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남편과 아이에게 쏘아 올린 1억

-보험 편 3-

by 작간

시간이 너무 오래되면 기억이란 건 흐려지고 기억하고 싶은 몇 개만 기억하게 된다.

20대 중반인 날 위해 소개해준 보험이라는 말, 착하게 웃는 미소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 30대가 된 내 눈앞엔 간병보험이란 것과 사망 시 1억 원만 남았다.

어떻게 이런 내용을 보고 저축 보험이라고 믿고 사인을 했을까.

마블 시리즈의 멀티버스가 가능하다면 20대의 내게 가 머리 한 번 시원하게 날려주고 싶었다.

뇌세포를 글 쓰는데만 쓰고 뭐 했냐 멍청이야. 그래봤자 너 작간 밖에 못 된다고!!!

20대의 내게 욕 한 번 처하고 싶었지만 그것보다 더 앞서야 하는 게 엄마 지인에게

전화하기이었다.

전화로 창과 방패 같은 일문일답이 이어졌다.

Q. 간병 보험을 왜 저축보험이라고 속이셨어요.

A. 난 속인 적 없다. 그 보험은 저축성 보험 맞다. 이자율이 다른 보험보다 엄청나서 계속

들고 가면 몇 배의 수익(그놈의 몇 배의 수익)이 날 거다.

Q. 그 몇 배의 수익이 정확히 언제, 얼마나 나는데요.

A.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언젠가 수익 나는 건 확실하다.

마치 뚫을 수 없는 강철 문에 대가리를 댕댕 받는 느낌이었다.

댕댕 하는 메아리는 내 귀만 괴롭힐 뿐 상대편의 논리에 기스 하나 내지 못했다.

보험 하시는 분이라 그런지 점점 듣다가는 내가 그 지인분 논리에 휘둘릴 것 같아서 우선 끊고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남이 알려주는 것에 수긍하지 말고 내가 직접 보고 이해하기로 했다.

열심히 서치 한 결과는 놀라웠다. 엄마 지인의 말이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아예 맞는 말도 아니었다.

이렇게 단어 하나 붙이고 떼고 붙이고에 따라 말의 뜻이 아예 다를 수 있다는 것에

다시금 한글의 위대함을 느꼈다.

Q. 저축 보험과 저축‘성’ 보험은 같을까, 틀릴까?

A. 다르다. 저축 뒤에 붙는 ‘성’은 저축 성격을 띠는 보험이라는 뜻이다.

내가 든 보험의 본질은 간병보험이 맞는 거고, 저축 보험 성격도 띠고 있다고 말하는 게 맞는 설명 방법이다.

저축 보험이든 저축성 보험이든 둘 다 비슷한데 무슨 문제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똥 맛 나는 카레랑 카레맛 나는 똥이랑 같은 것일까.

카레맛이 나든 딸기향이 나든 똥의 본질은 똥이다.

60대 자식에게 자신의 간병을 맡기기 싫은 나이가 가입하길 선호하는 게 바로

간병보험의 실체다. 간병보험은 간병보험대로 받고 나중에 사망 시 자식에게 1억 원의 유족 위로금까지 줄 수도 있는 상품으로 나이 든 사람에겐 그럭저럭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걸 들은 내 나이가 ‘20대 중반’이었다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일하고 투자해서 자산을 불려 나가야 할 시기에 있지도 않은 미래의 남편과 아이의 미래를 위해 간병보험을 20년 동안 붓는 건 ‘똥’ 같은 투자다.

Q. 간병보험이 수익률이 좋다고 얼마나?

A. 엄마 지인이나 고객센터나 이 부분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질 않았다. 이건 만기 시 그때 수익률에 따라 다르단다. 그런데 왜 그런 줄 알겠더라. 예상 환급금 계산기가 있는데 1년 단위로 일일이 가격을 넣어야 파악이 될 일이었다.

평소의 나라면 귀찮아서 그냥 넘어가고도 남을 일이지만 앞으로 20년을 저당 잡힐 걸 생각하니 밤이 새벽이 될 때까지 계산기를 돌리고 돌렸다.

우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2배의 이익을 보려면 40년을 세월을 갈아 넣어야 한다.

보험은 사업비가 굉장히 센데 20년 납 이렇게 한다면 앞선 10년은 사업비를 다 떼느라 마이너스가 계속 난다. 그래도 2.3프로 복리로 이자가 쌓이니 언젠가는 사업비를 떼가도 마이너스가 안나는 때가 온다. 그게 15년쯤 되어 드디어 사업비를 떼지 않고 수입이 쌓이는 때가 되더라. 그런데 만기 20년일 때는 원금의 5분 1 정도 금액밖에 이자가 쌓이지 않는다. 유의미한 2배, 3배의 수익률을 얻으려면 적어도 40년을 갈아 넣어야 하는데 그러면 내 나이 60살. 은퇴할 시기쯤 되어야 수익이 나는 것이다.

천만 원 넣고 1억이 되는 거라면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도 생각을 해봤다.

하지만 보험은 절대 회사의 손해를 보게끔 약관을 세팅하지 않는다.

천만 원이 억이 되는 기쁨은 내가 죽어서야 이뤄지는 코인 같은 수익률인 것이다.

몇 천배의 이익을 얻는다고 해도 내가 죽어서 이뤄봤자 가치는 없다.

난 돈을 받아내는 마법의 문장으로 이렇게 말하면 된다.

“간병보험을 저축보험으로 판 건 불완전 판매로 보험설계사가 속여서 판 것이므로 보험 본사에 민원을 넣을게요.”

보험 본사에 민원을 넣었는데 10년 전 일이라 증거가 없어 쌉 소리를 길게 한다면 금감원에 민원을 넣겠다고 하면 바로 원금을 돌려줄 거다.

보험설계사는 본사에 민원이 들어가는 걸 무서워한다.

민원이 들어가 본사에서 고객한테 원금을 다 돌려주게 되면 회사는 악착같이 환수를 하기 때문이다. 보험설계사를 그만두고 딴 일을 한다 해도 상관없다.

민사 소송을 해서 환수를 받으면 되니까.

보험 회사는 금감원에 민원 들어가는 걸 무서워한다.

보험사가 시민을 속인다고 국가 기관에 딱 찍혀 버림 귀찮게 불려 가거나 변명해야 하고, 안 털려도 되는 문제들까지 털릴 수 있으니 그냥 고객의 돈을 돌려주는 게 더 싸게 먹힌다.

고객인 나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단 한 군데도 없었다.

거짓말을 하든 고의적으로 말을 안 하든 보험만 팔고 나중에 항의하면 그때 낸 돈만 돌려주면 끝난다고 생각하니까 거리낌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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