "과거"라고 생각한다. 과거는 많은 사람들이 되찾고 싶어 하는 것이다. 후회를 하거나 아쉬움을 느낄 때 많은 사람들은 과거에서 이유를 찾고 '내가 만약 타임머신이 있다면...'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노인분들은 과거의 젊음과 그때의 영광, 청춘들을 다시 겪고 싶어 하신다. 이런 과거의 긍정적인 면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가령 젊은 시절의 체력을 위해 운동하시는 공원의 노인분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다루고 있는 소재는 능동적인 행동이 아니다. 고고와 디디는 그저 한자리에 고여있는 인물이다. 과거에 고여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과거를 기다리는 것에 특별한 목표를 두지 않는다. 지루하지만 참는다. 기다리는 것조차 그만둔다면 자신의 무력한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기다리지 않는다면 다른 곳을 찾아 헤매야 하고 그것이 더 고통스럽다. 그저 과거가 다시 오지 않을 걸 짐작하면서도 즐거웠던 과거를 기다리는 것이다. 떠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떠나간 것에 대한 집착을 만들어낸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여서 무한 루프를 생성시키고 이것이 우리의 행동인 "기다림"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5.

고고와 디디는 이미 늙은 노인들이다. 고고는 신발을 잘 벗지 못할 만큼 무력하고 디디는 제대로 웃지도 못할 만큼 병들어 있다. 이때 고고와 디디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그저 기다리는 것이다. 침체의 아늑함과 기다림의 희망은 그저 그들을 살게 만든다. 과거가 다시 돌아온다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이다. 고도를 만난다면 고고는 뒤랑스강에 다시 뛰어들 수 있을 것이고, 디디는 다시 포도를 거둬드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른다. (물리학적으론 시간에 방향성이 없다고 하지만 벤자민 버튼이 아닌 이상 체감상 보통 한 방향이다.) 고도는 결코 올 수 없다.

6.

사실 이 책 속에서 시간이 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것이 옳지 않은 말일 수 있다. 책 내부 시간의 흐름이 작가에 의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고고는 자신의 얼굴에 상처가 있어도 맞은 기억이 없다. 고고에게 과거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디디는 비교적 시간의 흐름을 잘 느끼고 있다. 나무에 돋은 싹을 보고 시간이 지났음을 알고, 예전에 만난 소년을 기억하기도 한다. 이렇게 본다면 디디는 자신의 과거를 인지하고 있기에 그에게 고도는 과거이지만 고고에게는 고도가 다른 존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7.

물론 책의 결말 부분까지 고도는 오지 않지만 포조, 럭키, 소년이 고고와 디디 앞에 등장한다. 포조는 카인과 아벨의 이름을 가진 인류 전체이고 럭키는 그런 포조의 종이다. 포조는 럭키가 한때 자신에게 의미 있는 가르침을 주었다고 말하고, 사색 또한 깊게 했다 말하지만 책에 등장하는 럭키는 그러지 못하다. 포조가 시키는 것에 따르고 말을 시키면 더듬는 등 영리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포조라는 인류 전체가 파괴한 무엇인가가 럭키일 것이다. (럭키가 정확하게 무엇을 상징하는진 잘 모르겠다. 인류 전체에 의해 파괴된 소재는 무구하게 많다. 그래도 연극 자체가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기에, 인류 전체에 의해. 파괴된 인류 전체 정도로 짐작했다.) 끝도 없이, 귀가 멀 때까지 포조에게 사로잡힌 럭키는 나에게 고고와 디디의 처지를 떠올리게 했다. 고고와 디디는 마지막 부분에 서로 떠나자고 하며 손을 붙잡고 무대 뒤로 퇴장하려 한다. 하지만 발을 떼는 순간 그들은 굳어버리고 무대조명이 꺼지며 극이 끝나게 된다. 나는 이 장면이 연극에서 더욱 직관적으로 와닿아서 인상적이었다. 모든 인간은 어떤 것이든지 간에 그것에 묶여있고, 벗어나길 원하지 않는다.

8.

종속된다는 것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고등학교 입시를 했을 때, 친구가 고민했던 질문이 생각난다.: '자유롭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일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죄수들이 탈옥하고 싶어 하고, 자유를 위해 희생한 인물들도 있다. 자유는 그 자체로 고귀하고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가 자유란 인간의 본성임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의 그 아이는 자유를 꿈꾸지 않는다. "트루먼쇼"에서 트루먼은 이 세계가 가짜임을 알기 전까진 바깥에서의 자유를 좇지 않았다. 자유를 알기 전까지는 자유에 대한 욕망이 없다. (다른 본능이나 욕구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는 먹는 것을 알기 전에 식욕을 가지고 있고, 아이들은 성욕에 대해서 알기 전부터 자신의 욕구를 특정 방법으로 해소한다.) 그리고 여기서 드는 의문은 '우리가 진정으로 자유에 대해 잘 알고 있는가'이다.

9.

등장인물들이 잘 알고 있지 못하는 요소 중에는 ‘고도’라는 존재가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묶여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박탈당하는 것, 인간의 삶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 ”고도를 기다리며“의 내용 아니었을까? 고고와 디디를 보면서 비웃던 사람들도 그들과 같다. ”고도“라는 존재가 무엇이든 간에 우리 모두는 그를 기다리고 있다. 기다림은 이 책 안에서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뉴욕타임스도 이렇게 말했다.) 인간 모두는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다. 단지 우리는 이 기다림 속에서 단순히 생활하는 것이 아닌 본인의 가치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주어진 조건은 메마른 나무와 건조한 주변 환경이다. 인간은 기다림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다만 그 속에서 발생되는 가치는 본인에게 달렸다.

10.

모두가 한심하게 고도에게 묶여있음을 오만하지 않게 인정하고 그 속에서 노력하자. 노력이 재능이라 주장하는 세상의 수군거림은 고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고도는 존재 자체로 우리의 기다림을 지속시키고 삶을 지속시킨다. 그것을 부정하지 않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간다면, 후에 고고처럼 자신의 과거를 잊더라도 분명히 남는 것이 있을 테니 말이다. (예를 들면 고고의 새로운 신발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