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에디파 마스가 자신의 전 애인인 피어스의 유산관리인이 되면서 시작한다. 에디파 마스라는 이름에서 에디파는 Oedipus를 나타내고 마스는 mass이다. 오이디푸스처럼 눈을 가졌지만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없고 mass(찰흙과 같은 고체 덩어리)처럼 유연성 있는 에디파를 통해 작가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추구하는 열린 상황을 보여준다 (에디파가 여성인 것 또한 이런 유연함과 부드러움에 관계되어 있다.) 그녀가 만나는 남성들 이름에서도 나팔관이나 생리대를 상징하는 단어들이 나온다. 이를 통해 에디파가 정신적 수태 즉 열린 체계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이디푸스처럼 제대로 된 세상을 보지 못하던 그녀가 눈을 뜨게 되는 과정이다.
지금까지 그녀는 열린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왔다. 비단 그녀뿐 아니라 당시 사람들은 반공 이데올로기와 냉전 이데올로기, 즉, 이분법적 가치관과 배타주의로부터 고립상태였다. 예를 들어 메츠거에게 에디파는 자신을 젊은 공화당이라고 소개한다. 그때 메츠거는 “그녀는 자신의 법적 의무와 도덕적 임무를 잊어버렸도다.”라며 빈정거린다. 이를 통해 젊은 여성들이 닫힌 세계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준다. 특히 그녀가 다니는 터퍼웨어 파티에서 터퍼웨어라는 것이 완벽한 밀폐, 단열 용기에 담아져있다는 것이 상징적이다. 이를 통해 작가가 그녀의 일상이 닫힌 세계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 터퍼웨어 파티는 다른 것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바로 소수자들의 비밀스러운 모임이다. 책에서 나온 W.A.S.T.E나 IA와 같은 단체 말이다. 가장 열린 체계의 사람들일 것 같은 소수자가 사실 또 다른 닫힌 체계 속 사람인 것이다. 이를 통해 토머스 핀천은 열린 체계와 닫힌 체계 사이의 이분법조차 회의적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녀가 방문한 샌나르시소나 에코 또한 닫힌 체계이다. 샌 나르시소는 자신의 안에 유폐되어 죽은 나르시소를 의미하고 에코는 나르시소를 사모하다 그가 죽은 후 목소리만 남게 되어 메아리가 되었다. 이는 닫힌 체계에선 순간 행복할지라도 결국 우리를 해할 것임을 나타낸다. 닫힌 체계의 안주는 결국 실존적 위기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에디파도 그렇다. 처음 메츠거를 만나 스트립 보티첼리를 제안받았을 때 그녀는 옷으로 몸을 꽁꽁 싸맨다. 이는 그녀가 닫힌 체계 속에 안주하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메츠거와 정사하며 열린 체계로 한 걸음 나아간다. 메츠거는 자신이 나온 영화에서의 오점들을 에디파에게 말해주며 당연히 사실처럼 느껴지는 것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가르쳐 준다. 에디파가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그녀의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질 기회가 온 것이다. 또한 티비에서 나오는 허구의 인물이 지금은 자신의 곁에 있음을 생각하며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해짐을 보여준다. 이 또한 토머스 핀천의 이분법 거부 사고에서 나온 것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그녀가 자신이 사용하는 우편 제도 말고도 다른 제도가 있음을 깨달은 일은 그녀가 사는 세계와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화장실에 있는 약음기 달린 나팔 그림은 억압받고 있는 소외 계층의 목소리임을 나타낸다. 그녀가 연극 대본의 원본을 찾을 수 없는 것도 진정한 진리엔 원본이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 책을 열역학 제2법칙을 통해 본다면, 한 체계가 외부와의 소통이 단절될 시 체계를 구성하는 분자들이 서로 동기화되고 이로 인해 엔트로피가 극에 달하면 더 이상 살아남지 못함을 보여준다. 이는 현실에서 닫힌 체계에 속한다면 이러한 생활의 지속이 어려울 것을 나타낸다. 또한 맥스웰의 수호 정령처럼 에디파 또한 닫힌 체계에서 열린 체계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