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책에선 에로스(여성)과 타나토스(죽음)을 양극단으로 둔다. 카프카는 에로스를 현실 세계, 타나토스를 내적 세계로 분류했다. 하지만 이 책에선 여성과 죽음이 함께 공존한다. 그것도 고전스럽게 여성을 마녀처럼 보여주는 게 아닌, 그리고 과도하게 성역화되어 있지 않게 “에로스”그 자체로 여성을 보여주고 전쟁이란 “죽음”과 가까운 전쟁이라는 소재로 이를 함께 서술하고 있다. 또한 “에로스”를 특히 더 부각시키며 그 당시 전쟁 속에서 지워진 여성의 존재를 드러낸다.
이 책이 “그네”들의 투쟁을 통해 나온 것 또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본 후 “소비에트 여성들을 동물처럼 묘사했다."라는 식의 발언은 어떻게 보면 여성들은 마치 순결성을 지켜야 한다는 사회의 인식 탓이기도 하다. 그네들이 전쟁 속에서 얼마나 추해졌든지 간에 그네들은 다른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싸웠다. 그리고 작가는 이 이야기를 출판하기 위해 사회에 맞서 싸웠다. 검열이 필요한가? 그것들은 당시의 그네들의 “삶”이었을 뿐이다.
소녀 병사들이 남성 병사에게 놀림을 받는 상황은 그때 당시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현재 진행되는 집회의 청소년들, 자유발언을 하는 청소년들 또한 어른들로부터 그저 “귀여운 어린아이”로 분류될 뿐이다. 소녀 병사들이나 집회의 청소년들이나 모두 진심을 다해 투쟁하기 위해 왔는데, 그런 말들로 그들의 사기를 꺾기보단 같은 동료로 인식하고 대우해 주는 것이 옳은 일 아니겠는가?
소녀 병사들이 자발적으로 전쟁 속을 들어간 것은 사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세미나 때 한국에서 전쟁이 난다면 군인으로 참여할 것이 나는 물음에 긍정의 대답을 한 사람은 나와 내 친구 한 명이었다. 무엇이 그네들을 전쟁으로 이끌었을까? 또한 21세기에 그런 “애국심”…? “동료애”를 발견할 수 있을까?
전쟁은 여성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과연 과거형으로 끝낼 수 있는 문제인가? 사회 여러 곳에선 많은 여성들이 지워지고 있다. 여성뿐만이 아니다. 장애인, 성소수자, senior citizen이 지워져가고 있다. 전쟁은 여성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전쟁은 여성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 사회는 소수자들과 노약자들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귄터 그라스의 <넙치>가 생각났다. 마법의 넙치는 전쟁의 죄가 남성에게 있다고 말한다.
작가가 “보통” 사람의 관점을 가져서 다행이다…라고 말했을 때 의문이 생겼다. 그녀는 그저 전쟁 무경험자의 순진한 관점을 가진 것 아닐까?
애국심은 되물림된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전체주의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